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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31. 2023

68. 인터뷰 후일담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68


한여름으로 치닫던 어느 7월의 오후. 다른 회사로 이직한 후배가 연락을 해왔다. SRT 매거진 관계자가 지역별로 BTS 투어를 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골라 기획 기사를 쓸 예정인데, 그 관계자의 지역 안내를 맡게 되었다고. 얘기를 나누다가 아는 사람 중에 BTS와 관련하여 글도 쓰고 책도 낸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나를 소개받을 수 있냐고 했다는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곧바로 답했다. 'BTS 하면 제가 생각난다는 게 이 얼마나 행복한 덕질이냐'라고,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겠다'라고. 그렇게 SRT 매거진 관계자와 연결이 되었고, 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관련 내용은 8월호에 실릴 예정이라는 대답에 마음이 술렁. Agust D 파이널 콘서트를 보러 가는 SRT 안에서 이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니. 이건 운명이잖아.


콘서트 당일. 두 배로 긴장되는 마음을 가진채 플랫폼에 섰다. 속도를 줄인 SRT 기차가 멈춰 섰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올라타 자리를 찾았다. 이거구나. 앞 좌석에 꽂혀있는 8월호 SRT 매거진을 펼쳤다. 어디쯤일까. 넘기고, 넘기고.



여기다.



음... 음...? 아...? 매거진에는 짧게 책 표지만 소개될 거라고는 했는데, 정말 책만 소개되어 있구나. 꽤 성실히 질문에 답했는데. 뭐 어쨌든 이렇게 책이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인증사진을 여러 장 찍어 SNS에 업로드했다.  


와인 한 잔 하며 어떤 말을 써야 한 사람의 아미가 아닌 여러 사람의 마음을 대표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써야 방탄소년단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고심하며 썼던 인터뷰였기에, 그때 답했던 질문을 이곳에라도 남긴다.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메일로 보냈던 내용 그대로 긁어서.



1. 책자를 만들게 된 계기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오히려 입을 다무는 편을 택합니다. 속 안에 말들은 넘쳐나는데 그걸 곧바로 멋들어지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데다, 말을 뱉음으로써 자칫 그 중요함을 망칠까 봐 두려워하거든요.

대신 글을 선택했습니다.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이라는 브런치 사이트를 그즈음 알게 됐고, 입덕 후 빠르게 적어놓았던 글 몇 편을 보내 ‘작가’로 인정받아 계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편씩, 한 편씩 쓰게 된 글들의 양이 상당해졌을 때 이걸 종이 책으로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이전에도 직접 쓴 글이나 그림, 사진들을 모아 종이 책으로 정리해 왔었기 때문에 직접 편집을 하여 책을 만드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거든요.

사실 솔직하자면. 이렇게 공개적인 플랫폼에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란 이름을 달고 글을 쓰면 포털사이트에 혹여나 제 글이 노출이 되어 BTS 멤버들이 제 글을 직접 읽는 걸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아, 이런 마음을 가진 팬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했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쓴 글들로 종이 책을 만들고 이것이 실제 출판까지 이루어진 것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브릭스)



2. BTS 멤버 중 혹시 더 응원하는 멤버가 있다면


저는 정말,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 해 7명의 멤버들 모두의 팬이지만 그저 아주, 조금, 어 리를빗 신경 쓰이는 멤버가 있다면, 그건 슈가(민윤기). 흔히들 클리셰라 부르는 흔한 드라마 설정 중에 하나가, 까칠하기론 세상에 둘도 없던 남자 주인공이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남자로 변모하는 것인데 이 뻔하디 뻔한 설정이 여전히 먹히는 건 까칠함이란 가면 속에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을 ‘그’에 대한 로망, 밉지 않을 정도의 예민함 뒤에 사실은 천진난만함을 감춰두고 있을 ‘그 남자’에 대한 환상은 불변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설탕처럼 달콤한 이름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심지가 단단한데 팬들이 원한다 싶을 때 애교를 서슴지 않는 ‘그’가 실재한다면? 그게 바로 ‘안 그럴 것 같아 보이는’ 슈가(민윤기)랍니다.



3. 아미가 되신 건 언제부턴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2017년 9월 23일.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 건 이 날짜가 <아는 형님> 방탄소년단 편 방영일이거든요. 보통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가끔 회식하거나 친구 만나는 일상을 살다 보면 머리 아픈 것에는 관심 쏟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만이 유일한 낙인 때.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연차는 찼는데, 이게 맞는 일인지, 내 삶은 이렇게 재미없게 흘러가고 마는 건지, 이런 식으로 정년까지 살아야 것인지. 그런 시기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아는 형님>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그룹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멤버 한 명 한 명 자세히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멤버 하나하나 예능감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 매력 있어 보이는데, 신곡이라고 소개한 <DNA>란 노래도 꽤 괜찮고 쩜쩜쩜. 그렇게 유튜브로 방탄소년단을 검색했고. 그게 오늘까지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덕질이 될 진 상상도 못 했죠. 입덕이란 행위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로 한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제 운명은 확실히 BTS였나 봅니다.



