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내가 보인다

by 달보


너에게서 내가 보인다.

마음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뭘 해도 서툰 사람이었다. 행주로 밥상을 닦을 때도, 걸레로 방바닥을 닦을 때도, 손톱을 깎을 때도, 변신 로봇 장난감을 만질 때도 부모님이나 이웃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말했다. "참 어설프다." 어쩌면 지금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버릇이 남아 있는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작이 그랬을 뿐, 손에 익으면 뭐든 곧잘 해냈다. 물론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럴 테지만, 나는 특히 그 속도가 조금 빠른 편이었던 것 같다. 청소할 때 어디를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걸레질은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 손톱은 어느 쪽에 힘을 줘야 둥글게 깎이는지, 로봇 장난감은 어떻게 해야 순식간에 변신하는지 혼자 터득하곤 했다.


그리고 성격 급한 사람들을 보면 뭔가 이상했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안 좋게 보였다. ‘급하다’라는 말의 어감도 거칠게 들렸다. 나는 내가 성격 급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느긋하거나 차분한 편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급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 나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것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급했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랬다. 길을 걷다 문방구 유리창 너머 진열된 장난감을 보면 그 자리에서 당장 갖고 싶었다. 그날 사지 못할 거라면 아예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나의 욕망은 ‘오늘’ 혹은 ‘지금’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롤러브레이드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복숭아뼈와 아킬레스건 근처에 물집이 잡히든 말든, 관건은 오직 속도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그런 상대적 욕구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만족할 만큼 빠르고 싶었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내가 급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서른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얼른 고백해야 했다. 차라리 일찍 차여버리고 끝내는 게 낫지, 망설이는 사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건 상상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신중함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괜찮아 보이는 채용공고가 보이면 일단 지원부터 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채는 애초에 관심 밖이었다. 물론 스펙도 변변치 않았지만.


나의 급한 성격을 뚜렷하게 자각한 건 운전을 하면서였다. 이직한 회사에서 어쩌다 보니 1톤 트럭을 몰게 됐었다. 왼발로 클러치를 밟았다 떼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바꾸는 데만 해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발 사고만 나지 말라며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러다 운전에 익숙해지면서부터는 마음가짐이 확 달라졌다. 사고는 어느새 남일처럼 여기기 시작했고, 답답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난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단속 카메라도 없는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차,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끼어드는 차, 추월 차선에서 정속 주행하는 차를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잠시 후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아, 나도 성격이 정말 급하구나’라는 깨달음이 늦가을 낙엽처럼 마음에 내려앉았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이윽고 너를 만났다. 분명 두 사람의 DNA가 섞였을 텐데, 보면 볼수록 나를 빼닮은 너를 보며 엄마는 억울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낳았는데 손금 모양까지 아빠를 닮았으니. 그래도 성격은 엄마를 닮겠지.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난 너에게서 나를 보았다. 또래 아기들이 뒤집고 기어 다닐 때 너는 여전히 누워만 있었다.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안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느리고 서툴렀지만, 며칠 사이 배밀이를 능숙하게 하는 네가 보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며 "무슨 배밀이를 저렇게 빠르게 하냐"라며 감탄하는 걸 보고서야 네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는 배밀이만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굳이 기어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가 배밀이를 하며 두 손으로 땅을 짚는 소리는 ‘탁, 탁, 탁, 탁’이 아니라 ‘타다다닥’이었다. 이제는 기어다닐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가도, 네가 지나간 자리의 먼지가 함께 쓸려나가는 걸 보면 괜히 웃음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 또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그 속도 역시 남달랐다. 세상에 이렇게 빨리 기는 아이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내 아이에게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걸어다니기 시작했지.


너는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얼굴도, 체형도, 양쪽 모양이 다른 손금마저 완전하게 닮은 너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겪은 수모를 너도 겪지는 않을지, 내가 당한 괴롭힘을 너도 당하진 않을지, 내가 감내한 고통이 돌고 돌아 너에게로 향하지는 않을지.


기어코 아빠를 답습하겠다면, 이런 것들도 함께 가져가면 좋겠다. 길가의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가만히 바라볼 줄 아는 여유,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가로등과 신호등에 삶을 겹쳐보는 시선, 오늘과 지금에 감사하는 태도.


내 새끼야. 고맙고도 고맙다. 넘어지고 넘어지며 부모의 걱정을 등에 업고서 묵묵히 커가는 네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 매일 갱신하는 요즘이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너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세상빛을 보게 해서. 하지만 이왕 태어난 김에, 잘 지냈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너의 시간을, 너만의 방향에 맞게 쓸 수 있기를.


너에게서 내가 보인다.

너에게서 내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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