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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21. 2022

67. 자 부산의 바다여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67


이따금씩 재독 하는 책 중 하나인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엔 아래와 같은 문단이 수록돼 있다.

 

음악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음악이 달라붙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더 강렬한 경험이 와도 처음의 그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음악은 내게 실용이다. 책보다도, 그림보다도, 사진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일을 하게 하고, 집중을 하게 하고, 여행을 하게 하고, 술맛을 돋우고, 기분을 바꿔놓고, 마음을 간지럽히고, 흐린 날에 햇살을 드리우고, 햇살이 가득한 날에 비가 오게 하고, 해를 더 반짝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맞다. 이 글을 쓰게 했다. 음악이.


처음 이 문단을 읽고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하게 공감해 따로 적어두고 몇 번이고 꺼내먹었기에 여기 덕후 일기에서도 언젠가 이미 인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다시 또 꺼내먹는다. 대신 '음악'이란 단어를 '덕질'로 슬쩍 바꿔서.


덕질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덕질이 달라붙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더 강렬한 경험이 와도 처음의 그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덕질은 내게 실용이다. 책보다도, 그림보다도, 사진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일을 하게 하고, 집중을 하게 하고, 여행을 하게 하고, 술맛을 돋우고, 기분을 바꿔놓고, 마음을 간지럽히고, 흐린 날에 햇살을 드리우고, 햇살이 가득한 날에 비가 오게 하고, 해를 더 반짝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맞다. 이 글을 쓰게 했다. 덕질이.


덕질을 설명하는 완벽한 문단으로의 변신.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 모든 실용을 넘어 글을 쓰게 하는 덕질. 감히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게 하는 덕질.


짐작하셨겠지만, 맞습니다. 저 부산에서 <Yet to come> 공연 보고 왔습니다.






아마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하루였다.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Yet to come> in BUSAN 개최 공지는 그런 날들 중에 업로드되었을 테고 나는 당장 그 공지 제목부터 캡처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며 가지 못하면 죽음뿐- 같은 주접 글을 썼을 것이다. 공지에 명기된 날짜를 달력에 순차적으로 표기했을 테고, 부산에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공연 날짜를 미리 알리며 신세를 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마치 남의 일인 양,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일을 더듬는 것처럼 쓰는 이유는 공지가 올라온 날부터 현재까지 지내온 날들이 말 그대로 '순삭'이었기 때문이다. 콘서트 개최 공지가 뜨면서부터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 단위로 흐르는 것이 확실하다. 간다, 못 간다의 결과만을 두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액션 영화처럼.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BTS <Yet To Come> in BUSAN 공연이 개최된다고 발표된 것은 8월 24일. 부산 기장 일광에 특설무대를 세우고 10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다는 내용은 부산 현지인들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입 모아 안전사고를 우려했는데, 대중교통은 지하철 동해선 라인만 닿는 데다 공연장까지 도달하는 도로는 고작 2차선, 게다가 인파에 밀려 떨어질 수 있는 협소한 다리가 그 중간에 있고, 10만 명 중 5만 명이 스탠딩을 서는데 주 출입구는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오랜만인 오프라인 콘서트라는 쾌재를 망각하게 했다. 1박에 천만 원에 육박하는 숙소가 등장하는가 하면 10만 명을 언급한 어느 (현재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무속인의 영상까지 등장했다. 누군가 그랬다. 보라 피 생성되고 가야 되나 고민되는 콘서트는 처음이라고. 나 역시 그랬다.


새벽까지 공연장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혀있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돼 현장 분위기라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플레이(실황 공연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노리자 했으나 이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이번 <Yet to come> in BUSAN 콘서트는 먼저 팬클럽 멤버십에 가입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응모를 받은 뒤 당첨/미당첨을 먼저 가르고, 미당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반 예매와 라이브 플레이 예매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라이브 플레이를 예매하려면 콘서트 좌석을 일단 응모하고, 꼭 미당첨이 된 뒤, 인터파크 티켓팅을 통해 좌석을 선점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추첨 운이 없어 떨어질 테니 먼저 응모부터 했다. 방탄소년단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니 이번만큼은 공연 직관 대신 라이브 플레이 관람이 1순위. 분명 그랬다.  


