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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Aug 12. 2021

버몬트를 담아와 주렴

아들이 첫 여행에서 찍어온 것


큰애가 친구네 가족 별장으로 초대를 받아 버몬트에 가서 놀다왔다. 그집 아빠가 자기 아들 포함 일곱명의 아이들을 8인승 SUV에 태워서 갔다. 고맙게도 가서 먹을 음식까지 조리만 하면 되게 다 준비해 가지고 트렁크에 꽉꽉 채워서. 


버몬트는 뉴잉글랜드 지역 사람들이 스키를 타러 가는 곳이라 산악 지형이 많은데 별장도 그런 곳에 있다고 했다. 호숫가에는 가족 소유의 보트가 있어서 뱃놀이도 할거라니 얼마나 재미날까 싶어서 내가 다 들떴다. 가면 사진 좀 많이 찍어오라 했더니 녀석이 한다는 말.


“사진 찍는 거 귀찮은데.” 


사실 큰애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성가셔한다. 하지만 아들의 빛나는 청춘을 본인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 마음은 어쩌라고 저 따위로 대꾸하나 싶어 일장연설을 하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사진 못찍는 남자 매력없다, 나중에 여친 생겨서 사진을 찍어달라는데 감각없이 찍어놓으면 끝장이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여겨서 너한테 정을 뗄거다, 그런 꼴 나지 않으려면 자꾸자꾸 찍어서 연습해야 한다, 엄마가 늘 말하잖니, 안목은 보이지 않게 많은 것을 좌우한다고. 주저리 주저리… 


한귀로 흘리는 것 같더니 효과가 없진 않았나보다. 이건 석양 무렵 모닥불 피울 준비하다가 찍었다면서 보낸 것이다. 사진을 제법 여러 장 보냈는데 이 사진이 유독 나를 뭉클하게 했다. 


프레임을 잡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공기와, 빛과, 냄새와, 아들 특유의 한쪽 눈썹만 일그러뜨릴 때의 표정까지 보여서. 잘했어 아들. 시작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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