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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감도 안 잡히는 조상의 벌초

by 달보


시골에 있는 큰집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들 곳곳엔 조상들이 묻혀 있었다. 어릴 땐 할아버지 산소에만 들르곤 했는데, 서른 넘어 벌초를 가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다른 조상들의 묘도 보게 됐다.


산길은 거의 사람 발길이 끊긴 듯했다. 무릎까지 자란 잡풀 사이로 거미줄이 줄줄이 이어졌고 발밑에서는 마른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졌다. 멧돼지가 나올 수도 있다며 주의를 주던 어른들 말이 괜한 겁주기 같으면서도, 마음 한편엔 긴장을 놓지 못한 채 주위를 살폈다.


예초기를 작동시키자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근처에 가면 정체 모를 풀 조각인지 돌인지 모를 것들이 사정없이 날아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했다. 나는 예초기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을 플라스틱 쇠스랑으로 긁어 모았다. 힘을 너무 주면 땅이 파였고, 약하면 풀이 뭉치지 않아 손에 감각을 실어 조절해야 했다. 단순한 일이었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모은 풀은 묘 가장자리 풀숲에 버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 한켠이 찜찜했다. 무덤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풀더미를 내팽개치는 게 쓰레받이의 쓰레기를 방 한구석에 버려두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산속에 딱히 버릴 데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시키는 대로 따랐다.


사실 나는 벌초에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됐었다. 나와 촌수가 같은 사람 중에 벌초하는 건 큰형님뿐이었다. 우리 사이엔 여러 명의 사촌 형제들이 있지만, 명절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그들이 벌초에 올 리는 없었다. 아버지는 명절엔 온 가족이 함께 친척들에게 얼굴을 비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비해, 이상하게 벌초는 나몰라라 했다. 그래서 한날 큰형님에게 "다음부턴 아버지 말고 저한테 벌초 일정 알려주세요"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그 말을 조금 후회한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대신해 굵직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큰형님은 나와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 났으니 체감상 어른에 가까웠다. 벌초에 오는 다른 이들도 대부분 아버지 세대였다. 괜한 자리에 쓸데없이 끼여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엄연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벌초를 돕는 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키운 건 벌초의 절차 때문이기도 했다. 집집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산에 묻힌 거의 모든 묘의 풀을 벤다. 난 열한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증조부, 고조부 묘까지 정리하는 건 마음이 영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피가 섞인 이들이라지만, 정서적 연결이 없는 이들에게 절을 하는 건 영 감정이 일지 않았다.


이때 준비하는 음식도 문제였다. 한 번 쓴 음식은 다시 쓰면 안 된다며 무덤 수만큼 따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듣자하니 이번에 가져온 말린 생선은 한 개당 6,7만 씩이나 했다. 음식값만 최소 50만 원 이상은 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소리 없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꼭 어포같은 걸 올려야 하는지, 그냥 간단한 음식으로 대체할 순 없는지 의아했지만, 입 꾹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앞으로 벌초에 나올 사람은 점점 줄어들 텐데 관리하는 묘의 수는 그대로이니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했다. 현실적으로 이대로라면 오래 버틸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매년 벌초에 참여하긴 어렵고 다른 이들도 그런 기대는 딱히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물론 젊은 사람이 워낙 귀해서 내가 계속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100세를 맞이한 할머니가 나중에 돌아가시면, 더 이상 서로 볼 것 같지 않은 게 우리 아버지 쪽 친척들의 현실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니까, 친척이니까, 무조건 예의를 갖추고 희생해야 한다는 게 불편했다. 됨됨이를 떠나 그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조아리고,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그런 문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기울지 않으면 작은 행동 하나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훗날 죽게 된다면 어딘가에 묻히고 싶지 않다.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게 남은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배려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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