9월 2일. <Yet to come> in BUSAN 공연 장소 변경 안내 공지가 공식으로 떴다. 일광 공연 개최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따른 언론 취재, 그에 따른 후속 보도들이 이어진 끝에 얻은 결과였다. 변경된 공연 장소는 아시아드 주경기장. 내겐 부직샵의 추억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도 남동생의 집과도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이렇게 되니 무조건 콘서트 당첨이 되어야 했다. 응모가 모두 완료된 뒤 공연 장소 변경 공지가 올라왔던 터라 안전 우려로 처음부터 응모에 참여하지 않았던 팬들이 토로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슬며시 그만큼 내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걸까 이기적인 생각을 조금.


그리고 역시 사람은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한다. 콘서트 당첨 발표가 있던 9월 7일.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어느 교차로 빨간 불 앞에서 4시 정각, 당첨 여부를 확인하였으나 어김없이 미당첨. 이럴 때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게 SNS인데. 꼭 나만 빼고 세상의 모든 아미들이 당첨된 것만 같다. 그래도 아직 일반 예매가 남아있으니, 무조건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던 중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 방탄소년단이 참석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게다가 티켓팅은 바로 다음날인 9월 14일. 그것도 정오. 콘서트를 한 주 앞둔 시점에 진행되는 시상식이고 나는 무조건 <Yet to come> in BUSAN 일반 예매를 성공할 테니 마음을 편히 먹고 티켓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일찍 먹고 돌아와 1시간 전부터 띄워놓은 예매 사이트가 꺼지지 않게 체크하며 기다리다가 12시가 되자마자 클릭. 바로 클릭이 되지 않아 망했다,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 번호가 떴다. 그때 화면을 찍은 사진을 보니 대기 시간 8분에 대기순서 486번째. 그렇게 3분 정도 지난 뒤 접속이 됐고 2층 구역의 좌석이 조금 남아 있어 두 좌석 연석으로 클릭해 예매를 마쳤다. 


처음 결제로 넘어갔을 때 배송 주소가 검색되지 않아 시간 초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됐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어찌 됐든 예매를 마친 시간이 12시 9분쯤이었고,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 있어 다들 일찍 티켓팅을 마쳤나 싶었는데, 그 대부분의 좌석이 초대권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라 클릭할 수 없게 막혀 있었고, 이번 티켓팅으로 얻을 수 있는 좌석이 약 1,400석 밖에 없었다는 걸 예매를 모두 마친 후에 알게 됐다. 티켓팅을 성공했다는 글을 올리자 이걸 성공하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리는 걸 보고 '대단한 걸 한 거였네'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서버는 간택 전이고 그 간택은 대체 어떤 알고리즘이 작동되는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얼떨떨한 열기에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았다. 


응모에 미당첨된 불운한 사람들이 참전하는 일반 예매 당일. 전운이 감도는 날이다. 티켓팅 시간은 저녁 8시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때부터 온통 신경은 시침을 한참이나 빨리 돌린 채였다. 업무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일과를 보내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퇴근하고 나만 남은 사무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도 거슬려 텔레비전 볼륨을 키운 채 내내 시간만 확인했다. 


8시 정각. 클릭. 하얀 화면. 20만 번대의 대기 순서. 끝없는 기다림. 각자의 대기 순서를 확인하는 게시글을 확인, 확인, 확인. 어느덧 티켓을 성공했다는 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매번 PC 화면으로만 티켓팅을 도전했었는데 혹시나 싶어 함께 열어둔 앱의 대기 순서 주는 속도가 좀 빠른 듯해 약간의 기대감. 


30분 가까이 흐르자 핸드폰 앱 대기 화면이 먼저 넘어갔다. 무작위 일련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겨우 구역을 찾아 색깔이 있는 좌석을 누르는데 전부 이선좌. 한 번에 전체 화면이 보이지 않는 아이폰이라 확대 후 클릭을 하다 보니 속도에 밀리는 듯하다. 그러다 켜놓은 PC 화면의 대기 순서가 끝나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팟. 창이 꺼졌다. 핸드폰과 PC를 동시에 접속하면 이미 접속된 기기 하나만 가능한 건가. 


