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다 /4화. 비행기 안에서

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에 성지순례기

4. 이스탄불행 비행기 안에서


자정 가까운 시각에 출발한 비행기는 밤에서 밤으로 날아갔다. 어두운 창밖은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착하면 현지 시각은 새벽이라고 했다. 길고 긴 밤이다. 영혼의 어둔 밤을 견디어왔던 나는 어둠뿐인 창밖 풍경에 친밀감까지 느껴진다.

기내에서 작고 귀여운 사이즈의 포도주를 한 병 마셨다. 다른 순례자들은 무엇을 마시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포도주는 최상의 위안이었다. 그만큼 술은 때때로 많은 위로를 준다. 한 병 더 마시려다가 도착 후의 일정이 빡빡한 것을 감안해서 참았다.


기내에 자리 잡은 순례자들을 둘러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교회에서는 몇 개월 전부터 순례단원을 모집했고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미 잘 결속이 되어 있었다. 교인들과 친교를 나누는데 심각한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변방에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외로움이 나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번 기회에 나의 오래된 알레르기를 치료해 주시려는지도 모른다. 같은 교회를 수십 년 다녔고, 이번 여행에 동행한 사람들도 수십 년 동안 보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순례여행의 주제는 바울의 사적지를 따라가는 것이지만 나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도망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부터, 지긋지긋한 집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나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냥 도망가!

나 빼고는 다 행복할 것 같은, 세상 편해 보이는 순례자에게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모르지죠? 내가 지금 도망 중이라는 걸요?


내가 순례 여행에 등록을 하리라고는 그 누구도(나를 포함하여)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접수를 받은 장로님은 미안한 표정이었다.

“인원이 홀수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독방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떡하지요?”

로또를 맞은 것 같은 기쁨과 흥분이 순간, 용솟음쳤다.

“실은 제가 부탁하려고 했어요. 혼자 방을 쓰고 싶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독방이라는 소리에 뛸 듯이 기뻐하는 내 모습이 인솔대장 장로님에게는 좀 이상하게 비춰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내 독방의 꿈은 사라졌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한 순례자가 출발 며칠 전 여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여행 인원이 짝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독방의 기대가 사라지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을 다시 붙잡았다. 여행을 가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쓰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 아닌가. 그럴 때 신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순종합니다.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순종하기로 했다.

두 번의 기내식은 즐거웠다. 나는 무슨 음식이든 잘 먹으니까. 외국 여행에서 음식은 한국보다 적응을 잘한다. 한국 국적이 무색하게 김치는 장식용에 불과할 뿐이고 밥 보다는 빵이나 치즈를 즐겨 찾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죽하면 소원 중 하나가 호텔 조식 뷔페 먹는 것일 때도 있었다. 조식 뷔페는 어디나 비슷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스크램블 에그와 얇게 자른 햄과 여러 종류의 두툼한 치즈, 무한 리필 되는 진한 커피, 과일을 넣은 요플레, 그리고 바싹 튀긴 베이컨!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호텔 조식 뷔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매일 그런 아침을 먹으려고 평생 호텔을 전전할 수는 없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80대 탤런트 선우용녀님이 아침마다 호텔에 가서 조식 뷔페를 먹는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다. 오, 바로 내가 바라던 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나도 그녀의 방식을 따라할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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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고추장이나 김, 젓갈,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싸왔다고 했다. 나의 밑반찬 준비물은? 담배 다섯 갑. 나의 고상한 취미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제발 있기를 바라면서 들고 왔다. 짐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한 시간 후면 도착이다. 열두 시간의 비행이 어느덧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메모지를 꺼냈다. 일단 도망은 쳤으니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신앙과 일상을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좀 봐야겠다.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이천년이 지난 사도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대체 어떻게 그 행적을 쫓아가야하는지 궁금증도 폭발한다. 매 순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살갗에 내장에, 가슴에, 눈에, 입술에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국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열이틀 동안 여행을 함께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들려줄 생각이다, 라고 적었다. 적고 보니, 이번 여행에 새로운 미션이 생긴 것 같아 다짐도 하게 된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자. 비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그리고 기독교인 탐구생활 시작이다. 이것이 슬기로운 탐구생활이 되기를.

메모지에 이것 저것 써놓고 보니, 모두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땡땡 부어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열 두 시간 가까이 있으면 나타나는 몸의 변화. 어쨌든 도망치는 것도 성공했고, 무엇보다 한국땅을 떠났으니 조르바처럼 나는 자유!

집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았던 모든 일들을 떠나고, 그리고 오롯이 나만 존재하면서 여행을 즐기 일만 남았지 않나? 때문에 휴대폰을 로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예 가져오지도 않았다. 튀르키에나 그리스의 해변을 걸으면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알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느 한 때는 영원히 그들을 잊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튀르키에 시각 새벽 4시 반, 서울과의 시차가 7시간. 무려 11시간 30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다. 처음 기내에 앉을 때는 천국이었지만 갈수록 힘들어져 결국 ‘감옥’으로 끝나게 해준 길고 긴 비행이었다. 하지만 기내 여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튀르키에 남부 아다나까지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바울의 고향 ‘다소’에서부터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대기 시간은 두 시간 반.

낯 선 곳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내 마음을 휘감았다. 그것은, 집을, 한국을 떠났다는 것에 대한 환희일 수도 있겠다.

아다나 공항까지 환승하기 위해 이스탄불 공항 로비 의자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의자 두 칸에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으려니 마치 홈 리스 같은 모습이다. 새삼 웃음이 나왔다. 허리며 다리가 욱신거리고 긴 비행의 피로감에 눈이 절로 감겼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고 말았다. 시작부터 힘이 드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강인한 체력이다 싶었다.

이번 여행은 세 번째 해외여행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문우들과 동행했고 두 번째는 서른이 되어가는 아들과 둘이 패키지여행을 했는데 아들이라기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웠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배려했다.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엄마의 노릇을 철저하게 배재했고, 아들에게도 아들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한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같이 잠을 자야 비로소 친해진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그들과 친해질지는 모르지만, 친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길고 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쯤이면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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