4. 혹시 가장 좋아하는 BTS의 노래, 혹은 앨범이 있다면


이건 정말 매번 달라져요.  그룹에 솔로까지 합하면 곡 수가 수 백 개에 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사에 솔직히 담는 편이다 보니 그때그때마다 ‘최애’ 곡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음.. 오늘 기분으로는 이 노래네요. <낙원>. '미래만이 꿈이라면 내가 어젯밤 침대서 꾼 건 뭐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 거 아니면 그냥 먹고 자는 거 암것도 안 하는데 돈이 많은 거 꿈이 뭐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We deserve a life 뭐가 크건 작건 그냥 너는 너잖어'



5. 국내에서 BTS 히스토리를 따라 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면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서울이나 부산은 너무 당연한(?) 도시라서 패스. 2019년 썸머 패키지의 배경이자 뷔(V, 김태형)의 개인 곡인 <Winter bear>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전라북도 완주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오성제 저수지, 아원 고택, 위봉 산성, 용암 상회까지. 화보집을 들고 사진을 찍은 방향과 위치가 어딘지 가늠해 가며 즐겁게 다녔어요. 혼자 갔던 터라 <궁>이나 <호남각> 같은 식당(썸머 패키지 촬영을 위해 BTS가 방문했던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낯선 곳 하나를 아는 곳으로 만들게 하는데 덕질의 힘 아닐까요?



6.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아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BTS 투어 명소가 있다면


담양의 소쇄원. RM(김남준)이 다녀갔다,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RM은 담양을 가고 싶다고 직접 말한 적도 있고, 실제로 이따금씩 담양에 방문했던 사진을 올려주기도 했어요. 제이홉의 고향이 광주니까, 겸사겸사 광주와 담양을 묶은 코스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더 허락한다면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오랫동안 RM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이 전남도립미술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까지 방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7. 광주의 BTS 시크릿 스페이스가 있는지


제이홉(j-hope, 정호석)의 솔로곡인 <Chicken noodle soup (feat. Becky G)>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From 광주, 한 거시기의 Gang. 금남 충장 Street, 거긴 내 할렘' 금남로와 충장로는 광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비밀 장소라 할 순 없겠지만, 일단 광주에 도착했다면 무조건 찍고 가야 하는 곳이랄까요. 제이홉이 다녔던 댄스 학원도, 최근 광주광역시가 기념으로 세운 hope 조형물(제이홉의 메시지도 포함돼 있고, 직접 제이홉이 방문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도 했습니다)도 모두 이 거리에 존재합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카페나 핫한 레스토랑 등이 많은 동명동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맛있는 식사 한 끼를 함께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RM이 방문했던 칵테일 바인 <바이 더 글라스>도 포함해서요.



8. 아미로서 BTS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십시오


가장 어려운 질문은 역시 마지막에 있네요. 어느 기점 이후 BTS와 관련된 기사가 나면 그 앞에 엄청난 수식어가 붙습니다. 최고, 최초, 대기록 같은. 거기에 해외에서의 위상, 수상, 영향력 등등.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이 출간된 해가 2019년이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이 나오면 제가 BTS 팬이라는, 팬이었다는 사실이 영원히 박제되는 거잖아요. 이게 어떻게 보면 제 평생의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좋아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우상들이 그동안 꽤 많았었으니까. 언제나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생각은 잠깐이었고, 출판사에 원고를 바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책의 가장 장에 이렇게 써서요. '재작년의 내가 오늘의 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듯 내년의 내가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책장에 두고두고 남게 될 이 글의 마침표를 이렇게 찍는다. 아무렴 지금처럼 행복하겠지.' 이 글을 2019년 말에 썼는데, 2023년의 저는 여전합니다. BTS의 팬이라서 아무렴, 그때처럼 행복하다고. BTS 팬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런 삶이 살아집니다. 그러니 부디, BTS로 살아 행복하다고 생각해 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P. S.


이때 답했던 인터뷰 중 아주 일부가 별도의 책으로 출간되는 BTS 투어 책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갑자기 '대표성'을 띤 것 같아 부담스럽고 죄송스럽고 그럼에도 사실 즐겁다. 역시, 덕후 일기 쓰기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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