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의 소박한 염원

epilogue. 글쓰기 초급서를 쓰게 된 이유

by 달보


당장 살림을 차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한 연인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면 맞닥뜨리게 될 것들이 두려운 나머지, '나아감'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일말의 용기라도 드리고 싶었던 게 저의 첫 책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를 쓴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사회적 통념을 극복하면 우려하는 만큼의 힘듦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걸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쓰고 있는 <무명작가의 글쓰기 초급서>도 어찌 보면 비슷한 취지로 쓰게 된 것입니다. 글을 쓰고는 싶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뭐부터 써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분들의 방향을 잡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달리 말해 독자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하는 게 아니라(그럴 만한 자격도 없다 생각하고), 글을 쓰지 못하게끔 가로막고 있는 엉킨 마음을 살살 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토막글 하나도 쓰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아무 글이나 쓸 수 있는 상태로 전환하는데 도움을 드리고픈 욕심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무명작가임에도 감히 글쓰기 초급서라는 제목에 걸맞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주제넘는 욕심을 부려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미 유명한 작가님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 분이 있는 반면에, 유명하진 않아도 어쨌든 글은 꾸준히 쓰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더군다나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유명세와 남에게 뭔가를 전달하는 능력은 비례하지 않으니까요.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오늘 쓴 글을 오늘 쓰지 않았으면 결코 다른 날에 다신 쓰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쓰는 글도 딱 지금만큼의 상태(책 한 권을 출간한 무명작가)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이 썼더라도 어제 쓴 글과 오늘 쓴 글의 온도차가 천차만별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여 지금의 제가 아니면 써내지 못할 지금의 글도 나름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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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글을 썼던 날들을 돌아보며 가장 다행이라고 여기는, 혹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맨 처음 글을 쓸 때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를 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느닷없이 글을 썼던 게 제가 맞이한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동안 별생각 없이 혼자서 글을 쓰며 경험치를 쌓은 탓에, 이후 글쓰기책을 읽을 때나 피드백을(주로 아내에게서) 받을 때면 와닿는 깊이감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가 글을 짧게 쓰는 편인지 길게 쓰는 편인지도 모르는데 '짧고 간결하게 써라'라는 문장을 글쓰기책에서 접했더라면, 그 문장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대충 넘어갔을 겁니다. 또한 충분히 글을 써 보지 않은 상태에서 아내에게 "글이 좀 불친절해."라는 말을 들었다면, 귀담아듣고 곱씹어 보기는커녕 괜히 기분만 나빠했을 테니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장담컨대 글을 씀과 동시에 남에게 조언을 구했거나, 글을 별로 써 보지도 않았는데 글쓰기책부터 파고들었다면 득 보단 실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전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쓰거나, 피드백을 받을 때 효과를 톡톡히 보려면, 그에 따른 사전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전 준비란 두말할 것 없이 혼자서 하는 글쓰기겠고요.


글을 쓰다 보니까 인생 흘러가는 모양새와 참 비슷한 것이, 적절한 때가 오면 일어날 만한 일은 다 일어나곤 했습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글쓰기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든지,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뼈 아픈 지적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런 '때'는 가만히 있었으면 함부로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가만히 있어도 운이 좋으면 찾아올 순 있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만큼이나 그런 기회를 알아보고 낚아챌 확률은 현저히 낮겠지만요.


뭐가 됐든 가장 좋은 건 평소에 꾸준히 하는 겁니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꾸준해지려고 굳게 다짐만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꾸준함은 마치 어떤 행위를 습관 들이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훈장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글을 쓰고자 한다면 꾸준해야 할 것이고, 꾸준하려면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니, 글쓴이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습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게 낫습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해진 수순을 밟는다는 겸허한 자세로 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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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려운 게 맞습니다. 단,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글쓰기가 아무리 별나 보여도 마음만 달리 먹으면 얼마든지 누구나, 심지어 잘 쓸 수도 있는 게 글쓰기입니다. 경험상 글쓰기가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은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았거나, 글쓰기를 너무 특별하게 여겨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혹은 글쓰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았으면 그만큼 글쓰기는 낯설 것이고, 낯선 무언가는 얼마든지 '특별함'의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다분하니까요.


