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을 든 학생들이 바삐 오가는 이곳은 강남.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건 공부뿐만이 아니다.
"급식"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결국 공부는 밥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 강남의 여러 고등학교에서는 치열한 급식 경쟁이 매일 벌어진다. 모든 학생들이 만족하는 그날까지.
-설탕 장식이 가미된 멜론주스
경기고와 경기여고는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급식 명문이다. 그중 경기고의 자랑은 단연 '음료'. 경기여고가 바삭하게 구운 스테이크로 승부한다면, 경기고는 몸 전체에 짜릿함을 주는 탄산음료가 자랑이다.
'수업 끝! 이제 밥 먹을 시간이다'
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 교실이 침묵이 감돌았다. 학생회장이 조용히 말했다.
'오늘... 급식은 우리 반 담당이지..?'
주변 아이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 학교는 매주 반이 돌아가며 급식을 준비하는데, 마침내 이들의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재료가 오지 않았다.
'부회장은....? 12시까지 멜론 30통 가져오기로 했는데..?'
회장이 조용히 말했다. 창문을 보니 벌써 수업이 일찍 끝난 아이들이 삼삼오오 급식실로 향하고 있었다. 만약 제때 준비하지 못한다면 3반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큰일이다.
'부부웅~'
트럭 소리가 들렸다. 모두 창가로 달려갔다.
'멜.. 론... 여기 있습니다!'
부회장이 멜론을 가든 실은 트럭 위에서 소리쳤다.
'수고했어. 이제 30분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만들자!'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조는 멜론을 까서 갈고, 2조는 이를 탄산수, 시럽, 화이트펄과 섞었다. 이제 마무리 단계이다. 작년 시장 배 미술대회에서 우승한 민재가 설탕 공예를 맡았다. 단, 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오로지 물과 설탕으로만 만드는 장식이다.
민재가 조용히 눈을 감고 초저온 철판에 설탕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철판에 닿은 방울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어서 현란한 손놀림이 철판을 가득 채웠다.
'완성이다!'
100인분의 멜론 소다가 완성되었다. 설탕 장식과 화이트펄, 아이스크림이 섞인 음료였다. 소다를 맛본 아이들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중에는 머리를 깎고 위장해 들어온 경기여고의 제스도 있었다. 그는 한 모금 맛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법이군... 게다가 시럽이 아니라 진짜 멜론을 넣었잖아?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제스는 몰래 소다 한 병을 숨겨 가방에 넣었다. 8반 봉사부장 목태동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너.. 우리 학교 사람 아니지?.. 3반에서 너는 본 적이 없는데..'
그가 제스의 마의를 잡아당기자 가려진 경기여고의 마크가 드러났다.
'크으... 들켰다..'
제스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라!'
목태동이 소리쳤다. 가발이 벗겨져 반짝한 대머리가 노출되었다. 그 섬광에 목태동은 잠시 시력을 상실했다. 정신을 차리자 제스는 이미 학교 담장을 넘어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