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자본주의를 견디는 예술가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 해석 리뷰

by 연느

브루탈리즘(Brutalism)은 미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의 시대적 배경과 일치한다. 브루탈리즘은 프랑스어 ‘베통 브뤼트(노출 콘크리트)’에서 유래됐으며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건물의 외관을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보이게 하면서 거대하고 단순하고 투박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대표 브루탈리스트[브루탈리즘 양식을 따르는 건축가들]로 건축물에 자연의 조화로움을 더해 감성적인 측면을 더했다. 영화 속 주인공 라즐로 토스의 디자인 또한 노출 콘크리트 사용, 작고 적은 수의 창문, 기하학적 구조를 특징으로 해 그가 브루탈리스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SF 영화에서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 <듄> 시리즈가 있다. 브루탈리즘 디자인의 대표 특징은 실용성보다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라즐로는 작은방에 비해 높은 창문을 디자인 한 이유를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봤을 때 자유를 느끼길 바랐다고 말한다. 그가 영화 속 건물 ‘밴 뷰런 인스티튜트’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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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 빛의 교회(맨 좌측), 뮤지엄 SAN 전경, 내부(중앙, 우측)


영화는 1막에 홀로코스트, 2막에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삼아 그들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라즐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헝가리에 살던 유대인으로 나치 홀로코스트 작은 감옥에 갇혀 자유를 빼앗기고 고통받다 가까스로 미국으로 탈출하는 오프닝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부터 1952년을 배경으로 전후 황폐한 유럽은 빈곤으로 고통받고 유대인은 대량 학살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진다. 난민과 미국 자본가의 현실 대비가 그를 비참하게 만들고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미국에서 그 역시 환영받지 못한다.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에서는 1953년부터 1960년 미국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자본가 해리슨을 통해 라즐로를 공격한다. 자본가인 해리슨 밴 뷰런은 라즐로를 자본에 기생하는 벌레라고 묘사할 정도로 예술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한편 그를 동경하고 또한 그들을 짓밟을 수 있는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긴다. 그는 라즐로에게 큰 기회를 주는 한편 예산 압박과 협박, 노동 착취 그리고 근거 없는 해고를 무기로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라즐로는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고통받으며 자유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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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2049> 스틸컷 (좌측, 중앙), 영화 <듄>part one 스틸컷


라즐로는 홀로코스트에서 도망치며 미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마침내 자유의 여신상이 눈앞에 보이고 화면 밖에서는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감독은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뒤집으며 영화가 앞으로 보여 줄 시점을 제시한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꿈과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됐지만 우리는 많은 이민 사례를 통해 한편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도망친 유대인의 시점으로 세계대전을 통해 고성장한 미국에서 정착하는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의 시작 부분 희망에 부풀었던 자유의 희망이 어떻게 망가지고 부서지는지 미국이 감추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지 라즐로 토스의 시선으로 영화는 제시한다. 극심한 인종 차별과 자본주의, 빈부격차가 여실히 드러나고 부자는 빈자들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현실 육체의 파괴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인간의 예술적 갈망과 눈에 보이는 목표였다.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1980년 제1회 건축 비엔날레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온 라즐로 토스와 그의 예술 정신이다. 독일 나치는 패망했고 추악한 자본가 해리슨은 사라졌지만 그의 건축물은 끝까지 남아 건축가의 역사를 증명한다.


감독은 디지털카메라가 대신 비스타비전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영화를 촬영했다. 비스타비전은 1950년대 미국 영화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필름 버전으로 화면비를 1.66:1로 한다. 디지털카메라만큼 선명하지 않지만 당대 표준 필름보다 선명하며 필름 화면의 포근함과 부드러움을 즐길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의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촬영 카메라까지 재현하는 한편, 영화는 50년대 산업이 한참 성장하고 있는 필라델피아를 소개하는 뉴스 화면과 편집 기법을 사용하고 인물의 의상, 헤어, 공간 등 시대를 그대로 재현해 1950년대 미국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터미션(15분) 포함, 215분의 긴 여정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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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루탈리스트>(2025)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