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예 성지순례기
박학다식한 필립 선교사 가이드의 말을 뒤로 하고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찾았다. 클래식, 경쾌한, 춤, 무드, 조용한, 멜랑콜리... 음악 카테고리를 그런 제목으로 지어놓은 나의 심리가 새삼 우스워졌다. 어떤 종류를 고를까하다가 멜랑콜리를 골랐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듣기에는 딱 좋은 곡들이다.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듣기에는 거북할지도 모르는 노래들이 줄줄이 나의 귓전을 울린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상황들이 튀르키에 산비탈에, 인적 없는 황야에 오버 랩 되었다. 오래 살았다.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다. 전적으로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막무가내로 살았다.
지난 일을 무 자르듯 끊어버리고 살 수는 없겠지. 결국, 나는 노래 몇 곡으로, 그 노래를 들으며 견디었던 고통의 시간들까지 더불어 가져오고 말았다. 결국 클래식으로 테마를 바꿨다. 글을 쓸 때는 30분 이상의 클래식이 가장 좋았다. 나의 작업에서 필요한 백색 소음이었다. 귓전을 건들이지만 마음까지 터치하지는 못하게 하는 음악은 클래식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소품들을 많이 넣어 왔다. 에릭사티나 쇼팽, 드뷔시나 바그너, 그리고 고요한 멘델스존의 곡들…
https://youtu.be/vNFKuqfx99M?si=yjy3PPdyEMAakQKS
성 금요일에만 연주되었다는 미제레레. 나의 생의 어느 부분은 늘 성 금요일처럼 어둡고 고통스러웠다. 예수님. 그때 저와 함께 계셨나요? 정말이요? 나는 지금 예수님께 땡깡을 부리고 있는 거다.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차창밖에 희미하게 비친 나를 본다. 살아 있니?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아? 나의 실루엣과 겹쳐서 지나가는 황량한 들판들, 그리고 앙상한 나무들.
스쳐지나가는 것들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지금 보이는 저 들판도, 낮은 지붕의 집들도, 동네마다 높이 솟아 있는 이슬람 사원의 높은 탑도. 고요한 나의 자리에 앉아 나는 고요히 그 시간을 지나갔다.
피곤했던 순례자들이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집행부에서 준비한 사도행전 성경퀴즈로 웃음바다가 되는 버스 안. 맞힌 순례자는 1달러를 상금으로 받았는데 너무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장로와 권사들로 이루어진 순례자들이니 모두 성경에는 해박했다. 성경퀴즈는 누가 먼저 손을 드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저요 저요 하는 모습이 참 순진무구했다.
요즘에는 일 년에 한 번 통독하기도 힘들어 하는 나이지만 수십 년 동안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성경책을 읽었다. 은혜가 넘쳤던 어느 해인가는 세 번을 통독하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은 힘들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가장 정통적인 방법인데 나는 지금 허방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성경 속 구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른다. 지금, 나는, 나만 보고 있는 거다. 당면한, 나의 고통만 보고 있는 거다. 하나님. 그래서 저도 미제레레여요.
준비한 성경퀴즈 문제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어쩌면 신앙이라는 것은 의외로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울까. 모든 것이, 정말 모든 것이.
나의 질그릇 속에도 분명 예수가 살아 숨 쉴 텐데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선물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기이한 나무를 보았다. 짙푸른 눈알 모양의 장식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였다. 또 다른 나무에는 붉은 색의 질그릇 항아리가 잔뜩 매달려 있다. 질항아리는 그렇다 쳐도 무슨 생각으로 사람의 눈동자를 나무에 달아맸을까. 이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곧 이해되었다. ‘악마의 눈(Evil Eye)’ 또는 ‘나사르 본주’라고도 불리는 짙푸른 눈알 장식품은 부적으로 질투, 시기, 악의적인 시선을 막아주고, 나쁜 기운이나 불운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 준다고 믿어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선물하거나 몸에 지니는 풍습이 생겼는데 악마의 눈은 대표적인 여행 상품이 되었다고…
나는 그 중 하나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니. 너무도 선명한 푸른빛의 눈동자는 나의 내면을 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어느 순간 나는 누군가가 말하는 다정한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나의 귀에 들려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