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글쓴이에게 감히 브런치를 추천합니다
누가 제게 원래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었냐고 한다면 일단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100% 아니라고 하기엔 좀 그런 것이, 연애편지는 꽤 많이 써 봤기 때문입니다. 한 번 펜을 쥐고 편지지에 글을 적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연습도 없이 2,3장은 거뜬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쓴답시고 한참 동안 각 잡고 있어도 편지지 한 장을 채우기는커녕, 아예 첫 문장도 쓰질 못해 답답해하는 주변인들이 적지 않았던 걸 보면, 제가 글쓰기 재능이 아예 없다 하기에도 애매한 것 같습니다. 재능도 어찌 보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정립되는 자질이니까요.
그럼 어느 날 새벽에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관련 전공을 이수한 것도 따로 글을 배운 적도 없이 어떻게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써 올 수 있었는지를 물어본다면 그건 확실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브런치에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물론 브런치가 비결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감히 확신하건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저와 지금의 글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전에도 수없이 그랬듯 글쓰기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만큼 브런치라는 환경이 제게 없던 꿈을 심어줄 정도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 어찌 보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관계자분들에게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아주 예전에 브런치가 처음 출시 되자마자 호기심에 앱을 설치해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한 번 들어가서 훑어보고는 이내 다신 열지 않고 며칠간 방치하다 바로 삭제하긴 했지만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먼 훗날 브런치에 다시 닿게 되는 것도 모자라 흠뻑 빠져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참 일이 희한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브런치에서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았을 확률이 현저히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블로그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글 쓰는 버릇을 서서히 들였던 서사가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브런치에 제대로 자리 잡게 될 일은 결코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실제 글쓰기 습관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브런치 작가를 합격한 분들이 높은 확률로 계정을 방치합니다).
제가 처음 글을 썼던 곳은 네이버 블로그였습니다. 블로그에 새벽기상을 인증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걸 계기로 이후에는 독후감과 짧은 에세이를 주로 썼습니다. 그중 가장 열정이 붙는 건 온전히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을 풀어내는 에세이를 쓸 때였습니다. 자기 계발 활동을 인증하는 일기 같은 글보다도, 책에 실린 저자의 생각을 기반으로 쓰는 글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 생각이 가득한 글을 쓰는 게 가장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는 글 쓰는 것 말고도 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주객전도가 될 만큼이나 이웃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독서 같은 비인기 주제를 다루는 블로그일수록 더욱 그랬습니다. 처음 보는 블로그에 들어가 이웃신청을 하고, 그들의 블로그를 꾸준히 방문하고, 그들이 남긴 흔적에 반응하지 않으면 제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글에 달리는 댓글들 중 절반 이상은 영혼 없는 대가성 댓글이나 업체 광고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계발의 탈을 쓰고 다단계로 유도하기 위한 모임에 비밀댓글로 초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블로그 활동을 거듭할수록 에세이를 블로그에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 공들여 쓴 글이 너무 일회성으로 허무하게 소비되는 것 같았거든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네이버 블로그는 사뭇 진지한 글과는 그다지 어울리는 곳이 아닙니다. 각종 제품 리뷰, 영화나 드라마 리뷰, 여행 또는 맛집 후기 등의 글들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글들이 조회 수가 가장 잘 나오기도 하고요.
한 번은 책과 관련된 글만 올리던 한 블로거가 도서 인플루언서(과거 파워블로거와 비슷한 개념) 배지를 달고 나니, 느닷없이 드라마나 영화 리뷰 따위의 조회 수가 잘 나오는 글만 골라서 올리는 걸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리 수순을 밟는 것도 하나의 현실적인 공략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순수한(?) 도서 인플루언서를 지향하고 있던 제게 그분의 행보는, 향후 블로그 운영에 회의감을 느낄 정도의 영향을 끼쳤던 이슈라 할 만했습니다. 근데 하필 그 무렵이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블로그가 슬슬 질려가던 참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게 말입니다.
