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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12.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제이가 본 영화 01


*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결말포함 스포주의) *




1. 더 '라스트' 슬램덩크가 아닌 이유


북산의 다섯 스타팅 멤버 모두 굳건한 팬덤을 가지고 있지만 슬램덩크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대부분 강백호를 말할 것이다. 슬램덩크는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니까(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없을 이야기다). 그러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국 대회에서 만난 강호 산왕 대 북산의 경기를 구심점으로 놔두고, 송태섭의 어린 시절로 시작해 송태섭의 미국 진출로 끝을 맺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송태섭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강백호는 산왕전에서 선수 생명에 위협이 갈 수도 있는 등을 다쳐 이 대회를 끝으로 재활에 돌입한다. 넉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성장했던 만큼 몸이 빠르게 농구를 잊어갈 수 있는 환경. 강백호가 주인공이었다면 퍼스트이자 라스트 슬램덩크가 되는 경기가 바로 산왕전이다.


송태섭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농구가 자신을 살게 했다고 자각했다. 그 이후 아마 더 열심히 연습했을 것이고, 그 결과 전국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정우성과 함께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오키나와에서 가나가와현에 있는 북산고로 진학했던 이방인의 송태섭이 미국 내 작고 마른 동양인으로서의 이방인으로 이동해 다시 처음부터 농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끝이 난다. <더 라스트 슬램덩크>가 아니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제목인 이유다.



2. 비움의 미학


<더 퍼스트 슬램덩크>엔 곧잘 말소리와 현장음이 지워진다. 그 지워진 공간은 공 튀기는 소리, 숨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 땀방울과 물방울 소리, 바람 소리 혹은 적막으로 대체된다. 그 비움의 순간. 쇄골 부근까지 올라온 것 같은 심장의 위치나 화면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세세한 움직임, 상영관의 고요가 인지되고 그때 내가 완전히 몰입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때론 환호보다 적막이, 채움보다 비움이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3. 송태섭의 손


송준섭은 송태섭에게 형이자 아버지였고, 농구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송태섭은 몸끼리 부딪히는 1대 1 농구를 통해 송준섭에게 농구 기술만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도 자연스레 배운다. 키가 작고 왜소한 송태섭이 송준섭을 뚫지 못하고 주저할 때 송준섭은 송태섭에게 무서울 땐 이를 악물고 센 척하는 거라 알려주는데, 이는 송태섭의 삶의 모토가 된다.


형의 부재 속에 성장한 송태섭은 전학간 반 친구 무리가 시비거는 걸 경험한 뒤 정대만 패거리가 옥상으로 불러낼 때도, 산왕 전에서 이긴 뒤 엄마를 만나러 올 때(형의 손목 보호대가 물론 주머니 속에 있었지만 건네기 전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도 떨리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감춘다. 그리고 행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이런 거 뭐 대수냐는 척.


그러나 코트에서는 손을 펼친다. 긴장할 때 풀 방법을 정해두자며 손바닥을 보는 방법을 권한 이한나는 송태섭의 손바닥에 넘버 원 가드라 적으며 힘을 준다. 이제 송태섭은 손을 숨기지 않고 펴본다. 그리고 행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이런 거 뭐 대수냐는 척.


미국 경기 전,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할 정도로 긴장했어도 이제 송태섭은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 대신 손바닥을 펼쳐 바라본 뒤 꼭 쥘 뿐이다. 농구가 송태섭의 감췄던 손을 해방시켰다.



4. 아이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울고 있는 엄마를 향해 이 집의 주장이 되겠다 다짐한 큰 형 송준섭이 배 사고로 죽고 더 자라지 않는 열두 살에 머물 때, 다른 가족의 시간은 그럼에도 앞으로 앞으로 흐른다. 슬픔을 극복했든 극복하지 못했든, 외면했든.


남편에 이어 큰 아들까지 잃은 엄마는 둘째 아들인 송태섭과의 감정적 교류가 이후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열일곱 생일을 맞이한 송태섭이 엄마를 위해 남긴 편지에서 다분히 드러난다. 송태섭은 그간 말하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농구를 그만 두라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아서', '초등학교 때 농구를 보러 와줘서', '농구를 계속하게 해 줘서'라 표현한다. '살아 있는 게 저라서 죄송하다'라 쓰고 구겨 버린 뒤 다시 쓴 편지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야 엄마는 깨닫는다. 아홉 살의 송태섭도 송준섭을 대신한 송태섭도 아닌 농구로 삶의 의지를 다진 열일곱의 송태섭으로, 엄마를 위로하는 인간으로 성장했음을. 성장'해버렸음'을. 아버지와 형, 그리고 엄마의 부재 속에 외롭던 송태섭을 키워낸 건 다름 아닌 농구였음을.


