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예 성지 순례기
어느 곳에나 사람들은 산다. 저들이 꿈꾸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국처럼 넓은 집을 장만하고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고 자식들이 일류대에 들여보내고 남보다 더 나은 지위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삶을 그들도 살고 있을까? 세계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천편일률적이다. 신이 주는 인간의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 일괄적인 사고를 가진 수천만 명의 한국 사람들을 생각하면 끔찍해진다. 스프링 벅처럼 모두 한 곳을 향하여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어떤 슬픔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 뭔가 다르면 의혹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는 사회. 나는 가끔 이런 한국이 견딜 수 없다.
튀르키에에 도착해서 들른 첫 식당은 튀르키에 음식을 파는 휴게소 식당이었다. 제법 크고 깨끗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종업원들은 와플 모양의 빵(피데Pide: 일상 음식으로 먹는 대중적인 빵으로 이탈리아 피자가 피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15~30cm 크기로 여러가지 야채와 고기, 치즈 등을 올려서 굽기도 하고, 완성된 피데에 구운 고기나 야채를 곁들여서 먹기도 한다)과 콩죽 같은 스프를 제일 먼저 내온다.
달지 않은 빵은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났고 스프는 구수했다. 향신료 냄새가 나지 않아 순례자들이 모두 잘 먹는다. 여행 끝날까지 질리도록 먹었던 야채 샐러드도 풍성했다. 샐러드에는 꼭 크고 누르스름한 삶은 고추가 곁들여 있는데 신기한 맛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안디옥!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비로소 주어졌던 곳. 바울이 세계선교를 시작한 교회의 본거지! 나는 지금 이천 년 전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러 이곳에 왔구나. 문화 풍습 언어가 다른 아시아의 끝에서 이곳까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이다.
‘베드로교회’는 바위산 중턱 외진 곳에 굴을 파 만든 동굴교회였다. 오로지 박해를 피하여 변변한 연장도 없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거대한 개미굴을 만들었다. 그들이 파내려간 것은 깊은 신앙심이었겠지.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 굴을 파고 교회를 지었다.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모든 것을 티끌처럼 버릴 수 있었던 그 믿음은 과연 그들의 행복 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육신의 필요에 따라 사는 삶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그 어떤 것이 그들을 사로잡았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같을까?
“인생의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인간들이라면 전혀 답을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교단 관계자께서는 그 질문 바로 아래에 친절하게도 답을 적어놓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나는 세례문답지에 있는 수많은 문답을 외워야 했다. 체험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알 수 없는 답들이 빼곡했던 세례문답을 미리 나누어주고 그것을 외우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나의 젊은 시절, 가장 암흑기였던, 스물 세 살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혼돈에 빠졌다. 교리문답은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해야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작은 프린트지에 답은 친절하게 적혀있었지만 그냥 문자적인 답일 뿐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문답 앞에서 나는 세례받기를 주저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답을 놓고 나는 방황했다. 스물 세 살의 나는 그 답을 이렇게 정정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습니다. 지금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인지.
하지만 동굴교회를 보면서 자유와 방종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고통당하는 나를 구원해 줄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내 몸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님,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