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이 아닐지도 모르고

아님 말고

by 달보


"나가?"

"응."


"오늘 새벽에 안 나갔어?"

"나갔는뎀."


"요즘 글 좀 써지는 갑지?"


그래서 나가는 게 아닌데, 그래서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엔 그동안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실 '많은 일'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쓰려다가 지치고, 쓰려다가 포기하고, 쓰려다가 도망가기를 반복했을 뿐이니까. 오늘 새벽에 나는 글을 쓰러 나갔다. 하지만 내가 몰래 나간 걸 알았는지, 안 그래도 동 트기 전에 일어나는 아이가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홈 캠을 보지 말자고 다짐해놓고서는 습관처럼 눌렀다가 알게 되었다. 잠이 부족한 아내가 아침 댓바람부터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게 영 마음이 쓰여 결국 집에 들어가고 말았다.


"저녁에도 한 번 나가보려고."




새벽에 글을 쓰다가, 아이를 재우고 카페로 가서 글을 쓰다가를 얼마나 오갔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오늘은 이렇게 카페에 와서 겨우 글을 쓰고 있지만, 아내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지금 확 자버리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 볼까. 하지만 오늘처럼 현이가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어떡하지. 그럴 바엔 지금 쓰고 자는 게 나을까. 집에서는 도저히 못 쓸 것 같은데 카페라도 가야 하나. 설령 카페에 간다 한들 무슨 글을 쓰지?


기어코 집밖에 나와 카페로 걸어가는 동안 문득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을 화두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길을 잃었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뭘 해야 하는지를 하나도 모르겠다. 수백 번의 투고가 퇴짜를 맞아서인 것도 있겠고, 매일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점점 눈에 들어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 근데 왠지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 느낌. 대체 뭐가 내 마음을 이렇게 헤집어 놓는 걸까.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는 셈 치고 글쓰기를 조금 쉬기로 했다. 그동안 글태기가 찾아온 적은 많았지만 그래도 글을 내려놓지는 않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일본 소설 몇 권을 읽다가, 문득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가 눈에 들어와서 8권을 거의 보름 만에 다 읽었다. 일하는 동안에도 짬을 내서 읽을 만큼 재미있었지만, 밑줄 치는 문장이 쌓일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필자와 비교하고 있었다.


'와, 정말 좋은 문장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이 재미있으면 재밌게 읽으면 될 것을,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조금 다른 의미의 작가병? 윽, 작가를 꿈꾸면서 '작가'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이렇게 부끄럽다니.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는데 뭘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그 방법을 추천할 만큼, 그렇게라도 시작하면 무슨 글이든 써지곤 했다. 하지만 그게 마치 남 일인 것처럼, 이젠 그마저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뭔가 타이핑이라는 행위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처럼. 글쓰기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처럼.


잠시 고개를 들어 보니 창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지인들과 떠드는 사람, 노트북과 씨름 중인 사람,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전구색 간접 조명 아래 유리 너머로 보이는 거라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점처럼 박힌 빨갛고 하얀 불빛들뿐이다. 분명 카페로 걸어올 땐 밤풍경이 꽤나 근사했는데 말이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 비록 마음은 조금 힘들어도 나는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는 이 순간을 진심으로 사랑해. 얼마나 깊은 늪에 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시원해질 날이 오겠지.


또 이 늪이, 늪이 아닐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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