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Stay Private Longer 2.0
2025년 10월 13일, 골드만삭스가 벤처 세컨더리 투자 전문 운용사인 인더스트리 벤처스를 최대 $965Mn 규모로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6일 후인 10월 29일에는 모건스탠리가 한국의 38커뮤니케이션과 가장 유사한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에쿼티젠(EquityZen) 인수 계획을 밝혔고, 다시 8일 뒤인 11월 6일 찰스슈왑이 비상장 거래 플랫폼인 포지 글로벌(Forge Global)을 $660Mn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4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월가를 대표하는 세 기관이 같은 영역을 향해 기민하게 움직인 것입니다.
세 건의 인수는 각기 다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골드만삭스는 벤처 세컨더리 운용 역량 및 자산운용 플랫폼 확대를, 모건스탠리는 비상장 거래 플랫폼을, 찰스슈왑은 리테일 접근성을 확보한 거래라고 자평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대상은 명확합니다. 바로 비상장 기업 투자와 관련된 인프라입니다. 전통적으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과 전문 핀테크의 영역이었던 이 시장에, 전통 금융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두가 고성장 스타트업들이 오랜 기간 비상장 단계에 머무르는 “Stay Private Longer” 트렌드를 기회로 언급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분석입니다. 미국 증시에서, 특히 벤처 투자를 받은 테크 스타트업들이 설립부터 상장에 이르는 기간은 닷컴버블 당시 평균 4년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미 10년 이상으로 늘어난지 오래입니다. 최근 상장을 위한 증권 신고서 S-1을 제출한 웰스프런트는 설립된 지 무려 17년이 지난 기업입니다.
즉, Stay Private Longer는 이미 15년 이상 이어져 온 하나의 시장 흐름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보고 등장한 기업이 지금 언급되는 에쿼티젠, 포지 글로벌, 그리고 엔젤리스트, 리퍼빌릭과 같은 비상장 투자-거래 플랫폼입니다. 때문에 최근의 변화는 이러한 기업들이 드디어 월가의 대형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기 시작한 또다른 흐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2차 물결이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가 지금의 변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모건스탠리의 에쿼티젠 인수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모건스탠리는 직원 스톡옵션 관리 플랫폼 솔리움(Solium)을 인수했죠. 이를 통해 수많은 기업의 직원 주식보상 프로그램을 관리하게 되었고, Morgan Stanley at Work라는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2023년에는 비상장 기업 지분관리 1위 업체인 카르타(Carta)와 독점 파트너십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2025년 10월, 에쿼티젠 인수를 발표했습니다.
이 세 움직임을 연결하면 명확한 전략이 보입니다. 스타트업 창업 단계에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발행하고, 이를 관리하며, 회사가 성장하면서 주주명부를 관리하고, 마지막으로 상장 전 직원들과 초기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전 과정을 모건스탠리 플랫폼 안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비스 확장이 아니라 생태계 장악 전략입니다.
에쿼티젠 인수의 진짜 가치는 거래 데이터입니다. 누가, 언제, 얼마에,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고팔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프라이빗 시장의 실시간 온도계입니다. 특정 AI 스타트업의 거래가 갑자기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한다면, 이것은 해당 기업의 다음 펀딩 라운드가 임박했거나, 조기 Exit 가능성이 있거나, 중요한 제품 출시나 계약 성사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죠. 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진 모건스탠리는 해당 기업에 먼저 접근하여 후속 투자 주관 기회를 확보하거나, 자체 펀드로 직접 투자하거나, 고객들에게 조기 투자 기회를 제안하거나, IPO 주관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은행들은 프라이빗 주식 거래 플랫폼을 소유함으로써 사모시장 밸류에이션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다”고 표현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정보 우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에쿼티젠 인수를 통해 단순히 ‘정보’에 머무르지 않고 투자은행의 핵심인 거래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손에 넣은 것이죠.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 대표 제드 핀은 “기업들의 비상장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직원과 초기투자자들에게 유동성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시점이 중요합니다. “길어짐에 따라”가 아니라 “충분히 길어진 현재”가 핵심입니다. 모건스탠리는 수년간 이 시장의 성장을 지켜보며 준비해왔고, 2025년 현재 시장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찰스슈왑의 진짜 자산은 고객 규모입니다. 4,600만 계좌, 고객 자산 11.6조 달러. 포지는 우수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유통망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습니다. 거래를 원하는 매도자가 있어도 매수자를 충분히 찾지 못하면 유동성이 부족해집니다. 슈왑은 반대로 막대한 고객 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상장 주식이라는 상품이 없었습니다. 이제 포지 글로벌의 플랫폼과 슈왑의 고객 기반이 결합되며 상장-비상장을 아우르는 종합 증권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슈왑 CEO 릭 워스터는 “프라이빗 시장 접근의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투자 기회의 대중화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장 구조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포지 글로벌 또한 사업을 밀어올리는 세 가지 메가 트렌드로 ‘장기간 비상장 유지’, ‘대체 투자 활성화’, ‘비상장 투자의 민주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흐름입니다.
찰스슈왑이 2025년에 포지 글로벌 인수에 나선 배경에는 기술적 요인도 작용했습니다. 2014년 포지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비상장 주식 거래는 상당 부분 수작업이었습니다. 전화로 매수자를 찾고, 종이 서류를 주고받으며, 변호사를 통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몇 주씩 걸렸습니다. 2025년 현재는 자동화된 KYC/AML 체크, 디지털 지분 기록 시스템, 자동화된 계약 집행, AI 기반 가격 매칭 등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거래 처리 시간이 몇 주에서 몇 시간으로 단축되었고, 수수료도 대폭 하락했죠.
