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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게 왜 어렵다고 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그들이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

by 달보


생각해 보니, 글쓰기를 제대로 하기 전에도 글을 종종 써먹긴 했다.


가령 누군가에게 중요한 할 말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을 때면 편지를 썼다. 편지 쓰는 건 귀찮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편지지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볼펜으로 쉼 없이 적어 나갔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마음속에 '할 말'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편지에 진심 어린 글을 담아 전달하면 대부분의 경우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편지 덕분에 친구들과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편지 덕분에 이루어질 수 없을 법했던 인여과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편지 덕분에 살면서 보기 힘든 타인의 눈물도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난 글쓰기를 일상에 제대로 들이기 전부터 이미 글의 힘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편지를 써야지'가 아니라, '이번엔 편지를 쓰는 게 좋겠어'라고 생각하며 끄적이기 시작했던 걸 보면 말이다.




난 편지를 한 번 쓰면 서너 장은 쉽게 쓰곤 했다. 남들의 사정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편지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 편지지를 앞에 두고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심지어 여자친구와의 기념일에 줄 편지를 부탁하는 친구도 있었다.


예전엔 그런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지 마음에 있는 걸 꺼내 쓰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러질 못할까'싶었다.


지금도 편지지에 글 한 자 적기 힘들어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아마 그들은 '잘 쓴 편지'라는 정해진 형식이 있다는 착각과 써 본 경험이 없음에도 잘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이 버무려져 별 볼 일 없는 종잇짝 앞에서 꼼짝도 못 했던 것이리라.




어찌 보면 살기 쉬운 세상이다.


착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재능으로 귀결되는 세상인 걸 보면 말이다.


글쓰기를 오래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글을 많이 남기고 싶다. 이 세상에 또 다른 존재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내가 써왔던 글들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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