이래서 한 우물을 팠어야 했는데. 핸드폰과 PC 둘 다 접속했던 적이 없어 우왕좌왕. 이렇게 된 거 핸드폰 앱에 집중. 클릭, 확대, 클릭, 이선좌, 클릭, 확대, 클릭, 이선좌. 그러다 아무것도 터치되지 않는 새하얀 화면으로 바뀌었고, 뒤로 가기도 새로고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타의에 의한 포기 선언. 회사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며 채 끄지 못한 하얀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야근하고 이제야 퇴근하냐는 듯 인사를 건네는 안내실 직원 분께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뒤 차 시동을 걸었다. 이럴 때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게 SNS인데. 꼭 나만 빼고 세상의 모든 아미들이 일반 예매에 성공한 것만 같다. 


어차피 라이브 플레이 갈 거야, 억지 위안에도 푸슈슈 꺼지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잠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붙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자야 해. 누워 생각했다. 얼른 잠에 빠져. 그것만이 살 길이야. 이후 있었던 라이브 플레이 티켓팅은 어렵지 않게 성공해 대형 스크린과 적당히 떨어진 가운데 구역으로 좌석을 구했다. 더팩트 뮤직 어워즈 티켓이 없었으면 옅은 우울감을 오래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아마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하루였다.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Yet to come> 공연 개최 공지는 그런 날들 중에 업로드되었을 테고...'로 시작한 이 글의 첫 문단이 마치 남의 일인 양,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일을 더듬는 것처럼 쓸 수밖에 없었는지 이쯤 되면 아시겠다. 콘서트 개최 알림 첫 공지가 8월 중순이었으니 한 달이 그냥 지나갔다. '그런 모양으로 줄곧'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그냥'.


10월 8일. 더팩트 뮤직 어워즈가 열리는 체조경기장은 무지개가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색, 파란색, 보라색 등 옷을 완벽하게 통일해 입은 트로트 팬덤과 노랗고 하얗고 푸른 응원봉을 손에 들고 있는 아이돌 팬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예매한 티켓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팔찌 티켓으로 교환한 뒤 시상식을 함께 볼 지인과 가까운 치킨집 야외 플라스틱 좌석에 자리를 잡고 생맥주 한 잔씩을 시켜 마셨다. 주변 카페가 모두 만석이라 선택한 차선이었는데, 가끔은 그 차선이 최선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 비가 와 깨끗하게 씻긴 상쾌한 공기와 불순물이 없는 파란 하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술잔을 부딪히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몇 달 만에 방탄소년단을 본다는 흥분감과 한데 뒤섞였다. 맥주를 몇 잔이고 연달아 들이킬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지만 딱 한 잔씩으로 끝내고 공연장 입장 완료.


