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 4시 30분에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집에서 잔 건 아니었다. 난 요즘 며칠 저부터 아내와 얼마 전에 태어난 아들과 함께 조리원 병동의 한 방에서 자고 있다. 아들이 신생아실에 있을 땐 그나마 잘 만했는데, 어제부터 모자동실 한답시고 방으로 데려왔더니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나마 난 양반이었다. 아내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눈이 퀭한 게 모든 감각이 둔해빠진 내 눈에도 보였다. 미안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예정되어 있던 새벽의 글쓰기를 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 가만히 있어도 도움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생존본능이 발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수유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배고프다고 울어서 젖을 물리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금세 잠들곤 했다. 그렇게 울다가도 젖을 물리면 뚝 그치고 꿀떡꿀떡 소리가 날 만큼 열심히 먹는 게 신기했다. 더 신기한 건 그렇게 열심히 먹다가 기절하듯 다시 잠드는 것이었다. '서서히'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울다가 갑자기 먹다가 갑자기 잠드는 패턴이 반복됐다. 본인은 편하겠지만 엄마는 죽을 맛이다. 그 옆에서 보는 아빠도 속이 타고.
어느 정도 수유가 끝난 후 아내는 누웠고 아기는 트림을 시켜야 해서 내 품에 안았다. 아기 등을 어루만져주는 동안 '출근까진 아직 1시간 정도 남았으니 글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와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아내는 수유하느라 잠 한숨도 못 잤는데 그 와중에 글 쓸 생각을 남몰래 품는 게 맞는가 싶었다. 다만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 10분쯤 토닥였나, 트림을 한지 안 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됐다 싶어서 아기 침대에 눕혔다. 눕히자마자 인상 오만상 찡그리며 울길래 다시 안았다. 그 사이 해도 뜨고, 곧 아내 아침식사 시간도 다 되어갔다. 하물며 아기가 얌전히 잔다고 할지라도 글쓰기는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아내는 좀 쉬어야 하고 아들도 아직 너무 갓난아기라서 다른 일 하는 게 불안했다.
때문에 할 일들은 잠시 미뤄놓고 아기를 조용히 안아 침대 위로 올라간 다음 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있었다. 아들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세계관의 일부가 이 작은 생명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글이 술술 써질 때보다도, 명상을 할 때보다도, 산책을 할 때보다도 훨씬 더 내면에 안온함이 스며든 것 같았다. 만약 다른 이유 때문에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꽤 짜증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희생함으로써 아내가 쉴 수 있고 아기도 편히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았다. 난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내 가족에 평화가 찾아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수유하느라 밤을 꼴딱 새운 아내와 태어난 지 10일도 안 된 갓난아기를 두고 글을 썼다면, 글 쓰는 취지에서 한참 벗어난 짓을 벌인 셈이었을 거다. 나 잘나고 싶은 욕망에 심하게 빠져 있었다면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좀 아찔하기도 했다.
여하튼 평화로웠다.
이미 날이 밝아서 깊게 잠들진 못했겠지만 편히 누워 있는 아내를 보는 것도,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이 곤히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아들내미를 보는 것도 좋았다.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그 '평안'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과연 내가 결혼하지 않고 아빠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죽기 전에 그것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여러모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