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래,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한 권의 소설책이었다.
일경인지 상경인지는 모르겠는데, 군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생활관 열린 창문 너머로 ‘움직이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큼지막하게 단 콤비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매주 한 번씩 오던 차였다. 늘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차 안과 바깥에 책장이 빼곡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나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의 저자가 기욤 뮈소라는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 해리포터가 전 세계를 휩쓸던 무렵, 그 열풍이 우리 학교에도 번져 스타크래프트만 하던 친구들까지 도서관으로 몰려들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어렵게 책을 빌렸지만, 반도 채 읽지 못했다. 그런 내가 군대에서 책을 읽는다니.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 인생에 독서가 비집고 들어왔다. 한국 주식시장처럼 잔잔하던 내 머릿속이 어느 순간 미국장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하며 거침없이 말을 내뱉던 전과 달리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됐다. 학창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결국 글쓰기까지 손을 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은 그때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소설로 독서를 시작해놓고, 자기계발서에만 매달렸다. 다른 장르는 거의 읽지 않았다.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오락으로 여겼고,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뿐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 책들 덕분에 많은 변화를 겪었기에 더 확신했던 것 같다.
글쓰기.
글을 쓰지 않았다면, 다시 소설로 돌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브런치에 어설픈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면서, 거의 1년 만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나의 부족함이 더 또렷해졌다. 나는 일기와 에세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고, 낯선 사람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쓰기가 막힐 땐 이렇게만 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훗날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로 여겨질지는 그 당시로선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내 글의 방향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걸 느낀 건, 우연히 시작한 신춘문예 도전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에세이가 문학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문예지 공모 요강을 읽다 보니,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거리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직감했다. 처음에는 에세이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말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였다.
한 번은 지역 작가 간담회에 초청받은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받은 유인물에 이런 통계가 있었다. 지역 작가로 등록된 사람의 95% 이상이 에세이와 시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숫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지표였다. 시나 에세이는 쓰려면 아무나 쓸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소설은 문학일까.
그렇게,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일본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내 글은 형편도 없거니와, 깊이가 참 얕다는 것을. 더불어 묘사의 중요성과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며 살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설명으로 글을 채웠던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장면으로 보여주고 싶어도, 그걸 제대로 옮겨낼 힘이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지금도 나는 그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에세이만 써오던 사람이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해서 쉽게 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주제 넘는 포부를 품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다. 요즘 내 글이 어딘가 어색한 건,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어중간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난 소설의 위대함을, 꽤 복잡한 방식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참 나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