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양 AFTER YANG>2021 리뷰
영화가 다루는 핵심은 기억이다. 인간의 기억과 안드로이드가 주체적으로 저장한 메모리의 비교를 통해 생각거리를 던진다. 휴먼 안드로이드 양은 말한다.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I wish I had a real memories)."
제이크(콜린 파렐) 부부는 중국인 입양 딸 미카(말레아 에마 찬드로위자야)를 위해 '세컨드 시블링즈' 기업에서 교육 안드로이드 휴먼 양(저스틴 H. 민)을 구입한다. 딸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다. 양은 제이크의 가족 구성원이 되고 미카는 양을 친오빠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 양의 전원이 켜지지 않고,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이크 부부는 맞벌이로 많은 부분 양에 의존하며 미카의 육아에 소홀히 했다. 양의 부재가 생기자 부부는 미카에게 더 많은 관심과 노력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카가 자신들보다 양에게 더 의존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카이라는 객관적으로 양을 고칠 수 없다면 빨리 현실로 돌아와 미카를 혼자 두지 않게끔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이크는 감정적으로 양을 고칠 수 있는 확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찾아 발품을 팔며 선택을 미룬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 메모리 칩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기억을 본다.
영화 속 세계에는 인간과 휴먼 안드로이드와 복제 인간이 공존한다. 휴먼 안드로이드, 영화 속 전문가들은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며 테크노 사피엔스를 위한 박물관과 그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존재한다.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기도 하며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의 영향력 밖에 존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테크노 사피엔스는 고장 나거나 기능이 멈추면 인간처럼 부패한다. 테크노 사피엔스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메모리칩이 있고 특정 기준으로 3초씩 메모리를 저장하는데 연구자들은 이 기준을 밝히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인간은 특수 장비를 통해 메모리칩에 저장돼 있는 기억을 영상으로 복원 후 시청할 수 있다.
양은 기업에서 만들어낸 정품 테크노 사피엔스가 아니라 모조품으로 여러 가정을 거쳤다. 정품은 아니지만 보증받은 제품으로 사설 수리업체에서 수리를 받을 수 있었다. 양의 존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상태가 어떤지 제이크 가족들도 모른다. 양은 오직 교육용으로 제작된 테크노 사피엔스다.
영화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룬 서사를 중심으로 인간 중심의 서사에서 탈피하면서 인문주의적 시각을 비판한다. 우리는 인간의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한다. 의심 없이 안드로이드에게 인간다운 모습을 기대하던 관객은 영화 후반부 에이다의 말을 듣는다.
"양도 인간이 되고 싶어 했을까?"
"너무 인간다운 질문이지 않아요?
다른 존재는 모두 인간을 동경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제이크가 양의 메모리칩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주인공과 관객은 양에 공감한다. 특정 기준으로 저장된 메모리의 영상들을 보면서 제이크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제이크와 양이 나눈 대화, 카이라가 양과 나눈 대화, 미카가 양과 함께 보낸 시간 그리고 양이 제이크 가족을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저장된 영상들을 보게 된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지만 잊게 되기도 하며 잊고 싶지만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의 메모리 영상들은 선택된 파일들이다. 양의 선택에 의해 저장된 3초 영상들은 알파, 베타, 감마라는 프로그램 안에 압축되고 필요 의해 추출된다.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이 따른다. 왜 양은 이 영상들을 녹화해서 저장하고 있었을까. 어떤 기준에 의해 영상을 기록했을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직 메모리를 기억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특수 안경을 통해 양의 메모리칩을 영상화한 제이크는 우주에 펼쳐진 빛나는 행성 같은 양의 메모리 파일들을 본다. 그곳엔 양의 선택으로 촬영해 저장한 영상들이 있었다. 그 영상들은 무작위적이지 않고 서사를 만든다.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햇빛에 빛나는 자연 풍경, 숲의 나무들, 고요한 방 안에 들이치는 오후의 햇살, 제이크 가족은 볼 수 없는 그들의 뒷모습, 미카를 바라보는 시선들. 제이크 가족의 시간을 지나 더 과거로 가면 양이 이전에 만났던 가족들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중국계 남자아이가 나고 자라 독립을 하고, 그의 어머니가 연로해 죽는 순간까지 양은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에이다와 똑같이 생긴 여성의 가족과 만난 양은 에이다의 죽음을 기록했고, 우리는 노란 머리 여성 에이다가 복제 인간임을 알게 되면서 에이다의 과거까지 알게 된다.
가장 신비로운 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양의 모습이었다.
죽은 나비를 박제해 모으는 행위를 하는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았다면 안드로이드가 사유 재산을 축적하는 행위가 가능했을까. 카이라와의 대화에서 양은 자신은 끝은 시작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래밍은 되어있지 않다고 말한다. 양은 카이라의 끝은 곧 시작이라는 것을 믿느냐는 말에 "솔직하게 얘기해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잠깐만.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어?"라는 카이라에 말에 "아닐걸요"라며 넘어간다. 양은 무가 없으면 유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지만 안드로이드는 끝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명확한 차이다.
차(tea)를 왜 좋아하느냐는 양의 질문에 제이크는 명확한 하나의 이유를 말하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양은 차에 관해 역사적으로 아는 것이 더 많지만 그것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제게도 차(tea)가 그냥 차가 아니면 좋겠어요"
"저는 차를 만드는 모습이 좋아요. 정말 아름다워요 찻잎이 부풀어서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모습이요. 저도 차에 관해 더 깊이 느껴 보고 싶어요. 차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소에 관해. 시간에 관해서요. 그러면..."
"뭐?"
"죄송해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어요."
하려던 말을 잊는 안드로이드가 있을까.
제이크는 양이 저장한 영상들을 따라가며 양이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양이 인간에 가까웠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제이크는 박물관장의 말대로 양이 테크노 사피엔스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동의한다. 영화는 테크노 사피엔스만의 고유한 위치와 특성을 잘 보여준다.
양의 메모리칩에 저장된 영상들을 보며 인간은 그것을 기억이라고 여긴다. 인간의 기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시간, 감정, 상황, 분위기 등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마치 제이크가 차를 마실 때 향, 풍미, 흙, 식물, 날씨 등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양은 저장했던 영상들을 스스로 다시 반복 재생할까? 추억할까? 그 기억을 반복 재생하며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이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그랬을 것이라고 느낀다. 창 너머 에이다를 바라본다면 그리워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고 있는 에이다를 바라보는 것은 애틋함이다. 가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랑이다. 어린 미카부터 걷고 말하는 미카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은 역시 사랑이며 그리움이다. 양은 눈을 감고 가슴을 열고 차가운 침대 위에 멈춰 누워있지만,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통해 양과 함께 쌓아왔던 시간을 추억한다.
개봉: 2022. 06. 01
장르: 드라마, SF/ 미국/ 96분
감독: 코고나다
주연: 콜린 파렐(제이크)/저스틴 H. 민(양)/조디 터너스미스(카이라)/말레아 에마 찬드로위자야(미카)
감독 코고나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가족사나 본명은 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프라이버시를 존중받는 동시에, 아티스트로서 작품으로만 대화하길 원한다"(경향신문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인터뷰) 고 했다. 감독의 예명인 코고나다는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작업했던 각본가 노다 고고의 이름과 스페인어로 '무'를 의미하는 nada가 합쳐진 것이다. 코고나다 감독은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를 공동 연출한 감독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영화 <애프터 양 AFTER YANG>2022은 미국 작가 알렉스 와인스틴의 단편 소설 '양에게 작별 인사를 Saying Goodbye to Yang'을 각색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