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발견한 인생의 과업
뭘 해야 할지,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나 자신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빈약하던 약 1년 전쯤, 따뜻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결정이었던 '시간을 벌기 위한 이직'을 감행한 후에 새벽기상으로 시간을 확보했지만, 막상 새벽에 일어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따뜻한 차를 내리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차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웬만한 비린내도 잘 맡지 못할 만큼 둔해빠진 나는 커피든 차든 간에 그 향을 잘 맡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데 향을 맡지 못한다면 그냥 수돗물을 끓인 것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차를 내리게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와 1:1로 마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어쩌면 차를 내리면서 오갈 데 없는 마음이 현재라는 순간에 편안하게 안착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를 마시면서 새벽과 친해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생의 방향은 제대로 갈피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야 내가 그때 이직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연봉의 절반을 포기하는 건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모자라지 않았을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를 지지하고 믿어준 아내가 없었다면, 난 아마 글쓰기를 영영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지금의 나도, 오늘의 글도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럼에도 그때 돈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젊은 나이에 필요한 것은 돈보다는 시간' 그리고 '늙은 나이에 필요한 것은 시간보다는 돈'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마냥 편하게만 살았던 세월의 흔적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일찍부터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 돈이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부터 얻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실질적인 액수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역시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언제나 자기만의 할 일이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바랄 게 없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정말 단순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평화롭기 그지없고, 내일도 아마 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혼을 앞두고 연봉 7천을 포기한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