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다/8화. 카파토키야 1

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예 성지순례기


여행 첫날부터 강행군이었다. 거의 이틀 동안 몸을 누이지 못했다. 새벽 4시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튀르키에 남쪽 아다나까지 이동했고 계속 버스로 이동하면서 유적지를 들리고, 그리고 다섯 시간의 긴 버스 여행 끝에 도달한 곳, 카파토기야. 카파도키아(Cappadocia)와 괴레메(Göreme)는 튀르키예(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연·문화유산 지역이다. 독특한 지형과 풍부한 기독교 역사, 그리고 현재는 세계 각국 여행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카파토기야의 작고 아담한 호텔에 여행의 첫 여장을 풀었다. 필립 선교사 가이드(앞으로는 필립 선교사라고 짧게 말하겠다)가 말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호텔 뒤에 있는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이드가 세 사람이나 되었으니 설명 듣기도 벅찼다.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마흔 살 정도의 진중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가이드(이분 때문에 경험한 어떤 에피소드로 인해 나는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 그 경험은 나중에 에세이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다. 물론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로 나!), 이스탄불 공항에서 처음 만난 내 나이 또래의 필립 선교사, 그리고 하산이라는 튀르키에 현지인 가이드.

하산은 결혼한 지 이제 겨우 나흘이 지났다고 했다. 진짜 신혼이었다. 튀르키에에서도 신혼여행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하산은 가장 행복한 신혼의 며칠을 우리와 함께 튀르키에 곳곳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튀르키에에서는 관광할 때 반드시 현지 가이드를 동행시켜야만 여행 허가가 나온다고 한다. 한국말도 영어도 모르는 하산은 그야말로 얼굴 마담이었다. 그는 그냥 일행들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나는 말이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 나는 하산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숙소는 정말 훌륭했다. 정갈하고 고즈넉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런 방에서 혼자 잠을 잘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 이초쯤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이내 도리질했다. 룸메이트는 일흔 한 살이 되신 노 권사님이었다. 권사님은 껄끄러운 내심을 숨기려고 애를 쓰지만 내 눈에는 다 보였다. 같은 연배도 아니고, 게다가 성깔이 있다고 소문난 작가와 같이 방을 쓰게 되었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방 공동체, 어쩔 수 없는 운명(?) 공동체!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는 나의 ‘즐거운 고독’을 손해 보더라도 그분의 여행의 즐거움에 동참하기 위하여 ‘즐거운 대화’로 맞춰드릴 의향이 있었다. 나는 포기가 아주 빠른 편이니까. 나 때문에 권사님이 불편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권사님은 신세대 유머도 잘하고 연세에 맞지 않게 확트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 오 분만에 파악했다. 권사님 딸과 성가대를 오래 한 경험으로 공통 화제를 찾을 수 있었지만 권사님은 지나친 수다는 피하는 눈치였다. 감사했다. 그것은 권사님의 배려였다. 나는 권사님이 단박에 좋아졌다. 룸메이트 권사님을 왕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권사님이 아주 좋아하신다.

무겁기 한이 없는 트렁크를 내려놓자마자 순례자들이 짐 정리하는 틈을 타 호텔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 쪽 주머니에는 작은 가그린 병을 챙긴 것은 물론이다.


괴레메 골짜기에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담배 한 대. 묵직했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구교신자가 되고 싶다. 권사님. 저 담배 한 대 피울게요, 하고 정정당당하게 말하고 거리낌 없이 호텔방에 붙어 있는 발코니(튀르키예 호텔은 거의 발코니가 있는데 발코니 테이블에는 멋진 재떨이가 상비약처럼 구비되어 있다. 재떨이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은 이 반가움!)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을 텐데. 룸메이트 권사님께 넌지시 운을 떼면 이해해주실 것 같아 기회를 봐서 커밍아웃하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 식당에서 아메리칸 식 뷔페로 간소하게 저녁을 먹었다. 편한 옷차림으로 식당에 나타난 순례자들은 한국에서부터 공수해 온 밑반찬을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나누어주고 받고 한다. 한국 여행자들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음식 공수. 나는 노탱큐였다. 대신 쌉싸름한 커피를 그득하게 따라 두 잔이나 마셨다. 너무 피곤하면 음식을 먹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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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트렁크! 트렁크를 열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박 이일 동안 이리저리 쏠리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버린 트렁크 내용물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한숨만 쉬다가 다시 닫았다. 정리에는 젬병인 내가 제일 고민한 것이 바로 트렁크 정리였는데. 너무 피곤해서 노트북을 꺼낼 힘도 없었다. 그래도 어두운 밤에 두 번이나 밖으로 나가 담배 피우는 일은 도무지 귀찮게 생각되지 않으니 그것도 신기하긴 했다. 담배 두 대로 피곤함이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생각 같아서는 집에서 하던 버릇(씻는 거 싫어함. 목욕 싫어하고, 샴푸도 싫어함. 씻지도 않고 외출해서 만나는 사람에게 뭐 어때? 하고 넘겨 상대방을 기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음)대로 씻지도 않고 그냥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꾹 참고 최대한 간략하게 씻었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나를 옥죄이던 사건사고 현장을 떠난 기쁨이 얼굴 전체에 잔잔하게 퍼져 있었다. 정말 행복했다. 홀로 잠들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집안의 풍경이 아니라 정갈하게 꾸며진 호텔 방이라니 끝내 준다! 웃음이 나왔다. 한국을 벗어난 게, 가족을 벗어난 게 어째서 이렇게도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