네 시간이 넘는 시상식은 자칫 루즈할 수 있지만 대상이 다를 뿐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앉아 평소에 잘 챙겨 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까지 다양하게 들을 수 있어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특히 시상 중간중간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방탄소년단이 수상하러 나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수상하러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아미부터 찾는 멤버들. 팬앤스타 최다 득표상을 받은 남준이 수상 소감으로 '일일이 볼 수는 없지만 잠 못 자고 투표해주신 거 너무 잘 알고 있다'며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는데, 스태프의 분야를 일일이 나눠 부르며 주변인들에게 먼저 감사하다고 말하던 몇몇 소감이 연이어 이어진 후여서 더 그랬을까.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수고를, 우리를 '알아주는' 남준의 말이 더욱 와닿았다. 수고와 노력을 통한 앎, 그 앎을 통한 이해, 그 이해를 주고받는 사이.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특별한 건 이 양방향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Born singer>를 부른다는 가짜 스포일러에 속았지만 <For youth>와 <Yet to come>, 앙코르로 다시 한번 부른 <Yet to come>을 함께 했다. 공개방송 응모에 단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기에(당첨 운이 정말, 진실로 꽝이다) 실제로는 처음 듣는 곡들. 현장의 팬들과 눈 마주치고 충분히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렇기에 <Yet to come> in BUSAN 공연을 라이브 플레이로만 보는 건 너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부산에는 무조건 가는 것이 맞다 싶었다. 이렇게 함성을 지르고 표현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우리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같은 도시 안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마음껏 즐기고 와야지.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 오기 전 논현동에 있는 카페 <휴가>를 다녀왔었다. 이곳은 방탄소년단이 세 번째 숙소로 썼던 주택을 개조해 현재 카페로 운영하는 곳이다. <달려라 방탄> 에피소드를 통해 내부를 보다 상세하게 보여주었던 숙소라 집안의 구조를 가늠해보며 돌아다녔다. 여기가 거실이었고, 이쯤이 윤기와 석진이 나눠 쓴 방이었겠지- 하며. 방문한 시점에 특히 일본인 팬들이 무척 많았는데, 팬데믹이 끝나가자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바로 바다를 건넌 사람들이었다. 더팩트 뮤직 어워즈 다음 날엔 하이브 인사이트에서 진행 중이 <Proof> 전시를 찾았다. <No more dream>에서 <Yet to come>까지 이어진 과정. 콘서트에서 찍힌 사진들, 연습실 영상,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의상, 수많은 트로피, 그리고 그 앞에서 눈과 걸음을 떼지 못하는 수많은 팬들. 어제의 카페 <휴가>와 오늘의 <Proof> 전시. 덕질은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작은 순간을 쪼개고 쪼개 오래오래 간직하는 일이자,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작은 순간이 아주 좋았던 것이었단 걸 끊임없이 말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10월은 특별한 달이다. 일명 짐토버(찜토버). 지민의 생일이 있는 특별한 10월이기에 지민과 옥토버(October)를 합하여 짐토버라 부른다. 10월 한 달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지민의 생일 축하하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진행된다. 지민의 생일인 10월 13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지민의 생일이야" 했다. 하루를 잘 보내야 하는 당위. 지민아, 생일 축하해!


다음 달 파리 여행을 위해 남은 연차를 올인해 놓은 터라 목요일에 낀 지민의 생일을 온전히 축하만 하며 보내기는 어려웠다. 대신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저번부터 찜해두었던 식당에서 나고야식 장어덮밥으로 보양식 식사를 했고, 지민의 사진으로 꾸며진 대관 생일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셨다. 지민의 솔로곡인 serendipity의 이름이 붙은 조각 케이크는 저녁에 먹기 위해 포장 완료. 짧고 알찬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마감이 정해진 보고서 작성에 한참 몰입해 있다가도 짐토버의 후기를 보기 위해 짬짬이 커뮤니티에 접속하며 보내던 오후. 그러다 갑자기 지금 <Yet to come> in BUSAN 공연 취소표가 꽤 많이 풀려 있다는 게시글을 봤다. 글이 작성된 시간은 5분 전. 그새 티켓은 모두 나갔겠지, 하면서도 손가락은 자동으로 인터파크 앱을 클릭하고 있었다. 접속하고 보니 스탠딩석은 대여섯 석 정도, 지정석은 스무 석 정도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나마 숫자가 많은 지정석 클릭. 숫자가 떠있는 구역으로 들어갔더니 띄엄띄엄 초록색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좌석들. 확대, 클릭,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확대, 클릭,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그럼 그렇지, 벌써 다들 취켓 중인 티켓이구나 싶어 전체 구역 보기를 눌렀더니 아까 분명 0석이었던 구역이 1석으로 바뀌어있다. 클릭, 좌석 확대, 클릭. 


어? 갑자기 화면이 1초간 하얗게 변하더니 좌석 매수를 선택하는 화면으로 넘어갔다. 이전에 여기까지 넘어갔다가 결제에서 튕겼던 적이 있어 침착하게 손가락을 놀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토해질 것 같다. 매수를 1로 바꾼 뒤 결제. 현장 수령 체크. 카드 결제 선택. 앱카드 확인. 그리고.


