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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ug 04. 2024

여보가 글 쓰는 이유가 뭐야?

욕망에 사로잡혀 본질을 잊어버렸다


모유수유 성공 의지가 확고한 아내는 조리원에서 24시간 모자동실을 했다.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을 땐 수유콜이 3시간 정도마다 한 번씩 왔었기 때문에,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낼 때도 3,4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물리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이제 막 세상빛을 보게 된 새 생명은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1시간을 넘기면 다행이었다. 울기 시작하면 일단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고 봤지만, 벗겨보니 응아를 하지 않은 적도 많았고 젖을 물려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달래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나름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여 아기 침대에 눕히면 곧바로 다시 울거나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 옆에서 난 쪽잠을 잤고, 아내는 거의 못 잤다. 그런 날이 조리원에 있는 내내 지속되었다.


처음엔 모유수유를 하려는 아내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잠을 못 자니까 이내 마음이 바뀌더라. 첫날 생각지도 못한 개고생을 체험하고서부터는 내심 아내가 모자동실을 포기하길 바랐다. 그런 못된 생각을 품고 있는 나에 비해 아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제왕절개로 몸도 성치 않을 테고, 그런 몸으로 나보다 잠도 더 못 잤을 텐데 신생아실에 다시 내려보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낮엔 괜찮다가 밤만 되면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기가 대체 왜 우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죄 없는 아기가 살짝 미워 보였다. 어느 정도 달래고 나면 최소 10분이라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달래고 눕히면 다시 울고 다시 달래서 눕히면 금세 또 울어버리니 도저히 잘 틈이 없었다. 새벽 내내 우는 아기를 달래지 못하는 것에도 무력감을 느꼈다.


"아.. 미치겠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의 것들이 뒤섞인 짜증이었다. 나름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은 했다만, 덩치가 불어난 짜증이 바깥으로 비집고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잘 때만 신생아실에 내려보내면 안 돼?"


아내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 그런 아내가 또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짜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난 내가 평소 감정기복이 없고 온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잠을 못 자니까 그런 성향은 온데간데 없이 찾아볼 수 없었다. 혹은 원래 난 인내심이 얕고 짜증이 많은 놈이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후 안 그래도 힘든데 옆에서 남편까지 짜증을 부리니 뿔이 난 아내는 날 가만히 지켜보다 일침을 가했다.


"우리 세 명이 다 한 팀이 돼서 으쌰으쌰 해도 모자랄 판에 왜 그렇게 짜증을 내. 자꾸 사람 눈치 보이게 만들고."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짜증을 그렇게 낸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내 옆에서 수발 다 들어주고, 심부름 다 하고, 어디 도망 안 가고 내내 붙어 있었다. 근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단 한 번의 짜증이라도 아내 마음에 거슬리면 그건 그대로 큰 짜증이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난 내가 옆에서 잘 도와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옆에서 많은 일을 했다. 글쓰기 말이다. 아내가 젖을 먹이면 트림은 내가 시켜줬지만, 그 외적인 시간들은 모두 글쓰기에 할애했다. 아내가 어디가 아픈지, 어떤 부분이 힘든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몸을 무사히 회복시키지 위해 조리원에 들어간 거였지만, 그 안에서 함께 있으면서 난 테이블을 피고 노트북을 열고 온종일 타이핑만 했다.


그놈의 글쓰기에 정신이 팔려서.


"여보가 글 쓰는 이유가 뭐야?"


"..."

대답거리는 떠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다.


"여보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본질이라는 말 까먹었어? 가족을 위해서 글 쓰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침묵을 지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얘기해 봐."


"할 말 없어. 틀린 말 하나도 없는데 뭐. 미안해 여보."

겨우 입을 떼서 말했다.


뒤이어 아내는 섬뜩한 한 마디를 던졌다.


"자꾸 그러면 집에서 둘 다 쫓겨날 줄 알아!"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아내가 산 아파트였다. 거기서 쫓겨나면 난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고로 '쫓겨난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소리였다. 더군다나 나 혼자 쫓아내는 게 아니라 이제 갓 태어난 아들과 함께 쫓아낸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매우 희박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난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노트북을 최대한 켜지 않았다. 누군 쓰고 싶어도 쓸 게 없어서 못 쓰는 글쓰기라던데, 어느새부턴가 내겐 쓰지 않는 게 더 힘든 게 바로 글쓰기였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고 하루를 지내는 건 막 지칠 정돈 아니나, 나름 힘든 일이긴 했다.


근데 왠지 그런 시간이 내게 필요할 것만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 거의 쉰 날이 하루라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썼다. 비록 글과 관련된 눈부신 업적은 기리지 못했고, 실제 종이책을 출간했어도 아직까진 성적이 미미하지만, 어쨌거나 그동안 썼던 수많은 글은 고스란히 내 전자노트에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아내는 내게 강제로 '쉼'을 선포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난 왠지 세상이 내게 잠시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라고 상황을 던져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부터 뭐 한 가지에 빠지면 시야가 확 좁아져서 그것만 파고들다 결국 제 풀에 지쳐 방전되는 게 내 특기였다. 그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구분하기 힘든 습성이 또다시 현실에 도진 듯하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때늦은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난 좀 쉴 필요가 있나 보다.


나름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내 생각일 뿐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아들은 아빠 복은 그저 그런데,

엄마 복은 확실히 타고났나 보다.


부럽노.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남과 남'이었던 관계가
'너와 나'를 뛰어넘어 '우리'가 되었다 한들,

현실은 최초의 '남과 남'에서부터
전혀 바뀌지 않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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