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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25. 2024

노가다판에서 뒹굴던 그때 그 시절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은


요즘 산부인과 조리원 병동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모유수유의 혜택을 최대한 보기 위해 24시간 모자동실도 하고 있어서 여유가 많이 없어졌다. 그래도 자식을 위한다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쏟아붓는 건 확실히 자세가 남다르긴 하다. '기꺼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글쓰기를 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곤 한다.


덕분에 집은 거의 비어있는 상태다. 그 사이 미뤄두었던 안방 욕실 타일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화장실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양생 하기에도 딱 좋을 것 같았다. 아내가 알려준 스케줄에 맞게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갈 때마다 이리 넓고 쾌적한 공간이라도 아내가 없으면 별다른 매력이 없다는 걸 느낀다.


내 머릿속엔 보통 시공하시는 분들은 약속시간보다 좀 더 일찍 온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왠지 이번에도 그럴 것 같은 마음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집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약속시간에 딱 맞게 벨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현관 벨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서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보수 작업하러 두 분이 오셨는데 두 분 다 내 또래로 보였기 때문이다. 혹은 더 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충 아내한테 타일 시공했던 사장님의 아드님분이 온다는 소린 듣긴 했었다. 그래도 그렇게 앳된(표현이 맞는진 모르겠다) 분이 오실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어리단 이유만으로 놀란 건 아니었다. 예전에 노가다판(?)에서 한참 일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라 감회가 남달랐던 것이다.




예전에 목수일을 배운답시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다가 어찌저찌 한 팀에 들어가게 됐었다. 그 팀은 보기 드물게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큰 형님이 40대 초반이었고(이젠 40대 후반 정도 됐겠다) 그 밑에 두 형님들은 나보다 2살 위였다. 새로운 현장에 갈 때마다 우리 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세대 차이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차이가 그리 크지도 않았다. 일 배울 땐 욕도 먹고 혼도 많이 났지만 쉬는 시간에는 다 같이 스마트폰으로 팀 전략게임을 같이 할 정도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지방으로 출장을 많이 다녔었다. 출장 가면 보통 모텔에서 숙소 생활을 해야 했고, 일 마치면 항상 술 한잔을 곁들였다.


숙소에서 지낼 때나 술 마실 때나 형들은 선을 넘지 않았다. 곱씹어 봐도 세 명 다 꼰대 기질은 없었다. 큰 형님은 장난기가 많았고, 둘째 형님은 진중한 듯하지만 돌아이(?) 기질이 다분했고, 셋째 형님은 삼국지 장보고 같은 타입이었지만 정이 많은 타입이었다.


집에 타일 보수공사하러 오신 젊은 두 분을 마주니 옛날 그때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싶었다.


"요즘 일 많아요?"

"일당은 얼마나 올랐어요?"

"허리 안 아프세요?"

"주종목(주로 시공하는 현장)이 어디예요?"

"언제부터 일 시작했어요?"


하지만 참았다. 민폐일 것 같았다. 어떻게 작업하는 지만 물어보고 뒤로 빠져서는 방해하지 않았다. 누군가 뒤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지 땀도 삐질삐질 나면서 될 일도 잘 안 됐던 옛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럼에도 괜히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밖으로 걸어 나가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시원하게 지날 수 있게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철수하는 길에 콜라와 사이다를 하나씩 드렸다(배달은 자주 시켜 먹지만 탄산은 먹지 않는 우리 부부여서 집에 콜라와 사이다가 넘쳐났다).


이다음엔 또 어느 현장으로 A/S를 갈까 궁금했다. 철수할 때쯤엔 오전 11시쯤이었는데, 왠지 밀린 보수 공사를 하러 돌아다니면서 그날의 일정을 채울 것만 같았다.


철수하는 젊은 작업자분들을 배웅하며 문득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현장일을 그만둘 때 '다신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긴 했다. 그때의 다짐은 요즘처럼 열심히 사는 이유 중 일부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분들을 마주했더니, 땀 흘려가며 일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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