000 고객님,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에. 성공했다. 티켓팅보다 더 어렵다는 취켓팅을. 아직 떨림이 멈추지 않은 손으로 좌석이 풀렸다는 정보를 알려준 분께 고맙다는 댓글을 달았고, 이게 진짜인가 싶어 몇 번이고 인터파크에 접속해 예매 티켓을 확인했다. 취켓팅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누군가 비결을 물었지만, '운'이라는 속 좋은 얘기밖에 할 수 없었던 건 이 때문이다. 그저 지민이가, 방탄소년단이 공연에 꼭 오라고 부른 것이라는 과몰입 말곤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퇴근 후 serendipity 케이크를 꺼내 축하주로 와인을 오픈했다. 행복과 취기에 젖어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더니 그중 내가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걸 알아 본인이 티켓팅에 성공한 것을 너무 좋아하지 못했다며, 더욱 기쁘다는 댓글이 달렸다. 마냥 좋아해도 모자랐을 시간을 내가 빼앗기까지 했구나. 마음을 담은 대댓글을 단 뒤 몇몇 축하 메시지에 하나씩을 답 해나갔다. 나, 정말, 콘서트 간다.


콘서트가 있기 하루 전, 리허설을 마친 남준이 위버스에 글을 남겼다. 어쩌면 실 가창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아주 오랜만에 부르는 오래된 곡들도 포함되어 있고, 애초에 이런 포맷의 오프라인 공연이 처음인 데다 또 아주 오래간만이기 때문에 락페나 DJ 페스티벌의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 들고 따라 부르며 그저 행복하게 축제처럼 즐겨주시면 감개무량하겠다는 글이었다. 언제고 말로, 글로 표현하고 나누어주는 사람. 국내에서 하는 참 오랜만인 함성 콘서트. 딱 남준이 글처럼 즐기기로 한다. 


콘서트 전날부터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리는 부산 도심. 급하게 티켓을 얻은 터라 하나 남아 있는 소중한 연차를 월요일로 내놓고 일정을 짰다. 공연이 있는 토요일 당일엔 공연 자체에만 집중하고, 그다음 날 가보자 했던 전시와 먹고자 했던 메뉴를 먹어야겠다, 했다. 이틀 꽉 채워 보내고 월요일에 돌아오면 되겠다, 했다. 그렇게 다다른 10월 15일. 여기까지 정말 숨 가쁘게 왔다. 


부산까지 다다르는 풍경이 꼭 수묵화 같았다. 농도가 겹겹이 다른 산새와 가끔씩 속도를 확 줄이게 만든 수북한 안개는 차에 카메라를 거치해 내내 찍어도 그림이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사실 나는 이렇게 긴 고속도로 운전을 할 때 조수석에 남준이 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멤버 중에 유일하게 면허가 없는 데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국내 지리를 누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풍경 참 예쁘지, 벌써 저렇게 단풍이 들었네, 하며 대화를 나누는 상상. 가끔 언타이틀이나 영턱스클럽 같은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이런 노래를 듣느냐는 핀잔을 듣는 상상도. 긴 운전을 기꺼워하는 나만의 영업비밀이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넉넉한 양의 낙곱새를 이른 점심으로 챙겨 먹은 뒤 짐을 꼼꼼하게 챙겨 버스를 탔다. 가을 야구의 희망이 사그라든 고요한 사직야구장을 지나니 저마다 방탄소년단의 팬임을 내세우는 표식을 한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본인 확인 및 현장 티켓 수령이 오전 11시부터 오픈이었는데 현장에 줄을 세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아수라장이라는 글들을 보고 예상보다 꽤 일찍 출발한 것인데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게 없어 보였다. 어디가 줄이고,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끝이고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서 있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 물어 겨우 줄인 듯한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게 본인 확인과 현장 티켓 수령을 하는 보조경기장으로 연결되는 줄인 지 누구도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정말 다들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장 내부는 방탄소년단 측, 공연장 외부는 부산시 측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현장에 있자니 부산시의 행정이 단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다. 무질서, 무맥락 속에 혹여나 사고 나면 아티스트 이름으로 기사화되기 뻔한 상황. 줄을 선 사람들끼리 라인을 나누고,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을 터고, 서로의 안위를 챙겨가며 땡볕에 대기를 시작했다. 