은퇴를 앞둔 3학년 선배가 송태섭을 향해 문제아라 거들먹거릴 때 채치수는 말한다. 송태섭은 패스를 잘한다고. 팀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동료를 믿었을 때 가능한 것이 패스다. 송태섭의 포지션은 공교롭게도 가드. 가드엔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토로할 때, 그 한쪽이 부모고 토로받는 쪽이 자녀라면 자녀는 부모의 일방적인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 열일곱이 된 송태섭의 팔을 이제야 붙잡아 보는 엄마. 조금만 더 어린 송태섭을 어루만져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편지엔 농구를 하게 해 줘서 고마운 엄마 대신 엄마가 엄마라서 고맙다는 내용이 적혔을지도 모르겠다.



5. 영광의 시대


강백호는 산왕 전에서 리바운드를 하다 등을 크게 다친 뒤 교체 당한다. 벤치 옆에 엎드려 누운 강백호는 이 상황이 분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러면서 강백호는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을 일삼는 문제아였던 자신이 채소연을 만나 농구를 시작해 풋내기 슛을 연마하고 농구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바스켓맨으로 자란 현재까지의 과정을 주마등처럼 반추한다. 문제아 시절엔 등과 어깻죽지에 몽둥이를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선수 생명에 직결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등이다. 그땐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 중 대부분이 '했어야 했다'라고 후회한다고 한다. 기쁘고, 좋았고, 행복했던 일들을 기억하는 대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회한한다고. 상념을 끝마친 듯 강백호는 기어코 일어선다. 코트로 돌아가려는 강백호를 말리는 안한수 감독에게 강백호는 확신에 차서 말한다. 내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라고. 그렇게 강백호는 코트 위로 복귀했고 역전 슛으로 북산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말년의 강백호와 안한수 감독은 그때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했어야 했다'는 후회 대신.


과연 강백호는 재활을 마치고 다시 농구공을 잡았을까 이따금씩 궁금하다. 농구를 빠르게 습득한 만큼 몸이 빠르게 잊었을지언정 몸 어딘가에 농구가 자국처럼 남아 있었기를, 미친 피지컬에 맞는 미친 회복력을 자랑했기를 부디 바라는 수밖에.



6. 스쳐 지나간 장면


집 앞에서 농구공을 튕기다 시끄럽다는 항의에 근처 농구 코트에 나온 송태섭. 비슷한 또래의 학생 다섯 명이서 골대 하나를 차지하고 2대 3 농구를 하고 있지만 송태섭은 반대 골대에서 홀로 농구를 하고 있다. 2대 3이라 경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송태섭만 끼면 대등한 경기가 될 텐데 왠지 남다른 포스에 쉽게 말을 걸 수 없다. 작고 왜소한 체구 때문에 초등학생으로 오인받지만 어엿한 중학생이 된 송태섭. 그의 앞에 한 학년 위의 정대만이 나타난다. 혼자 노는 송태섭의 실력을 알아본 듯 정대만은 송태섭에게 1대 1 농구를 제안하고 그런 정대만의 모습에서 송준섭을 겹쳐 본 송태섭은 농구를 더 이어가지 못한다. 1대 1 농구를 하자고 조르던 송태섭은 이제 없다.


송태섭과 정대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때. 반대 골대에서 농구를 하던 다섯 명의 아이들은 좀 쉬었다 하자며 옹기종기 바닥에 앉았다. 송태섭과 정대만이 농구를 시작하니 누구 하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대 3의 농구에 흥미를 잃어서도, 아님 정대만과 송태섭의 매치에 흥미가 생겨서 일수도 있겠다. 어떤 장면은 다른 서사를 생각하게 한다. 혹시 또 모른다. 본인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꽤 실력 있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농구에 대한 본격적인 꿈을 꾸게 되었을지도. 그래서 그 다섯 중 한 명 정도가 송태섭의 후배가 되어 있거나 혹은 능남에서 뛰고 있을지도.



