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에 성지순례기
선교사 가이드 필립을 소개받았다. 한국사람인데 그런 이름을 쓰는 모양이었다. 이슬람교도가 98퍼센트라는 튀르키에에서 대체 누구를 전도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리무진급 최신형 관광버스가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과 침대시설까지 구비된 최고급 버스였다. 가이드 필립외에도 인천공항에서부터 동행한 가이드와 튀르키에 현지 가이드, 그리고 버스 기사를 소개받았다. 너무도 쾌적하고 넓은 버스였다. 순례자 중에서 부부 동반 팀은 나란히 앉고 나처럼 솔로들은 이인 좌석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까지 누릴 수 있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길 수도 있고, 그 누구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자유도 있고, 혼자 사탕을 먹을 수도 있고, 눈물 섞인 기도를 할 수도 있고, 피곤하면 잘 수도 있고, 창밖을 볼 수도 있고, 시집을 읽을 수도 있고 노트북 작업을 할 수도 있고, 메모를 할 수도 있고, 헤드폰을 끼고 음악도 들을 수도 있다니! 나는 버스에서의 시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때마침 흩뿌리는 찬비를 맞으며 ‘바울의 우물터’를 찾았다. 우리나라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우물과 다르지 않은 자그마한 우물터였다. 성지 순례의 첫 발자국을 우물터에 남기게 된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이 초라한 우물터가 바울 생가의 우물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다소에 있었던 오래된 우물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겠지. 그렇다 해도 감격적이었다. 그 옛날 바울은 이런 우물에서 물을 마셨겠구나하는 감동.
나는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미소를 띠며 다시 다정하게 물었다. 얼마예요? 그는 손가락을 쳐들어보였다. 4개. 내가 달러를 꺼내자 사내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열두 개의 빵을 주었다. 분명 바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바가지는 앞으로도 즐겁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바울의 우물터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미지근한 빵을 하나씩 돌렸다. 담백한 맛이 깊고 융숭했다.
바울이 열 몇 개의 서신을 통해 나에게 준 수많은 은혜를 떠올렸다.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밑줄을 쳤던가. 유려한 문체, 실제 만나지도 않고 보지도 못했던 예수를 증거 했던 그의 설득력, 그의 단단한 믿음. 가슴이 뻐근해졌다. 바울, 그대는 정말 실존인물이었군요!
사건사고는 늘 예고 없이 일어나게 마련. 순례자 중 한 분이 인천공항에서 이륙 직전 팔을 다치는 바람에 예정에 없는 병원을 들르게 되었다. 만약 출국 수속을 끝내지 않았으면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갔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을 지나 게이트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려던 순간이었다.
튀르키에의 다소는 의료시설이 낙후되어서 팔에 깁스를 하는 아주 쉬운 조치조차 제대로 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 우리는 성지 순례를 하기 전에 병원 순례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우리는 함께 움직였다. 결국 세 번째 병원을 찾아서야 겨우 엑스레이를 찍고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순례자들은 예정에 없는 튀르키에 병원을 구경했다. 어디서나 아픈 사람은 많다. 북적거리는 병원 로비를 어슬렁거리다가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병원 옆에 초라해 보이는 천막 비슷한 가건물이 있었다. 튀르키에에 흔히 있는 찻집인가 보다. 수염을 기른 튀르키에 남자 서넛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있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트렁크 깊숙이 숨긴 말보로 라이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트렁크는 아직 열지도 않은 채 버스 짐칸에 있다. 나는 이내 포기했고 대신 찻집에 들어갔다.
버스에서 기다리던 순례자들이 찻집에 들어가는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는 언어 이외에 바디 랭귀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대화인 미소도. 그렇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맨 땅 그대로인 찻집은 소박하다고 미화시키기에는 너무도 허술했다.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던 몇 명의 튀르키에 남자들이 눈이 동그래져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커피 있어요?”
내 말 한 마디에 갑자기 그들은 부산해졌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모든 튀르키에 남자들이 커피 한 잔 주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나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한국의 포장마차와 다를 것이 없었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몇 개. 울퉁불퉁한 흙바닥은 사람들의 발자취로 만질만질했다.
“얼마여요?”
나는 그들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튀르키에 남자들에게.
그 중 한 남자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나는 달러를 꺼냈다.
나는 분명히 튀르키에 화폐로 1 리라라고 적혀있는 가격표를 보았지만 못 본 척 했다.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좋아진 주인과 덩달아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이 참으로 순진했다. 커피 맛은 그냥 그랬다. 그래도 따뜻한 것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피로가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무료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 배달을 부탁했다. 대화는 참 간편했다. 버스를 가리키고 커피를 가리키고 숫자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니까 알아들었다. 이토록 편한 만국공용어, 바디랭귀지!
조금은 수줍어하면서 커피 몇 잔을 들고 버스에 오른 튀르키에 남자를 보고 순례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레지가 아주 멋지다.”
단 돈 몇 달러의 커피 선물에 심심해하던 순례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메모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