근데 작가라고 해서 글쓰기가 쉬운 건 또 아닙니다. 위대한 작가도 백지 앞에선 두려움을 느낀단 말이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새로운 글을 쓰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인 이상 창작의 고통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글쓰기를 매일 밥 먹듯 해도 여전히 쓰는 건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꾸역꾸역 뭐라도 써낼 수 있는 건 글을 쓰기만 하면 뒷일은 알아서 흘러간다는, 경험에서 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마음에 내리깔고 의자에 엉덩일 진득하게 붙이고 있으면, 쓰기 전엔 상상도 못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마법이 일어나곤 했습니다(가끔 문장 하나에 얽매여서 하루종일 고치기만 하는 날이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죽을 맛이지만요). 그 요술 같은 광경을 거듭 목격할수록 '멈춤'으로부터 벗어나는 근력이 붙으면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보다 수월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그냥 써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안 쓰기 때문이고, 써도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덜 썼기 때문입니다. 쓰고 쓰고 또 쓰는 것만이 가장 훌륭한 팁이며 최선의 비법이자 유일한 해법입니다. 손가락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문제라고 생각되는 문제의 출처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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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원래부터 어려운 것이었다면 친구들과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적잖게 애를 먹었어야 할 일입니다. 각자 쓰는 목적이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론 전혀 다를 바가 없는 행위니까요. 그냥 쓰기만 하면 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쓰는 게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행동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해서 그렇습니다. 글쓰기는 생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직접 씀으로써 써내는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생각을 덜어 내어 글을 쓰되, 그 생각에 잠식당하지 않게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다만 '쓸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닌, '생각할 것이냐 생각을 멈출 것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안 되는 상황을 곱씹어 보면 그 순간에 생각만 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생각하는 동안에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글을 쓰겠다면 생각을 멈추고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남다른 글은 깊은 사유로 빚어내는 것이니만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만, 그건 글을 쓰기 전의 얘기입니다. 일단 글을 쓰기로 했으면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생각을 내려놓고 우선 아무렇게라도 끄적여야 합니다. 이후엔 물꼬가 트이듯 모든 게 한결 수월해지니까요.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건데, 글 쓰기 전에 하는 생각과 글 쓰는 도중에 하는 생각은 좀 다릅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그만큼의 좋은 글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아닙니다. 글 쓴답시고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그 상태로 계속 생각만 하게 됩니다. 뭐가 나오기는커녕 아까운 시간만 날아갑니다. 반면에 생각하기는 잠시 미루고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하면, 이후에 일어나는 생각들이 훨씬 더 많은 글을 불러옵니다.


고로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 그림 그리기 전에 구도를 잡는 거라면, 글이 부르는 생각은 밑그림과 채색을 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림 그리다 보면 구도가 틀어지기도 하듯이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미리 생각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질질 끌어서 좋을 것도 없습니다. 오래 생각해 봤자 쓰다 보면 얼마든지 경로는 이탈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뭔가를 끄적이다 보면 앞서 생각한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과정'이 초래한 생각들이 주도권을 꽉 잡고 있을 테니까요. 되도록이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일단 쓰고 보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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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나중에 글쓰기 초급서를 넘어 중급서나 고급서를 쓰게 된다 한들(웬만해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마 '많이 쓰세요', '아무렇게나 일단 써 보세요'와 같은 류의 뻔한 메시지를 책에 담아낼 게 뻔하겠죠. 물론 이전과 얼추 비슷한 내용이라는 걸 감추려고 갖은 애를 쓰며 포장을 하겠지만서도. 이미 세간에 출시된 수많은 글쓰기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글쓰기의 비결은 알고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한때 필력을 높이고 싶은 욕망을 충족코자 숱한 글쓰기책을 탐독했던 적이 있습니다. 막상 읽어보니 이 책도 저 책도 한결같이 귀결되는 핵심 내용이 많이 써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자칫 실망할 뻔도 했지만, 이내 '글쓰기는 많이 쓰는 것 말고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라는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여파로 인해 연달아 읽으려 담아두었던 글쓰기책은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대신 글 한 자라도 더 써보자며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쓰기책을 쓴 사람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독자로 하여금 쓰는 행위를 이끌어내는 것이고, 독자가 글쓰기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게 넘어갔을 법한 오늘에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써내는 변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글 한 번 써 볼 요량으로 구매한 책의 머리글만 읽었는데도 의외의 자극을 받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책을 덮고 글을 쓴다면, 그 책은 더 이상 읽히지 않더라도 이미 '용도'에 걸맞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봅니다.


바라건대 <무명작가의 글쓰기 초급서>를 읽는 분들이 '글쓰기는 쓰는 게 전부이자, 많이 써 보는 것만이 유일무이한 방도'라는 것만큼은 꼭 마음에 담아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글쓰기가 좀 더 만만해지고 글 쓰는 게 보다 수월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디 글쓴이를 위한 글쓰기책의 '용도'에 걸맞는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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