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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Aug 15. 2023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자폐클럽

-스물여덟에 죽겠다고 큰소리치더니만

프롤로그


오늘- 2023년 광복절- 은 만 65세가 된 지 173일째 되는 날이다. 

스물여덟 살에는 꼭 죽고야 말겠다고 사방팔방 큰소리치면서 다녔던 내가 아직까지 살고 있으니 참 경이롭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네.

때마침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는 날이 광복절이니 이 글 또한 나의 '해방일지'쯤 될 거 같다. 


2006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그것도 신문사 두 곳에서 동시에! - 이 말을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되면서 '정식'으로 소설가로 데뷔는 했지만 그 잘난 인터뷰 한 번 제대로 못해봤다는 흑역사가 장장 18년째다.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이런 책 저런 책 8권이 세상에 나왔는데 순수하게 책만 팔아서 얻은 수익은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 소설가들이 엇비슷하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그보다는, 강의하고 심사하고 어디 어디에서 창작기금 받고 남의 책 써주고, 간간이 퇴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그래도 굶지는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장할 따름이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데 하필 이런 대목이 나왔다. 세상에. 


-모든 작가는 중세 기독교도들처럼 고귀한 고통의 시간 끝에 지극한 복락을 누리게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하찮은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부모 또는 배우지에게 생계를 의지하면서 쓰고, 기도하고, 기다린다. 

언젠가 빛을 보개 되면 생활고는 옛말이 될 거라고 되뇌며.

천만의 말씀이다. 적어도 진지한 작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진지한 소설가 천 명 중 한 사람이나 글로 밥벌이가 될까 말까 하다. 

작가라면 유치하더라도 이 사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게 한국의 상황이 아니라, 미국의 상황이라는 게 더 놀랍다.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스승인 존 가드너가 쓴 <장편소설가 되기> 214쪽에 있는 대목이니까. 세상의 소설가들은 전부(는 아니고 거의 전부) 현실에서 극한 결핍을 견디거나 못 견디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서 (또 세상에!) 존 가드너는 '작가가 창작에 매진할 여건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또는 그녀의) 배우자에게 얹혀사는 것이다.(220쪽)'라고 단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럼 나는... 재빨리 이혼하고(이 나이에!) 재빨리 재력이 풍부한 인간과 재혼을 해야 하는데 재력이 풍부한 인간이 그 무슨 자비심으로 예순다섯 살이 된 여인(할머니 아님!)을 받아준단 말인가. 또 나보다 훨 늙으신 우리 남편은 어떻게 팽개치고! 

난 그냥 이제까지 이럭저럭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이럭저럭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 하에 남은 시간의 최대치를 뽑아내어 내가 원하는,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나 제대로 쓰고 죽으련다.


올해 3월, 아르코창작기금 발표지원에 선정되면서 9월 초에 웹진과 브런치북 두 곳에 작품을 올릴 수 있다고, 그러니 어서어서 브런치스토리도 좀 쓰고 하시라는 종용을 두어 번 받고 계속 미루다가 오늘, 광복절, 나의 해방일지 첫날을 기념하여 한 글자라도 쓰려고 이곳에 들어와 프롤로그랍시고 끄적이고 있다.

어쨌거나. 

모던하우스 같은 럭셔리 공간이 생겼으니 맘먹고 써야지 다짐한다. 

다음 블로그 두 개가 티스토리로 자동 이사한 후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고 네이버 블로그는 시 필사나 올리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중이므로 어쩌면 이곳이 나의 새로운 글방이 될지도 모르겠다.

제발 좀 잘 써보렴.

파이팅...(잘 쓰려는 결심을 버리는 게 가장 필요한데 지금 나 잘하고 있는 거 같다.)





몇 년 전 독서회에서 월든 리포트 발표하고 있는 모습. 마치 국회에서 회의하는 듯 하지만 이곳은 분당에 있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회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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