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했다는 착각

by 달보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였다. 올해가 마지막 김장이라는 장모님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던 아내와 달리, 나는 10%의 여지쯤은 남겨두었기에 10%만큼은 당황스러웠다. 이번에는 아내가 고무장갑을 끼기로 했다.


"여보는 집에서 현이 보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모님 따라 간 해외여행지에서 혼자 숙소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새끼인데도 몇 시간 동안 오롯이 둘만 있어야 한다는 게 영 자신이 없었다. 최근에 엄마 아빠를 구분하기 시작하더니 유독 엄마를 찾는 경향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머리를 굴려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현이와 나는 엄마 없는 주말 아침 햇살을 맞았다.


동틀 무렵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는 생각보다 칭얼거리지 않았다. 통통한 볼살에 입을 맞추고,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운 채 거실에서 비위를 맞춰 주었다. 현이와 있다 보면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흘러갔다. 국그릇에 오트밀 한 스쿱을 덜어 데우고 바나나와 삶은 계란을 준비했다. 철분제도 잊지 않았다. 먹기 좋게 잘라둔 하얀 계란을 집어 먹는 현이에게, 오트밀에 바나나를 얹은 숟가락을 들이미니 잘도 받아 먹었다. 어릴 적, 먹기 싫다는데도 끝까지 밥숟가락을 들이밀던 할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30분쯤 흘렀을까.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 바닥에 현이를 내려놓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 순조롭게만 흘러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를 아내를 오매불망 기다리진 않아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쿵 하는 소리는 분명 들리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울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거실 쪽으로 돌렸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무장갑 낀 손은 여전히 그릇을 문지르며 뒤꿈치를 살짝 들어 겨우 시야를 넓혔다. 거실과 주방을 가로지르는 복도에서 현이가 앉아 울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우는 것쯤이야 일상이었다. 잘해줘도 울고 못 해줘도 울었다. 하지만 그때 들은 울음소리는 사뭇 달랐다. 어디가 아픈지, 뭐가 불편한지 알 수는 없는데도, 이건 분명 엄마를 찾는 울부짖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집에 엄마가 있고 없고를 인지하기 시작한 내 새끼의 성장에 기뻐할 새도 없었다. 네비게이션 도착 시간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찍힌 상황에서,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쳐 버린 것처럼 막막했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 만큼이나 나도 어지간히 아내가 보고 싶어졌다.


와중에 괜한 욕심이 나서 밥을 짓고 빨래도 하는 사이, 잠시 열어둔 찬장을 뒤지던 현이가 그릇을 깨뜨렸다. 그 바람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내 안의 악마를 마주했다. 군장 메고 깔딱 고개라도 오른 듯, 정오를 넘기지도 못했는데 이미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날은 근래 들어 가장 힘든 날이었다. 무려 아빠라는 작자가 엄마 잠깐 없다고,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 날이기도 했다. 방해만 될 것 같아서 되도록 안 가려 했던 처가댁이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우리 두 남자와 단단히 얽혀 있는 그녀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다음 날, 나의 고향인 대구를 향했다. 장모님의 배려로 얻은 김장 김치 한 통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출근하고 없었다. 아련한 옛 동네엔 아버지와 할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달랑 김치만 주고 갈 순 없어 밥 한 끼를 같이 먹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건 그즈음이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였다.


일평생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가지 못하고 일을 해 오신 어머니는 수년마다 한 번씩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곤 했다. 대뜸 전화가 와 수술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쓰럽긴 해도 가슴이 철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전처럼 어깨나 무릎 같은 부위가 아니라 문제가 뇌 쪽에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모래시계가 떨어져 갈 때 가속도가 붙는 듯한 착시처럼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갑자기 모래시계가 뒤집힌 듯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대장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도, 아내와 결혼할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던 나는, 이번만큼은 남몰래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순간, 뜬금없는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바로 어제, 엄마를 찾아 서럽게 울던 현이의 모습이었다.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 중 어느 분이 먼저 떠나실지 상상해보곤 했다. 의외로 씩씩하게 살아갈 것 같은 쪽은 고집 세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밖에 모르는 마음 약한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재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며, 죽는 날까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후회와 한을 품은 채 힘겹게 살아가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그건 아버지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오른 현이의 우는 얼굴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서럽게 흐느낄지도 모를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지구의 온도가 1도만 높아져도 인류에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이, '엄마를 잃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든 것뿐인데도, 내 세상은 마치 1도 뜨거워진 지구처럼 격변이 일어난 듯했다. 첫사랑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소나기 머금은 먹구름이 온 마음을 잠식한 그때 그 시절의 잿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탁한 빛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만 같았다.


아내만 옆에 있다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독립은 이미 십수 년 전에 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착각이었다. 어머니의 온기가 더는 필요 없을 거란 생각을 가뿐히 지르밟는 현실이, 부모의 품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이윽고 심장을 서늘하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