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공모전을 준비하며
며칠 전, 브런치북 공모전이 끝났다. 마침 브런치 작가가 처음 되었을 때도 작년 이맘때쯤이어서 다른 건 몰라도 브런치북이라는 단어는 꽤 자주 목격했었다. 근데 그땐 브런치에 글도 쓰지 않았고 브런치라는 공간에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지금처럼 내가 이렇게도 많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공모전에 응모까지 하게 될 줄은 당연히 꿈에도 몰랐다. 인생은 참 살고 볼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브런치 작가가 됐음에도 글 쓸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가 반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글을 쓰고, 브런치북을 8편이나 만들어서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까지 했으니 말이다.
브런치북 8편을 만들어서 냈다는 건 사실 내겐 그리 큰 의미는 없다. 그중 절반 이상은 평소 쓰던 글을 긁어모아 약간의 퇴고를 거친 후 모아서 냈을 뿐이다. 원래 브런치북으로 엮을 생각 없이 쓴 글들이지만, 브런치북 공모전이라는 명목이 생겨서 어찌 보면 어거지로 모아놓은 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쓴 브런치북들도 몇 편 있다. 원래부터 내 마음에 있었는지, 조용히 내 옆을 지나가다 내게 발목을 붙잡힌 건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써낸 그 브런치북들에 유독 애정이 간다.
'계획에 없었던 브런치북'
난 개인적으로 글쓰기를 할 때 크게 막힘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쓰는 양도 그렇고 가끔 글을 쓰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그분들의 고충은 들어보면 그나마 나 혼자 생각했을 때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는 훨씬 빠르고 쉽게 쓴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에 그 생각이 많이 변했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내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평소 써보지 않았던 유형의 글을 써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유독 막히는 구간이 많았다. 조금 쓰다 보면 막혀서 자꾸 딴짓을 하게 되고, 딴짓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만큼 쓰는 게 평소보다 많이 힘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잘 가다 막히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금세 질려하고 그런 부분이 있다면 해결한다기보단 편법을 찾고 오히려 돌아가는 편이다. 하지만 글쓰기라서 그런지, 글쓰기로 뭔가 큰 일을 해보고 싶단 결의가 있어서 그런지 글쓰기 앞에선 그냥 참고 견뎠다. 버티고 버텨서 적정량 이상은 어떡해서든 쓰고자 갖은 애를 썼다. 퀄리티는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이전에 썼던 글쓰기에 대한 글에서 자주 언급했듯 어차피 노력해 봤자 내가 가진 것 이상은 쓰지 못한다는 생각은 다행히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흥미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쓰는 게 버겁다'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다시 돌이켜 봐도 결코 쉽지가 않았다. 보통 집에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카페를 가면 거의 모든 것들이 해결되곤 했는데, 이번엔 카페를 가도 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집에서 쓰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전처럼 버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다 써냈다. 사실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하려고 했던 브런치북은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로 했다' 단 한 편이었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욕심 때문에 몇 편을 더 써낸 것이었다. 원래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고 자체적인 욕심에 의해 일을 벌인거니 적당히 해도 관계는 없었지만, 뭔가 그렇다고 대충 쓰고 포기하긴 싫었다. 앞으론 더 힘든 일이 많을건데, 지금 이렇게 물러서면 훗날 다가올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멘탈 부여잡고 시작한 건 끝까지 해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100% 설명할 순 없다. 난 나이지만, 내가 모르는 수많은 요소들이 내 주변을 맴돌며 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결코 내 의지로 해낸 게 아니라는 점. 두 번째는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써오며 형성된 습관이 거의 다 했다는 것.
결국 습관이었다. 글쓰기 앞에서 무너질 뻔했을 때, 날 일으켜 세운 건 내 의지도 생각도 결의도 다짐도 아니었다. 오직 습관이었다. 습관이 날 쓰게 만들었고, 습관이 날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의지 같은 건 쓰다가 막히면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이미 도망가고 없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습관은 그런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하곤 했다. 오늘은 그래도 좀 쉬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날 아무리 붙잡아도 이미 손가락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