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거리두기

by 달보


요즘 같은 대한민국에서, 굶거나 추워서 죽는 일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더라도 왠지 근근이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2026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채우는 아이러니한 세상.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 그리고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다양한 생각들. 분명 예전보다 더 나아진 듯한 세상인데, 사람은 더 쉽게 무너진다.


이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태어난 나는, 요즘에 걸맞게 살아가고 싶었다. 정답도 없는 곳에서 특정 모양새를 갖추겠다는 게 무의미한 발악일 수는 있겠으나, 이것 한 가지만큼은 안고 가고 싶었다. 그건 바로 부모님처럼 살지 않는 것.


아버지는 내가 뭘 하든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용돈을 드리지 않아도, 결혼식을 조촐하게 준비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분이다. 좋게 보면 프리한 아버지, 나쁘게 보면 그저 무관심한 사람. 어머니는 아직도 내 볼에 입을 맞추지 못해 아쉬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과 차츰 거리를 벌리고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쩌면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겪은 것보다도, 사랑의 힘은 퍽이나 약한 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을 그토록 사랑한다고 여기면서도, 연을 끊고픈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친다.


"돈이 있든 없든 형편에 맞게 살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빚은 지지 마라."


아버지. 아버지는 왜 그 말을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은, 정말 아버지의 것이었습니까. 뭐, 이젠 됐습니다. 출처 불분명한 그 말들이 가슴에 스며들었는지, 이미 저는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럴듯한 말로 저를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이미 당신의 말은 빛을 잃었고, 제게 닿지 않습니다. 부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시고, 지금부터라도 떳떳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전 저의 새 가족을 지키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돌고 돌아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