보조경기장까지 향하는 줄에서 한참, 보조경기장에 내려와서 또 한참. 본인 확인을 마친 뒤 실물 종이 티켓으로 교환하고, 다시 공연 관람 팔찌를 받기까지 딱 네 시간이 걸렸다. 공연 시간에 가까워지자 급한 마음에 피지컬로 밀고 들어오는 팬들의 육체적인 몸을 한껏 경험하고 나니 그나마 인프라 갖추어진 이곳이라 이 정도로 끝난 거다 싶었다. 이런 준비로 일광에서 진행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했다. 티켓을 먼저 교환하고 경기장 주변에 형성된 다양한 이벤트 부스들을 경험하려고 했는데. 티켓 받고 경기장에 들어와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자리를 찾아 앉으니 오후 다섯 시 반. 공연 시작 30분 전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로고가 가로로 확장되어가는 듯한 대형 스크린을 카메라에 담고 옆자리에 앉은 팬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공연 예정 시간인 오후 6시가 되고 공연장에 어둠이 내렸다. 아직 스탠딩 구역의 입장이 끝나지 않았으나 방송사 중계가 예정돼 있었기에 더 늦출 수는 없었나 보다. 엄청난 규모의 불꽃놀이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앨범 이미지와 앨범 발매일이 순차적으로 스크린에 뜨기 시작했고, 스탠딩 구역의 팬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밖에서 내내 서서 기다린 것도 모자라 공연도 내내 서서 보는 대단한 사람들. 스탠딩으로 공연을 봤던 적이 꽤 있고 특히나 부직샵은 올 스탠딩 공연이었기에 저 자발적인 애씀을 이해할 수 있다. 제발 다치는 사람 없이 끝까지 공연을 무사히 즐길 수 있길. 


<MIC drop>의 시작을 알리는 호비의 함성 유도. LED 화면이 빨갛게 바뀌고 그 앞에 일곱의 까만 실루엣이 드러났다. 2017 MAMA의 <MIC drop>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방탄소년단을 증명시키기 위해 탈진하듯 공연했던 17년의 방탄소년단은 챕터 1의 마지막 공연의 오프닝으로 같은 장면을 택했다. 이제는 세상에 증명시키고도 남은, 그럼에도 증명해 보이겠다는 자신감 있는 선택. 데뷔 초 멤버들의 날카로움이 원하는 걸 얻으려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소중한 걸 지키려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는 어느 트윗 글이 생각나는 오프닝이었다. 이건 글을 쓰는 지금 덧붙이는 것일 뿐, 사실 <MIC drop>이 시작되자마자 팬 챈트를 미친 듯 외치며 마냥 오열한 1인이었다.


두 번째 곡은 <달려라 방탄>.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서 부산에서 계속 달릴 거라 말했던 탓에 <달려라 방탄>의 무대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이른 타이밍일 줄 몰랐다. 서서히 달구었다가 공연 후반부에 터트리지 않고 오프닝부터 마냥 쏟아낸다. 게다가 1초도 쉬는 구간 없이 몰아치는 독기 가득한 방탄소년단스러운 새 안무다. 멍했다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가, 멍했다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의 반복. 현장 중계가 되고 있고 추후 고화질로 공연 영상을 받아볼 수 있을 테지만 이 현장의 분위기를 담고 싶어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는데도 함성소리를 낮출 수가 없었다. <RUN>와 <Save me>까지 일어서서 신나게 떼창 했다. 


보컬 라인의 <00:00(Zero O'Clock)>과 <Butterfly>, 랩 라인의 <욱(UGH!)>, <Cypher PT.3 : KILLER>가 뒤이었다. 처음 들려주는 곡과 오랜만에 들려주는 곡들이 몰아쳤다. 


특히 남준이 말했던, 어쩌면 실 가창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노래가 아마 <Cypher PT.3 : KILLER>가 아닐까 싶었다. 지금이기에 가능한 랩 라인의 선곡. 고작 그 따위 말로 날 극딜 해봤자 난 더 강해져 불가사의, 난 니들의 시기 질투를 먹고 자라는 불가사리. 14년에 써낸 가사가 어쩜 22년에도 통하는지. 아직도 부르게 하는지.


