나는 어릴 때 낮잠 시간이 그렇게 아까웠다. 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도, 그 시간에 뭐라도 하려고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그런 기질을 닮아서인지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우리 현이도 낮잠을 좀처럼 자지 않는다. 겨우 잠들어도 40분을 채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 1시간 30분 정도 잘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카시트나 유모차에만 태우면 그 잠을 거부하던 아이가 기절하듯 잠든다. 그래서 현이가 낮잠을 자지 않을 때면 유모차에 태워 집을 나선다.
산책은 원래부터 즐겨하는 편이었다. 운동 삼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할 때 나가곤 한다. 집 근처를 유유히 걷다 보면 가슴속 답답함이 마법처럼 뻥 뚫리진 않더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곤히 잠든 아이를 태우고 걷는 길은 평소와 다르다. 세상이 더 선명해진다. 참새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고, 낯선 새들이 우연히 찾아온 손님처럼 느껴진다. 단상 밑 햇빛을 피하는 고양이, 그림자마저 멋진 나무, 맑게 수놓인 하늘의 구름들. 혼자 걸을 때도 본 풍경들이지만, 지금은 그 속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이라는 순간에 만끽할 수 있는 이 고요한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따사로운 햇빛을 가려주는 방풍커버 아래 곤히 잠든 너는 또 다른 곳에서 너만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겠지.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어서 세상을 다르게 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주변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익숙한 것들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 건 글 덕분이라는 것을. 다만 그것이 단순히 잘 보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인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고요함을 즐기는 건 마치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홀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전율이 일 때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리 아이도 언젠가 관심을 갖게 되는 날이 올까.
환한 대낮에 유모차를 끌고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현이와 함께 있는 동안 아내가 잠시나마 쉴 수 있다는 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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