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보니 별다른 재주 없이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시간부터 벌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정말 운이 좋게도 그렇게 벌어낸 시간 속에서 발견하게 된 건 바로 글쓰기였다.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글쓰기를 시작한 게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원대한 뜻을 품은 적도 없었고, 평소에 글을 즐겨 쓰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단지 한창 연애할 때 연애편지를 조금 쓴 적이 있고, 비교적 여유로운 날에 가끔 일기를 쓰는 게 내가 평생 쓴 글의 전부였다. 심지어 난 독서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 볼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했지만 독서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하물며 다 읽고 나서 글까지 써야 하는 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끔 책과 관련된 영상을 보다 보면 그렇게 사람들이 '서평을 한 줄이라도 써라', '독후감을 쓰는 게 좋다'라고들 하는데 난 그런 조언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대신에 필사만큼은 꼭 했었다. 어쨌든 나도 한 권의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하고 끝내는 건 찝찝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소장하고 싶을 만한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런 것들을 따로 메모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필사라도 해야 독서한 시간들에 의미를 보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시절을 후회한다. 10년이 넘는 독서기간 동안 제대로 된 글을 단 한 번이라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게 뼈에 사무치듯 후회가 된다. 글쓰기가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진작에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천만다행인 점은 그동안 꾸준히 책을 읽어왔던 시간들이 비로소 글을 쓰고 나니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막상 글쓰기를 하고 보니 그간 독서로 채웠던 시간들이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쓰기가 좋은 점은 내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게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중엔 되도록이면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도 있지만, 그런 진실도 글쓰기를 통해 직접 마주하게 되면 되려 해소되는 효과가 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음에도 내용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지라도, 직접 글을 써 보면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이상의 것들이 자신의 내면에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비로소 글쓰기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다.
내게 글쓰기가 유독 특별한 이유는 어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걸 정말 못하는 내가 글쓰기만큼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글을 직접 써 본 결과, 강하게 느낀 점은 글쓰기는 단지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라고들 하지만, 그들은 본인의 필력이 많이 쓰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종종 보이는 글쓰기 수업은 적은 수업 횟수에 비해 수업료가 꽤 상당하다. 많이 써 본 경험도 없이 그저 잘 쓰고 싶고, 답답한 마음에 비싼 돈 들여가며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솔직히 그들의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진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글쓰기도 정말 생각 하나 차이로 모든 게 결정된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도, 잘 쓰는 것도, 마무리를 짓는 것도, 사람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모두 생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삐딱하면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어찌저찌 글을 겨우 쓴다 해도 삐딱한 마음이 글에 그대로 묻어 나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처음엔 흥미를 가지고 잘 읽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글은 금세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글이라도 꾸준히만 쓰다 보면 차라리 안 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글로 담아내는 과정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해소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땐 글쓰기로 풀어낸다. 글쓰기는 산책이나 명상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힐링이 되는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힘이 약해질수록 매력적이고 독특한 글을 쓸 수 있다. 고정관념을 풀어헤치는 과정을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글감을 얻을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기만 하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면서 비로소 글을 쓰는 능력에 대한 능력이 폭발적으로 올라간다.
가끔 가다 우연히 읽게 되는 좋은 글은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 얻어걸린 운 좋은 결과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즙을 짜내듯 노력에 노력을 더해서 창조한다기보다는 내려놓고 무작정 쓰다 보니 그런 글이 탄생하게 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소리다. 글쓰기가 특히 매력적인 건 단순히 쓰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된다는 점이다. 자신을 옭아매던 생각을 글쓰기로 조금씩 풀어내다 보면, 본인을 괴롭히던 마음의 짐마저 소멸되고, 동시에 글쓰기 실력도 쑥쑥 올라가게 된다.
문장 구성, 맞춤법,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쓰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 포기하지 않고, 생각에 지지 않고 꾸준히 쓰기만 하면 모든 건 때에 맞게끔 나를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무언가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실제로 내가 그랬었다. 적당한 때가 되니 와이프에게서 날카로운 피드백이 날아왔고, 적당한 때가 되니 우연찮게 읽은 어느 책에서 내 필체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내용을 읽게 됐었다. 이런 건 가히 기적이라고도 생각하며, 확실히 우리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글쓰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삶의 중심을 바로 잡아주었다.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좋은 글을 써내는 것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글쓰기로 먹고사는 삶, 글쓰기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고이 전달하는 삶을 향해 매일 쓰고 또 쓸 것이다. 글쓰기는 인생을 밝혀주는 위대한 마법이다. 이런 진귀한 경험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경험해 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쓰기에 대한 나의 모든 진심을 이 한 권에 담아본다.
부디 생각의 술수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