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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멈추는 게 두려운 이유

알면 알수록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

by 달보


어차피 글쓰기를 하기로 했으면 꾸준하게 쓰는 게 낫다. 힘들어도 꾸준히 써야지만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꾸준히 써야 글쓰기를 통해 겪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써지지 않아도 써야 하고, 두려워도 써야 하고, 문맥이 엉망이라도 써야 하고, 일단 쓰기 시작했으면 어떡해서든 매듭은 지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기대, 집착, 착각 그리고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나마 쓰는 게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다만, 쓰기 전엔 차분하게 가라앉혔던 마음이 쓰는 동안에 갑자기 다시 차오를 순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단 쓰기 시작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셈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하던 일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결코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은 뭐라도 끄적이기 시작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꾸준하기 위해선 적절한 쉼도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도 글이 영 써지지 않거나 머릿속이 유달리 뒤죽박죽인 날은 명상과 산책을 즐긴다. 아내와 편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써지지 않는 글의 연장선상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쓰면 쓸수록 좋은 게 글쓰기라곤 하지만, 아무리 글쓰기라도 할지라도 너무 쓰기만 한다면 되려 사고가 틀어막히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글을 쓴답시고, 글이 영 써지지 않는답시고, 쉬어야만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완전히 손에서 놓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쓰기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쉼이라는 평온에 조금씩 젖어들면 글쓰기가 아예 멈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고 인생의 과업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의지를 다지지 않으면 금세 풀어지기 마련이다. 글쓰기도 좋지만 쉬는 게 사실 더 좋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쉬고 싶은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달리 말해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글쓰기가 힘들거나 막혀서가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본능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혹은 할 수 있는 만큼의 글을 썼다면 쉬는 게 좋다. 아마 쉬는 동안에 노력을 들인 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져 다시 글을 쓰게 되면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쉼의 텀이 글쓰기의 텀보다 더 잦다면 그건 본인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이유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거나 그보다 더 빈약한 이유에서 억지로 글을 쓰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습관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는 아주 강력은 시스템이지만,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허망한 구조이기도 하다. 아무리 매일 꾸준히 같은 시간, 비슷한 분량의 글을 써 오던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그런 루틴은 깨질 수 있고 변할 수 있다. 루틴이 변하는 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루틴이 깨져서 애써 굳힌 좋은 습관이 녹아내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글쓰기가 힘들고 막혀도 아예 넋 놓고 쉬기보다는 아무 의미 없는 한 줄이라도 쓰면서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쉬기 위한 쉼이 아니라, 글쓰기를 위한 쉼이라면 말이다. 아예 모르고 시작한다면 그나마 무턱대고 뭐라도 시작하게 되지만, 어떤 것을 얼마나 감당해야 하는지 알고 시작하는 건 그 부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고로 글쓰기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일수록 멈추는 건 위험하다. 무너진 글쓰기 습관을 다시 들이려고 마음먹을 때, 어떤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지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쉬고 싶겠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잠시 가라앉고 싶겠지만, 글쓰기에 뜻이 있다면 완전히는 내려놓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글에 대한 미련으로 훗날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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