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다/제2화. 트렁크

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예 성지 순례기

제 2화 트렁크



나는 달아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나는 홀연히 떠나고 싶다. 불가능한 인도나 모든 것이 기다리는 남쪽의 섬나라가 아니라,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곳, 작은 마을이나 외딴 장소,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페르난도 페소아


트렁크를 찾아 먼지를 떨었다. 대형마트에서 산 중저가품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잠글 때는 트렁크에 올라타 전신의 무게로 아귀를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옷장에 있던 거의 모든 옷을 다 꾸려 넣고, 트렁크 밑바닥에 말보로 다섯 갑을 깔았다. 국보급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한 갑 한 갑 쓸어주며 생각했다. 적어도 세 갑 정도는 그리스 튀르키에의 옥빛 하늘에 연기를 날려주고 와야 할 텐데 잘 되려나 몰라.

담배 맛을 모르는, 담배의 매력을 알 수 없는 혹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아담 옆구리에서 잘려나간 갈빗대 하나와 견줄 만 하다고. 예수님 승천 이후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믿는 성령님의 이종사촌 쯤 된다고. 애증이 교묘하게 배합되어 평생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 하는 배우자 몰래 숨겨둔 애인 급 정도는 된다고.


내 자신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나는 성지순례단에 합류했다.

결혼식에 동행했던 선배는 자신의 알량한 퇴직금의 절반을 여행사에 다이렉트로 송금해주었다. 수십 년 교분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행동거지가 가끔은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다고 정죄하기 일쑤였다. 반면 선배는 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시달리는 나의 삶 전반을 걱정했고 기도했다. 선배는 나를 존중하여 단 한번도 ‘너’라는 이인칭을 사용하지 않았고 반면 나는 친한 척 언니 언니 하며 첫머리에 갖다 붙이면서도 언사는 한참 후배에게 대하듯 마구잡이였다. 가끔 대책 없는 선배의 앞날과 억 소리 나는 월세를 걱정했(해주었)다. 중보 기도자 명단에 선배의 이름이 올라있기는 했지만, 수입에 비해 너무 과한 선교헌금, 구제비,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갓 볶은 커피를 사다 안기는 무절제한 사랑이 못마땅했다. 선배의 ‘무절제한 사랑’의 최대 수혜자가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독신 생활이 주는 또 다른 폐해라고 단정했다. 쯧쯧. 나는 혀를 찼다. ‘그래서 여자는 결혼해야 비로소 정신도 차리는 거야.’ 옛날 고리짝에 결혼한 나야말로 평생 맨정신으로 산 적이 없는 주제에.


그 추웠던 토요일 오후, 터미널 귀퉁이 카페에 앉아, 방언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내 입으로 뱉어놓고도 내자신에게 통역이 필요했다)을 내뱉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선배가 말했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은행 결제 대금이 아니라 감옥에 갇혔던 바울이 가졌을 당당함과 신실함일지도 몰라.”

동태 같았던 몸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기껏해야 서걱거리는 연어샐러드로 자살 코스프레나 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생각만 가득한 멍청한 뇌에서 알지 못할 어떤 기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중추로부터 전달된 자극에 의해 교감신경 말단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분명히 느꼈고, 그것들이 근육에 자극을 전달해 교감 신경을 흥분시키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상승하게 만드는 것도.


나는 무엇인가 벅차올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는데 납득하기 힘든, 납득할 수 없으면서도 납득이 되는 선배의 조언에 ‘약간 멍청한’ 기쁨의 순간이 지나갔다. 그 때, 미친 듯 뛰는 심장 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웃음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