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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ug 01. 2024

내 아내지만 독하다 독해

물론 원래부터 독한 줄은 알고 있었다만


아내가 있는 조리원 방에서 갓난아기인 아들이 내 배 위에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친구들 단톡방에 올렸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친구1 : "모자동실? 설마 계속 같이 있는 거 아니제?"


나 : "한 방에서 이틀 째 같이 있는 중."


친구1 : "아니 왜..? 굳이?"


친구2 : "그러게.. 비싼 돈 주고 굳이.."


'이게 이상한 건가?'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살짝 아리송했다. 조리원에 있으면 당연히 아기는 신생아실에 맡기는 게 맞지 않냐는 그들의 뉘앙스가 느껴졌다.


모자동실은 아내의 생각이었다. 신생아실에 맡기면 몸은 좀 편할지언정 모유수유를 실패할 수도 있으니, 조금 고생하더라도 2주 간 함께 있겠다며 되도록이면 신생아실에 맡기지 않았다.


물론 모유수유를 할 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리원에 있을 땐 수유콜이 올 때만 내려가서 수유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남달랐으며 생각보다 깊은 듯했다.


부모가 된 건 처음이라 조리원실에서의 모자동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겪어보기 전까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모자동실을 해 보니까 하루 만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땐 그나마 무탈했다. 아기도 잘 자고, 혹 보채더라도 참을 만했고 달랠 만했고 견딜 만했다. 문제는 밤 10시쯤부터 해 뜰 때까지였다. 우리 부부에게 밤 10시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들은 그런 우리의 패턴에 전혀 맞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1. 울기 시작한다

2.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먹인다.

3. 트림을 시킨다.

4. 진정되면 아기 침대에 눕힌다.

5.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울기 시작한다.


1번부터 5번까지의 패턴이 밤새도록 반복했다.


내가 출산한 것도 아니고 내가 젖을 먹이는 것도 아니어서 난 그나마 괜찮았다. 아내가 수유하는 동안에는 잠깐이지만 잠도 잘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아내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잠 잔 시간이 1시간도 되지 않았다. 아기가 울면 달래야 하고, 배고프면 젖을 물려야 하고, 다 먹은 거 같아서 눕히면 다시 울기 시작하니 그녀는 밤을 꼴딱 새워야만 했다.


잠 못 자서 힘든 것도 있지만, 그런 아내를 두고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가 수유하는 동안 옆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이런저런 공부도 해 봤지만, 현실에 적용하여 시원하게 해결될 법한 솔루션은 없었다. 저마다의 성향과 환경이 다르듯 눈앞의 아기를 달래는 방법은 우리 부부가 스스로 터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알려주는 건 그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첫날을 그렇게 고생하니까, 두 번째 날부터는 해가 지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시침이 숫자 10을 지날 때면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까'라는 마음을 파고들었다.


아기가 왜 우는지 점점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이번엔 이렇게 하면 울음을 그쳤는데, 다음번에 똑같이 하면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기저귀를 가는 것과 트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아기를 안고만 있는 것도 서툴렀다. 나와 아내만큼이나 아기도 서툴고 거친 부모의 손길 덕에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몇 날 며칠 지속되니까 모자동실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잠을 못 잔 아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그 정돈 감수할 수 있단 굳건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 아내를 응원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몸도 성치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되도록이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힘들어도 버티며 저렇게 아기를 위해 노력하는데,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옆에서 떠들면 힘만 빠질 것 같아서였다.


아내가 원래 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미 훌륭한 엄마 같아 보였다. 그에 비해 난 아빠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철없는 풋내기 같았다. 평소 아내는 날 만난 게 운이 좋다고 자주 말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말 운이 좋은 건 단단해져야 할 때 단단해질 줄 아는 사람과 운 좋게 결혼한 나였다.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남과 남'이었던 관계가
'너와 나'를 뛰어넘어 '우리'가 되었다 한들,

현실은 최초의 '남과 남'에서부터
전혀 바뀌지 않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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