결과적으로 이제야 비상장 거래에서도 대량의 리테일 고객을 상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된 것입니다. 비상장 투자도 상장 투자처럼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해진 시대인 것이죠. 워스터 CEO가 “상장 기업보다 훨씬 많은 대형 비상장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창출하는 가치에 개인투자자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은 남습니다. 왜 지금일까? 비상장 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10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페이스북도, 우버도, 에어비앤비도 모두 오랫동안 비상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월가는 ‘거래’를 보고 비상장 투자를 주선하거나 상장 자문을 하며 참여하였지 ‘회사’ 차원에서 이러한 트렌드에 주목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이번에는 다른 것일까요?
2010년대 초, 페이스북이 기업가치 100조 원까지 상장을 미루었을 때 업계는 주목했습니다. 2017 - 2018년이 되며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50조 원을 넘어설 때까지 비상장에 머물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시기 프리IPO 투자는 활발했고, 상장과 비상장 사이의 가치 차이를 노린 투자자들이 많았습니다. 포지 글로벌 (과거 세어포스트와 합병)과 에쿼티젠과 같은 플랫폼들이 바로 이 시기에 성장한 배경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명확한 한계선이 존재했습니다. 기업가치가 $100Bn을 넘어서면 상장에 나서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라는 업계의 암묵적 공감대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상장 단계에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큰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버의 사례처럼 사우디 국부펀드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까지 이미 투자자로 참여했다면, 그 이상의 규모로 비상장 단계에서 투자할 수 있는 큰손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하여 자연스러운 상한선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실제로 우버는 2019년 상장 당시 기업가치가 $82Bn이었고, 에어비앤비는 2020년 상장 시 약 $47Bn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2012년 상장 시 $104Bn으로 평가되었죠. 이들 모두 기업 가치가 급상승하는 구간에서 비상장 회사로 남아있었지만, 결국 $100Bn 근처에서는 공개시장으로 나온 것입니다.
월가의 관점에서 이 시기의 비상장 시장은 여전히 임시 대기실에 불과했습니다. 기업들이 잠시 머무르다 결국 공개시장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비상장 거래 플랫폼에 직접 투자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죠. 기다리면 결국 IPO 주관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5년 현재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오픈AI는 ChatGPT 출시 이후 불과 3년 만에 기업가치가 $500Bn까지 상승했습니다. 앤트로픽은 $183Bn, 스페이스X는 $350Bn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데이터브릭스와 스트라이프는 모두 $100Bn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곳도 상장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우버가 보였던 “$100Bn 도달 시 상장”이라는 패턴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금 조달 방식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세컨더리 거래가 프라이머리보다 낮은 가격에 이루어지는 것이 시장의 상식이었습니다. 급한 현금이 필요한 초기 투자자나 직원들이 할인가에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 세컨더리의 본질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이 논리가 역전되고 있습니다.
오픈AI는 2024년 10월 $300Bn 가치로 신주 발행 라운드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후, 더 높은 가격에 구주 거래를 실시했습니다. 2025년 직원 지분 매각 프로그램에서 오픈AI의 가치는 $500Bn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신주 발행 시점보다 67% 높은 가격입니다. 최근의 크루소 에너지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이 AI 인프라 기업은 최근 $10Bn 기업가치로 시리즈 E를 완료한 직후, $13Bn로 가격을 매겨 초기 직원들의 지분 매각 텐더 거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컨더리가 프라이머리를 30% 초과하는 가격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비상장 시장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고 있으며, 이 수요는 더 이상 상장을 기다리는 임시적 성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이들 기업이 상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상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투자를 결정합니다. 시장의 근본 가정이 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월가의 비상장 플랫폼 진입을 설명하는 결정적 논리를 제공합니다. Stay Private Longer 1.0 시대의 비상장 거래는 본질적으로 당근마켓과 같은 P2P 마켓플레이스 성격이었습니다. 유동성이 필요한 초기 직원 또는 투자자가 프리IPO 기회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중개 플랫폼을 통해 만나 거래하는 구조였죠. 규모도 제한적이었고, 빈도도 낮았으며, 가격 발견 메커니즘도 불투명했습니다.
2.0 시대의 비상장 거래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습니다. 오픈AI나 앤트로픽 수준의 기업들에 대한 거래는 더 이상 ‘아는 사람’ 간 소규모 거래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오픈AI의 $6.6Bn 규모 직원 지분 매각 프로그램은 이미 대형 IPO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수백 명의 직원이 각각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의 지분을 매각하고, 매수자는 알티미터, 코투매니지먼트, 쓰라이브 캐피탈과 같은 대형 펀드들입니다. 거래를 중개하고 가격을 조율하며 법적 문서를 정리하고 결제를 처리하는 전 과정이 복잡한 금융 거래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지금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답입니다. 시장 규모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것, 기술이 성숙했다는 것, 규제가 안정되었다는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비상장 시장의 성격 자체가 변했다는 점입니다. 임시에서 영구로, 대안에서 주류로, 틈새에서 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찰스슈왑이 45일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변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상장 투자 시장이 질적으로 전환되는 시점, Stay Private Longer 2.0이 본격화되는 시점을 포착한 것입니다. 이 질적 전환이 확실해진 시점이 바로 2025년이고, 월가는 이를 정확히 읽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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