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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24. 2024

당분간 미라클모닝은 지나가던 개나 줘야 할지도

아빠가 된 소감이라고 해야 할까


며칠 전에 아빠가 되었다. 우리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아직 어색하다. 애석하게도(?) 아들은 예쁜 엄마가 아니라 몬솅긴 날 닮았다. 이제 겨우 갓난아기라 얼굴은 점차 변할 수 있다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내 얼굴을 빼다 박았다. 그럼에도 그 아기의 아빠가 바로 나라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다. 세상빛을 보게 된 아들을 처음 봤을 때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 감격스러워 눈물 흘리거나 막 그러진 않았다. 그저 기묘했으며 낯설었을 뿐이었다.


나흘 후에 신생아실에 있던 아기를 회복실로 데려와서 한 시간 동안 같이 있어봤다. 기저귀도 갈아보고 속싸개도 싸봤다. 트림 시키느라 안아서 등도 살살 두드려봤다. 어색했고, 어설펐고, 어려웠다. 그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체가 입만 갖다 대면 엄마젖을 본능적으로 먹는 게 신기했다. 다만 쭉쭉 먹는 건 아니었고 자다가 먹다가를 반복했다. 엄마도 아기도 둘 다 힘들어 보였다.


기저귀랑 속싸개는 할 줄을 몰라서 건들 생각이 없었는데 수유 중에 응아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갈아야만 했다. 속싸개를 벗기고 기저귀를 벗긴 다음 새 기저귀를 채웠다. 뭔가 헐거워서 제대로 안 채운 것 같은데 탯줄 때문에 더 이상 빡빡하게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기저귀를 채웠으니 속싸개를 싸야 했다. 근데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아내가 속싸개 없이 수유하는 동안 유튜브로 검색해서 공부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두 번 정도 보니 안 보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유를 잠시 쉬는 동안 배운 대로 속싸개를 싸봤다. 역시 속싸개 싸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기의 몸을 다루는 게 어려웠다. 힘줘서 만지면 안 될 것 같은데, 의외로 힘을 생각보다 많이 들여야 아기를 다룰 만했다.


이후에 신생아실로 다시 내려갔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속싸개를 보면서는 나쁘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속싸개를 벗긴 다음 기저귀 상태를 확인하고선 엄청 웃었다며 아내가 말해줬다.


제왕절개 수술 후 이틀 정도 지나니 아내 몸이 어느 정도 눈에 띄게 회복된 것 같았다. 그때부턴 생각보다 할 게 별로 없었다. 물 채워주고 방 쓸고 닦아주고 식판 받아주고 새 옷 받아주고 하는 것 말고는 음, 딱히 없는 것 같았다. 나름 땅바닥에서 잘 잔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중간 아내가 수유하러 갈 때마다 한 번씩 깨서 그런지 새벽 일찍 일어나서 평소처럼 글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조리원 병동으로 올라가면 좀 나을까 싶은데 지금으로선 왠지 힘들어 보인다.


당분간 미라클모닝은 지나가던 개나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아빠가 될 때를 대비해서 새벽기상을 습관들인 것도 있었는데). 아빠가 된 소감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 아빠가 된 것 같지도 않으니까. 다만 아내 심부름을 간답시고 산부인과 옆에 있는 마트로 운전해서 가는 길에 문득 아들 생각이 나더니, 다음의 말이 뇌리를 스치긴 했다.


'의외로 재밌겠는데?'


왠지 이 글을 베테랑 엄마 아빠들이 보면 코웃음 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든 건 사실이었다. 정말 재밌을지 아닐지는 조금만 더 지나고 보면 금세 알 수 있겠지 뭐. 재미는커녕 삶이 고달파질 정도로 더딜 수도 있겠다만, 아들과 함께 하는 앞으로의 삶은 전에 없던 색다른 날들일 거라고 감히 확신해 본다.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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