7. 더빙보다는 자막


더빙판보다는 자막판일 때, 언어를 통한 관계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송태섭의 고향은 오키나와. 작은 동네인 만큼 동네 사람 모두가 송태섭의 가족사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 송태섭을 곧잘 형과 비교하고, 형보다 나은 동생이 없다는 말을 쉽게 던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이사를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평생을 송준섭의 그늘에서 보낼 수는 없으니. 가나가와현으로 이사를 와 새 삶을 시작하는 송태섭의 가족들. 그러나 엄마는 계속 오키나와 사투리를 쓰고 있다. 섞일 수 없다는 듯이.


일본의 이름은 우리와 같이 성+이름의 순서로 되어 있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당연한 우리와 달리 일본은 성과 이름을 구분해 쓴다. 예외가 있다지만 보통은 성으로 부르고 친밀한 사이일 때야 이름 혹은 애칭을 사용한다. 상대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친소 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해 볼 수 있다.


강백호는 송태섭을 료찡, 료찡코(송태섭의 일본 이름 미야기 료타의 애칭)로, 정대만을 밋치(정대만의 일본 이름 미츠이 히사시의 애칭)로 부르고, 송태섭은 강백호를 하나미치(강백호의 일본 이름 사쿠라기 하나미치 중 이름)라 칭한다. 문제아 3인방이 생각보다 훨씬 가깝고 친밀하다는 것이 서로를 부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특히 강백호와 송태섭의 끈끈함이. 대신 서태웅은 모두에게 루카와(서태웅의 일본 이름 루카와 카에데 중 성)라고 불리우지만 강백호는 서태웅의 이름을 도무지 제대로 부르는 적이 없다. 강백호는 채치수를 고리('고릴라'를 짧게 부른 듯 하다)로, 권준호를 메가네 군(안경 '선배'가 아닌 안경 '군'이다)으로, 안한수 감독을 오야지(본인의 아버지 혹은 직장의 책임자 등을 친근하게 또는 얕보아 일컫는 말)라 부른다. 많은 설명이 없이도 강백호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8. 아쉬운 단어 선택


북산이 산왕에 많은 점수 차로 지고 있을 때, 강백호는 리바운드를 잡으라는 안한수 감독의 지시를 받고 다시 코트 위로 나온다. 산왕을 향해 일방적인 응원을 보내는 관객들을 향해 "산양은 내가 무너뜨린다 by 천재 강백호"라 외치며. 이쯤 했으니 쪽팔려서라도 이겨야하지 않겠냐는 강백호에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점수라 하자 강백호가 말한다.


너희들의 틀에 박힌 농구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나는 초짜니까.”


여기서 초짜란 단어가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강백호의 이름 앞에 붙는 오랜 수식어이자 강백호의 레이업 슛에 붙은 '풋내기'로 번역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9. 추억의 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이 바로 보기 힘든 영화다. 일단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인 산왕 대 북산 경기가 어떤 대회의 어떤 경기인지, 어떤 의미인지 일일이 설명되지 않는다. 송태섭과 강백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패스를 하는 장면이나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정대만이나, 강백호가 산왕의 선수에게 서태웅 하나도 막지 못하냐고 따지는 장면 등은 왜?라는 질문을 던질만하다. 그러나 내가 n차 관람하는 동안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숨을 죽였다. 슬램덩크에 대한 사전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반응이다.


내가 처음 슬램덩크 만화책을 접했던 건 90년대, 당시 중학생이던 사촌 오빠를 통해서였다. 고모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사촌 오빠는 항상 슬램덩크 만화책을 챙겨 왔었다. 어린 사촌 여동생과 노는 일보다 슬램덩크를 다시 읽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듯. 그런 사촌 오빠 옆에서 한 권씩, 한 권씩 읽기 시작하다 궁극엔 다음 권을 들고 올 사촌 오빠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성장한 슬램덩크 키드인 나는 현재 슬램덩크 오리지널 판과 완전판 전 권을 비롯해 일본판과 화보, 피규어를 모으고, 슬램덩크의 주요 배경이 된 가마쿠라 여행까지 다녀온 어른으로 성장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진헌의 새 연인인 삼순이 전 연인인 희진을 향해 말한다.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다고. 그러나 벌써 n차 관람을 마치고도 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매를 해놓은 내가 삼순에게 말하고 싶다. 추억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지 예측하지 못할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이게 힘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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