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다/제3화. 공항

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예 성지순례기

3. 공항


공항 로비 의자에 편하게 앉아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짐 가방을 옆에 놓고 옆자리의 지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할 때는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지? 나도 그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저들은 다 행복하구나.


탑승수속을 위해 항공사 프런트에 길게 줄을 서면서도 지나는 외국인들과 언어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보기 좋았다.

헐렁한 셔츠, 편해 보이는 통 넓은 팬츠에 엔틱 느낌이 강렬한 워커를 신고 공항 카트를 밀고 오면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대강 빗어 올리는 저 아름다운 여인은 얼마나 풍요로워 보이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스냅사진 한 장 찍어주고 싶었다. 그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은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도 한 몫 했으리라.

내 눈에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보기 좋았다.’ 마치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보기 좋았더라 하시며 흡족해 하신 딱 그 마음이었을까.


트렁크에 택을 달았다. 분명 내 이름인데도 낯설었다. 어쩌면 나는 튀르키에 어딘가에서 유체이탈을 해서 인공위성 아리랑처럼 지구를 빙빙 돌면서 땅을 딛고 사는 나 같지 않은 나를 향해 목청껏 내 이름을 부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에 함께할 순례자들과 어정쩡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또 한편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나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자유로움을 인정해주는 분위기?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화기애애한 수다 자리에서 벗어나 홀로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그러려니>한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편하려면 컨셉으로라도 그런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복잡한 수속을 끝내고 인천 공항의 면세구역까지 진출했다. 게이트 111 앞에서 노트북을 켰다. 공항 안쪽에 지하철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 그러고 보면 보이지 않은 곳에 참 많은 것이 존재한다. 평생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 로비는 넓고 쾌적했다. 공항이라는 곳은 사람들에게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 전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결국 한나절의 가출로 끝나기는 했지만. 추석 전 날이었다. 지극히 사소한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던 나는 갑자기 모든 것에 진력이 나 버렸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환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나는 절망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자!

‘다른 곳’은 ‘이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었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전망대에서 꼼짝 않고 앉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만 보다 왔다. 어느 비행기든 타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것으로 가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평생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방랑벽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떠나고 싶어 했고, 불현 듯 집을 나서는 경우도 몇 번 있었으나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결국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나를 지탱해 줄, 나를 살게 해 줄 어떤 능력도 없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의 도움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삶의 치열함을 가르쳐 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려라.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 삶의 현장 속에서 경쟁하고, 남을 타고 넘고, 일등을 하고, 무엇인가 승리를 쟁취하는 삶을 살기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눈을 뜨면 늘 세상은 아름다웠고 흥분과 기대가 넘쳤고 크고 작은 기쁨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삶의 환희를 느꼈던 세월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그 순간부터 깨졌다. 풍비박산. 그 한자 성어의 의미가 그토록 들어맞는 경우도 있나!


풍비박산: 바람이 흩어지고 우박이 사방으로 날리듯 패하여 흩어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갑자기 풍비박산된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어리둥절하게 신혼여행을 가고 어리둥절하게 아들을 품에 안았다. 열아홉에서 스물네 살까지의 방황했던 삶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괄호로 묶여져 있다.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나는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결혼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열여덟 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는 수십 년 넘게 다녔다. 긴 세월이었다. 나는 신을 사랑했고 친정집 같은 교회, 고향 같은 교회를 사랑했고 그 교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그런 오랜 세월동안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성격이었다. 그분들은 나를 잘 모를 것이다. 다행이었다.


면세점에서 큼직한 초콜릿 두 박스를 사서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스낵코너에서 포테이토칩도 몇 개 사서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나의 작은 선물을 받았다. 그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어쩐지 보들보들해지는 듯 했다. 이제 나도 그들처럼 기독교인다운 모습이 되어 가는 것일까? 정말?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고 싶었다. 열세 살 이후 줄곧 나는 늘 궁핍했다. 지갑이 없이 산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가난은 단지 불편할 뿐이라지만 겪어본 사람은 안다. 단순한 생활의 불편을 넘어서 영혼의 가난까지 초래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숱하게 나의 과거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독한 억제기제가 되어 나를 조종했다.


가난이라는 현실은, 그 결핍은 마치 바람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에게 가는데 맹렬한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가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수첩에는 즐거운 약속 대신 카드 결제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 있을 것이고 늘 텅 빈 손인 나는 라면과 샴푸와 담배를 사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


수속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이틀의 자유를 나는 어떻게 보낼까.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것이 나를 포함한 교회 순례자들이 정한 이번 여행의 모토이다.

튀르키에와 그리스에 아직도 남아있는 바울의 행적을 따라가고 싶었다. 순례자들(이번 여행에 동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순례자라고 부르기로 했다)은 여행 준비 기간 동안 숙제처럼 사도행전을 읽었다. 사도행전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데 나는 감격했다. 예수의 이야기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 믿음의 글에 가까웠다. 나에게는 그랬다. 반면 사도행전은 엊그제 방영된 BBC 다큐처럼 생생했다. 사도행전이외의 성경에서 포장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찾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1945년 유대인들이 이천 년의 디아스포라 생활을 청산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여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재건한 것은 오로지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성경은 사실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는 <창조 과학회> 는 나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불철주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그들의 투철한 믿음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존경을 표하기만 할 뿐이다.

사도행전은 ‘ACTS’ 라는 제목에 걸맞게 마치 소설처럼 재미있다.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리얼하며 흥미진진하다. 특히 바울이 로마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사와 표현이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책이 나달나달하도록 읽은 사도행전이지만 나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읽으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사도행전을 읽고, 다음에는 시집을 펼칠 것이고, 음악을 들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수면안대를 하고 잠을 잘 것이다. 이 땅을 떠난들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신이 지혜와 성령을 주셔서 좋은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냉혹한 현실을 잊어버리고 신이 준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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