브런치가 특이했던 건 별도로 작가 신청을 해서 내부심사를 통과해야만이 공개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라는 건 당최 머릿속에 담아 본 적도 없이 살았던 저였기에, 작가 신청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브런치는 넘지 못할 벽처럼 여겼을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작가 신청란에 SNS링크를 입력하는 곳이 있는 걸 보고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블로그 주소를 넣고 나머지는 대충 써낸 다음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독후감 말고도 상당수의 에세이가 쌓여 있었는데, 그 정도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블로그에 질린 나머지 홧김에 신청한 것이기도 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단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수개월 정도 글을 쓰다 보니, 가히 브런치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라 할 만했습니다. 왜냐하면 브런치는 오직 글만 쓰면 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모조리 밖으로 꺼낸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글만 썼을 뿐인데, 구독자 수와 조회 수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우상향의 곡선을 그려갔습니다. 물론 그런 수치들이 실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고 있진 않지만, 확실히 오르면 오를수록 글 쓸 맛이 나긴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발행하는 글들이 꽤 높은 타율로, 브런치에 접속하면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메인화면에 뜨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1개씩 걸리지만 2개씩 걸릴 때도 은근히 많았고, 가장 많을 때는 브런치 메인에 제 글이 3개나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메인 노출의 빈도수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다만 브런치는 글이 메인에 걸린다고 무조건 반응이 뜨거운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브런치 메인에 글이 올라가는 건 마치 청문회에 강제 소환 당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란 적도 없던 객관적 평가를 받게 되는 거였습니다. 내 글이 떡하니 브런치 첫 화면의 한자리를 대문짝만 하게 차지하고 있는데도 반응이 미미하다면, 그건 곧 '옅은 글'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셈이니까요. 그럼에도 제 글이 메인화면을 장식하는 일이 누적될수록 브런치는 어떤 유형의 글을 좋아하고, 또 사람들은 어떤 제목에 반응하는지를 점차 알게 되는 건 좋았습니다. 그건 글쓴이 입장에서 여러모로 참 쏠쏠했던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잡음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일단 내부심사를 통과한 분들이 모인 공간이라 그런지,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부분 읽을만했습니다. 하물며 글을 읽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달리는 댓글도, '내 글도 읽어주세요'가 물씬 풍기는 대가성 댓글도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글감으로 삼고 싶을 만큼, 혹은 그대로 옮겨서 한 편의 글로 발행해도 될 만큼 진정성 있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브런치는 작가 신청이라는 관문이 있어서 여느 플랫폼에 비해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진짜'로 가득한 독보적인 필드(field)로 자리매김한 게 아닐까 합니다.
다만 제가 브런치를 높게 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브런치는 글쓴이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다 보면 프로필에 등록된 메일로 각종 제안이 들어오는데, 운이 닿으면 출판사에서 책을 내보자는 출간 제안이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다가 실제 작가가 된 사례는 꽤 많습니다. 실제 저도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습니다(하나 같이 모두 반기획 출판 제안이라 단칼에 거절하긴 했지만요). 비록 기획 출간 제안이 아닌 건 아쉬웠지만, 그 덕에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진짜 브런치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반기획 출판 제안을 연이어 거절하면서 이상한(?) 자극을 받는 바람에 이후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브런치는 블로그처럼 한 편씩 글을 써서 발행할 수도 있지만, 매거진과 브런치북이라는 시스템을 활용하면 좀 더 계획적인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긴 글을 기획단계에서부터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브런치만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브런치북은 브런치의 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브런치북 한 편을 쓰는 건 작은 책 한 권을 펴내는 과정과 비슷한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컨셉을 구상하고, 목차를 짜고, 목차에 맞는 꼭지를 써내고, 퇴고하는 것까지 말입니다. 제가 출판사에 투고하여 계약한 글도 원래는 브런치북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브런치는 작가지망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경로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작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몸에 배게끔 연습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니, 글쓴이의 삶을 지향하는 자에겐 그만한 공간이 어딨 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브런치와 비슷한 분위기를 띄는 다양한 창작 플랫폼이 많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 여전히 브런치가 글을 쓰고 또 그 이상을 바라보기에는 압도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분위기의 글을 쓰지도, 지금만큼 글쓰기를 사랑하지도, 지금처럼 한 권의 책을 출간한 출간 작가가 될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만약 브런치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서 글쓰기와 관련된 연습과 성과가 필요한 분이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브런치의 문을 한 번 두드려 보라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보고 싶습니다. 반면에 이미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분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더 많이 써 보세요."
글쓴이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덜 써서' 일어나는 것이며, 글쓴이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덜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꼭 브런치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글쓰기와 관련된 고충으로 끙끙 앓고 있는 분이 있다면 조금만 더 써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비록 구하고자 하는 답은 복잡할지언정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그저 쓰는 것. 그리고 될 때까지 계속 쓰는 것. 글쓴이에겐 오직 쓰는 것만이 최선이자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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