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한층 더 깊게 다가오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잠깐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조금 걸었다. 근데 그날따라 걷는 게 되게 자세하게 느껴졌다. 발걸음 소리,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 걸으면서 날 스치는 바람결 등이 평소보다 더 깊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걷는 게 꽤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 치고는 꽤 당황스러웠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 생각은 떠올린 적도 없고, 발상 자체가 쉽게 해 볼 수 없을 법한 생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잔잔한 일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나이기에 걷는 것에 대한 가치는 꽤 높게 평가하는 편이긴 했다. 시간 나면 자주 즐기는 것도 산책이고, 글쓰기 하다가 막힐 때도 주로 산책을 한다. 하지만 여태껏 그 많은 산책을 하면서도 걷는 게 재밌다는 생각은 단연코 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 들어 하루 3번 명상을 해서일까. 눈에 보이고 몸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한층 더 깊게 다가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걷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 살아갈 남은 여생이 생각 이상으로 즐거워질 것 같기도 하다.
나름 꽤나 고생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고난과 시련이 적절히 범벅된 세월을 보내왔지만,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가성비가 꽤 좋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통해 세상 곳곳을 누비면서 시대의 현자들을 매일 만나기도 하고, 글쓰기를 통해 매번 색다른 모습의 나와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며 알차게 살아가니 말이다.
딱히 맺어야 할 관계도, 큰 비용도, 좋은 장소도 필요 없다. 단지 시간만 필요할 뿐이다. 더 좋은 건 나를 위해 벌이는 과정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읽고 쓰는 것의 원초적인 목적은 온전히 나를 위함이지만, 그로부터 뻗어나가는 긍정적인 영향들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나의 소박한 일상을 적다 보니 평소에 '심심하다'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만하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난 이런 내 삶이 마음에 든다. 걷는 것마저도 재밌어지는 마당에 대체 뭘 더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