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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italEDGE Jan 03. 2023

벤처투자 - 비트(bit)에서 아톰(atom)으로

10년만에 벤처투자의 헤게모니가 이동할 지 주목되는 한 해

다시 주목받는 '기간 산업' 벤처 투자 - 단기적인 반작용인가 근본적인 헤게모니의 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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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모건스탠리 영국사무소의 리서치 데스크에서는 재미난 리포트를 하나 발간하였습니다. 바로 지난 10년 간 전 세계 벤처투자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핀테크와 같은 컴퓨터 '비트'에 의존했던 산업에서 공급망, 에너지, 기후테크와 국방 및 보안과 같은 국가 기간 산업 및 실물 자산과 연관된 '아톰'의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공급망 재구축, 국방 무기체계와 같은 물리적 영역이 소프트웨어 주도의 벤처 투자를 대체하는 중


여기서 소프트웨어를 의미하는 '비트'와 하드웨어와 관련된 '아톰'은 다음과 같이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비트 �️ : SaaS, 핀테크, 마켓플레이스, 미디어, 플랫폼 등

아톰 ⚛️ : 에너지, 기후테크, 공급망 인프라, 스마트 제조 등


모건스탠리는 단순한 트렌드 분석이 아닌, 지난 10년 간 전 세계 68,000개 기업 225,000건의 벤처 투자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가고 다시 '하드웨어'의 시대가 온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흐름은 과거 2005년 대 중반 주목받았던 신재생에너지 투자, 그리고 모빌리티, 양자컴퓨터 등 짧게 짧게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던 바이럴 트렌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입니다.


2009 - 19년까지 '소프트웨어' 투자의 속도가 '하드웨어'를 앞질렀지만 2020년 이후 트렌드의 주도권이 이동


어떤 의미인가?


전 세계 벤처투자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탈 자금을 투자받는 스타트업을 '소프트웨어'와 '그 이외'의 분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SaaS와 클라우드를 위시한 소프트웨어 투자가 과거 10년 간 벤처 투자를 이끌어왔습니다. 왠지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앱을 만들어야 할 것같은 무언의 압박처럼 '벤처 투자 = 소프트웨어'라는 등식은 은연 중에 고정관념이 되어버렸습니다.


2022년 미국 벤처투자의 42%가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행된 바 있음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모습은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습니다.  

 

첫째, 돈의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처럼 저금리에 힘입어 광고를 뿌려 돈으로 고객을 사오는 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비용이 높아지면서 그 누구도 이제 돈을 'Commodity'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둘째, 어렵게 모셔온 고객도 예전만큼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팬데믹과 제로금리가 겹쳤던 지난 2년 간 사람들은 무인점포에서 차를 사고 식료품을 모두 배달할 정도로 새로운 서비스에 개방적이었지만 이제는 개인과 기업 모두 긴축 모드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시장도 이제는 '비트'에 기반한 서비스에 프리미엄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팬데믹 당시 매출의 20 - 30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SaaS/핀테크 기업들이 이제는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해도 기껏해야 매출의 2 - 3배 수준의 기업가치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는 앱과 비대면주문 등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marginally)' 편리하게 바꿔주는 소위 소프트웨어, 핀테크, 커머스 서비스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IRR 20 - 30% 수준의 벤처투자 수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비대면 서비스는 많아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편리성'에 그리 큰 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에 투자해야 텐배거를 기대할 수 있는 벤처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이해하기 쉽고' '분석하기 쉬운' 소프트한 분야에 대한 투자만으로는 시장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대안 찾기에 분주한 것입니다.

그 결과 팬데믹 이후 꾸준히 비중을 높여가던 에너지, 공급망, 제조 분야의 혁신에 대한 투자가 이제 점점 주류로 부상하는 양상입니다.


"We have innovation in the world of bits, but not in the world of atoms"- Peter Thiel


금융위기 당시 반짝 주목받았던 '실물자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2020년 이후 빠르게 비중 확대 중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다시 '아톰'에 대한 투자가 주목받고있는 실리콘밸리의 변화된 분위기를 상징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바로 'American Dynamism'과 'Anduril'입니다. 2023년의 미국 벤처 투자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목해야하는 단어이죠. 