국내 함성 콘서트에서 처음인 <Dynamite>와 <Butter>, 그리고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몽글몽글하게 만든 뒤 부산이라 빠질 수 없는 <Ma city>와 방탄소년단이라 빠뜨릴 수 없는 <쩔어>, <불타오르네>, <IDOL>, 그리고 함께 부르는 <Young forever>, <For youth>, <봄날>이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숙고해 큐시트를 짰는지, 그 마음이 느껴지는 선곡들이었다. 외부를 향해 순화된 거친 표현을 전달하면서도 우리를 향해 한껏 보듬는 이야기를 건네려는 했다는 것. 당분간 완전체 공연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가 갑작스러운 선물처럼 툭 떨어진 이번 콘서트이기에 가능한 이 이야기들.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자 하나 된 믿음으로 미래를 그려가 볼 시간이라고, 부디 믿음을 가져달라는 말.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는 말. 우리의 앞으로가 기대되고, 같이 늙어보자는 말. 그렇게 마지막 앙코르 곡 <Yet to come>.


코로나란 지루한 팬데믹을 예측할 수 없었듯 우리의 미래를 감히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장밋빛 미래만을 논하기보단 지금처럼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낼 것. 그러다 보면 그때 말했던 미래에 도달해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고의 순간이 언제가 될지 아직 모른다. 같이 늙어가자는 가장 행복한 프러포즈를 들은 마음 그대로, 함께 가보자. 방법이 옳다면 결코 생각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진 않을 테니.


공연이 끝나고 네 명의 멤버가 라이브로 찾아왔다.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 시간에 맞춰 입장하지 못했던 팬들이 많았다는 것과 스탠딩석에서 뽑혀나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에 대한 아쉬운 부분을 얘기했고, 그와 함께 늘 그렇듯 가볍지만 진심을 담아, 오늘 했던 믿잔 얘기와 더 많은 공연이 남았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메이크업을 채 지우지 않고, 공연을 막 마친 흥분기를 감추지 않고 찾아오는 멤버들. 무엇보다도 이 공연이 좋았다는 거, 이 상호작용이 느껴졌다는 거, 즐거웠다는 걸 충분히 느끼게 해 줘서 함께 행복했다.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방탄소년단 입덕 하길 참 잘했다.  


피곤한 몸에 흥분감이 뒤섞여 있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공연을 본 지인들과 만나 맥주 몇 잔 마시며 뒤풀이를 했었는데, 눈은 아침 일찍부터 떠졌다. 어제 찍은 영상과 라이브 영상을 다시 돌려보다 천천히 준비를 마친 뒤 나섰다. 어떻게 온 부산인데, 즐겨야 했으니까. 점심은 미리 예약해둔 곳에서 훠궈를 먹었고,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마티스 전시를 봤다. 


나는 항상 내 노력을 숨기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이 내가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결코 추측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작품이 봄날의 가벼운 기쁨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다.


전시관 한쪽 벽에 적혀 있던 앙리 마티스의 글. '언제나 당신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 이런 모습은 몰랐음 해' 라던 <Her> 가사가 떠올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읽었다. 


초당 찰옥수수 파이를 파는 곳으로 미리 메모해둔 카페에 가기 위해 올라탄 버스.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는데 특별한 관광지가 아닌 곳에 아미들이 무척 많이 보여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근처에 카페 <매그네이트>가 있었다. 지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 차창 너머 카페 밖으로 몇십 미터 줄을 서 있는 인파가 보였다. 지민의 생일부터 내내 이런 인파가 모이고 있단다. 부산에 왔으니 부산 출신의 지민과 정국의 발자취를 따라다녀보는 것.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도 또 긴 기다림을 선택한 아미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MIC Drop>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파이에 커피를 마신 뒤 근처 소품샵에서 보라색 머리 집게와 귀걸이를 사서 바꿔 끼었고, 내내 방탄소년단 노래만 흐르는 밀락 더 마켓의 계단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예 모르고, 아는 사람은 자리를 뜰 수 없는 것. '알면' 이렇게 즐겁다. 


광안대교를 옆에 끼고 천천히 걸어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간. 콩카페에서 코코넛 스무디 커피를 시켜 바 자리에 앉아 옅은 분홍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감상했다. 광안대교가 보라색으로 물드는 오후 여섯 시. 트렌치코트 입기 적당한 날씨와 바닷바람, 일요일, 보라색 다리. 특히 더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몇 곡을 찾아 들은 뒤 미련 없이 뒤돌아 나왔다.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 테니.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동선으로 동서남북,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며 거리 곳곳에 걸린 방탄소년단 배너와 보라색으로 물든 도시의 경관을 찾았다. 방탄소년단이 대단하긴 하다며 본인이 태운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을 얘기하는 택시 기사와 식당에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방탄소년단의 대단함을 말하던 시민들을 마주쳤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밤. 차이나타운의 유명한 만두 가게에서 만두를 포장해 남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콘서트가 없는 날이지만 가볍게 만 오천 보를 찍었다.


