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그리스 튀르키에 성지순례기
추운 날이었다. 영하 십이 도, 체감온도는 영하 이십 도에 육박했다. 피로연장은 냉방장치가 잘못 가동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추웠다. 하객들은 뜨거운 국물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섰다. 즉석에서 구워주는 갈비는 접시에 올려놓기 무섭게 차갑게 굳었고 캘리포니아 롤은 밥이 얼었는지 모형 식품처럼 씹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굳건히 얼음이 서걱거리는 연어샐러드를 꾸역꾸역 먹었다. 언 몸에 녹지 않은 생선살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으면서 냉동인간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냉동인간이 되어 있었다. 우편함에 가득 들어있던 각종 고지서와 친절하게 보내주는 은행의 독촉 문자들과 동그라미 네 개 이하로 떨어진 은행 잔고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펼쳐보지도 않고 가방에 쑤셔 넣은 고지서들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파산 직전이었다. 초읽기에 들어간 파산이 두려웠으나 해결책은 전무했다. 누구 잘못도 아니었지만 나의 머릿속은 분노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입에 연어샐러드를 마구잡이로 쳐 넣지 않는다면 부지불식간에 욕이 튀어나올것 같았다. 그 해는 하나님이 나에게 절망을 알게 해 준 해라고 지금도 기억한다.
맹꽁이처럼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호텔을 나오니 대절버스는 이미 떠난 후였다. 선배와 나는 터미널에서 각자의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겨우 십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도마에 놓고 칼로 힘껏 내리쳐도 실금도 가지 않을 정도의 동태가 되었다. 입에서는 춥다 춥다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터미널 앞 카페가 눈에 띄었다. 문을 여는 순간 후끈한 공기에 뺨이 잘 익은 홍시처럼 금세 붉어졌다.
카페는 천국이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아늑하여 오히려 현실감이 없는 실내에서 잔뜩 웅크렸던 허리를 겨우 펼 수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더블 샷이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신비로울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 맛있다. 이제는 맛있다 맛있다 소리만 나왔다. 파랗게 언 손으로 커피 잔을 감싸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성지 순례 가고 싶다.”
마주 앉아있던 선배가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성지순례단원 모집.
며칠 전, 교회 로비 게시판의 작은 광고를 보는 순간, 가슴 한 쪽이 심하게 아려왔다. 저릿저릿한 가운데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몸 전체로 확산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고 싶었다. ‘저 곳’에 가서 감옥에 갇혀서도 큰소리 빵빵 쳤던 바울을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저 곳’은 장소의 개념 뿐 아니라 시간의 개념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싫고, 이곳도 싫었다. 숨 막히는 벼랑 끝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잠시만이라도.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제 2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