1) American Dynamism 


a16z - The American Dynamism


지난 10년 간 소프트웨어 주도 혁신의 시작을 알린 가장 상징적인 글은 2011년 8월 20일 벤처캐피탈 a16z의 수장 마크 안데르센이 월스트리트지에 기고한 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입니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의 보급으로 달라질 세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명문이죠.


마크 안데르센이 11년 만인 2022년 초 새롭게 제시한 키워드는 바로 American Dynamism입니다. 미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농업, 항공우주, 건설, 에너지, 소재, 제조, 로보틱스 및 운송 등 국가의 기간 사업 전 분야에 걸쳐 진행하는 벤처 투자를 지칭하는 해당 용어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실리콘밸리에도 깊숙히 침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a16z의 American Dynamism 포트폴리오 - 국방, 보안, 항공우주까지 '실물자산'을 다루는 스타트업이 다수


아직까지는 기존의 포트폴리오 중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사업을 전개하는(것으로 판단되는)' 스타트업을 총망라하는 형태로 테마를 제시하고 있지만, General Catalyst의 파트너였던 Katherine Boyle을 American Dynamism 투자를 위한 수장으로 새롭게 영입한 만큼 조만간 해당 테마에 특화된 전문 펀드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Anduril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보검에서 이름을 따온 Anduril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에서 '제2의 스페이스X'로 가장 주목받는 국방 및 군수 분야 스타트업입니다. 'AI를 전투 장비에 밀어넣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첨단 기술로 무장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Anduril은 정부의 수주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지난 70년 간 이어져 온 군수산업의 룰에서 벗어나 '미래의 전쟁'에 적합한 무기를 먼저 개발한 후 정부에 선제안하는 방식으로 혁신을 이끄는 기업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전투 드론 - Anduril의 Ghost 4

Anduril은 이미 2018년부터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와 협력하며 국경 지역 감시를 위한 보안관제 장비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향후 5년 간 3천억 원에 이르는 수주 계약까지 체결하며 미국 국경 감시를 위한 숨은 조력자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영국 국방부, 호주 해군청과의 장기 계약까지 따내며 빠르게 성장하고있는 21세기 군비 경쟁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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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uril의 창업자 팔머 럭키는 지난 8월 트윗을 통해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오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가 국제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팔머는 이미 20대 초반에 오큘러스를 창업하여 페이스북에 매각한 이력까지 더해지며 실리콘밸리의 이단아에서 제2의 일론머스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Anduril은 12월 초 11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약 2조 원 이상의 시리즈E 펀딩을 완료하였습니다. 이는 2022년 이뤄진 벤처 투자 가운데 단일 라운드 기준으로는 지난 5월 스페이스X의 2.2조 원 펀딩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2022년 미국 최대 규모의 벤처투자가 모두 우주개발과 군수산업이라는 전통 산업의 혁신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모건스탠리는 지난 5년 간 꾸준히 투자 규모가 증가하였으면서 동시에 지난 1년 간 투자 집행이 가속화되는 분야를 고금리 시대에 '구조적 성장'이 가능한 벤처 투자 영역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관련 분야는 모두 에너지, 신재생, 기후테크, 헬스케어, 공급망 및 제조 등 '실물자산'에 기반을 둔 기간산업입니다.


고금리 시대 '아톰'의 영역으로 집중되고 있는 벤처 투자


반면 핀테크, 이커머스, 이스포츠, 게임, 푸드테크와 같은 분야는 지난 5년 간 꾸준히 투자 규모가 증가해왔지만 최근 투자 규모가 눈에 띄게 역성장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또한 모빌리티, 모바일, 빅데이터, 디지털헬스와 같은 분야는 꾸준히 투자 규모가 축소되면서 '구조적 하강'에 진입한 분야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벤처 투자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규모 자본 투하가 필요한 '실물자산' 스타트업은 장기간 R&D를 수행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며 성장의 예측 가능성 또한 소프트웨어 기업 대비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장기적 투자보다는 단기 트렌드와 모멘텀에 민간한 벤처캐피탈들이 이번에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2023년 지켜볼만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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