<Yet to come> in BUSAN의 엔딩 멘트 때 남준이 오늘만큼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고 하자 정국이 사실은 본인은 항상 아무 생각이 없다며 죄송하다 했다. 영양가 없는 대화라고 판단되는 자리에선 집중하지 못하고, 한 줄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고,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는 생각이 들 땐 하루를 마감하고 눕는 침대에서 자괴감에 빠지는 나는 대체로 삶의 무대를 남준이처럼 서는 편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보여야 할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남기고 표현해야 할지 기본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이 짧은 부산 나들이 동안 메모장에 단어 하나 쓰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잠을 청했다. 그냥 지도 보며 걸음 닿는 대로 걸었고, 고민하지 않고 버스와 지하철을 탔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찍었던 영상을 돌려봤다. 그뿐이었다. 사유하고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진실로 자유로웠다. 즐겁다, 재밌다, 행복하다, 신난다, 이런 단순한 감정들로도 충분하고 충분했다. 정국이처럼 무대에 오른 날들이었다.


방탄소년단이 10년간 걸어온 챕터 1이 마무리가 되는 이 시점. 그저 내내 좋았던 이번 부산 나들이처럼 이 챕터 1의 마무리까지 함께 걸어올 수 있었던 덕질은 사실 내내 좋았다. 10년 후를 말했으니 챕터 2는 처음부터 놓치지 않고 함께 가야지. 방탄소년단 덕질을 안 했음 어쩔 뻔했어. 


푹 자고 일어난 월요일 아침, 내비게이션에 집 주소를 검색했다. 제안된 여러 가지 경로 중 지민이 다닌 부산예술고등학교 옆을 지나는 경로를 선택했다. 부산에 들어올 땐 정국이 살았던 만덕동 쪽으로 들어왔으니 나갈 땐 지민의 동네였던 곳을 지나가고 싶어서였다. 덕질은 부산을 새롭게 보는 시각까지 선사한다.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시킨 뒤 시동을 걸었다. 첫 곡은 역시 <Ma City>.


자 부산의 바다여 Say la la la la la 푸른 하늘 아래 this sky line Say la la la la la

아재들은 손을 들어 아지매도 손 흔들어 Ma City로 와


챕터 2의 시작에서 <Ma city>를 다시 부를 때까지 또 달려가 볼까. 

방향 설정 완료. 자, 출발합니다. 



P. S.



어느덧 멤버들이 직접 말하는 것보다 직접 말하지 않는 것들이 가득한 현실.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입대해야 하고, 저렇게 면제해야 하고, 그렇게 근무해야 한다는 말을 내가 아미라는 이유로 쉽게들 건넨다. 멤버들은 오죽하려나. 주는 사람보다 받으려는 사람들이 한가득. 그럼에도 결국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로만 전달한 그 함축의 의미.


사실 믿어달라는 말 그 자체는 환기다. 우리는 늘 믿어왔으니까, 그리고 믿어왔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 새롭게 믿어달라는 게 아니라 믿어왔던 것들을 불러일으켜달라는 것이다. 우리 그래 왔던 사이이지 않냐고.


석진의 솔로 앨범 발매와 함께 다양한 프로모션들이 공개되고 있다. 열심히 준비했을 석진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업로드되는 스케줄마다 행복하게 체크하고 있다. 멤버 한 명 한 명의 스케줄이 이만큼 남아있을 터. 늘 그렇듯 오늘처럼 지나다 보면 1년이, 2년이, 3년이 금세 지날 것이다.


덕후 일기를 쓰며 아마도 가장 많이 쓴 단어가 기꺼움 아닐까. 살면서 한 번도 안 신어 본 고무신도 신게 해주는 사람들. 그러니 또 기꺼이 함께 지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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