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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삶 Jul 25. 2021

내 삶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물음

영화 사생결단의  「누구를 위한 삶인가」노래에 얽힌 기억

내 삶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물음 “누구를 위한 삶인가”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은 세상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것처럼 바람 따라 흘러가고, 햇볕은 세상을 소독할 것처럼 내리쬔다. 그 모습에 오래전 군 생활을 하던 임진강 언저리 풍경이 겹쳐서 떠오른다. 사람 손길 타지 않는 그곳에서 가끔 고기를 낚는 어부들 몇 명만 오는 외진 곳에 있는 초소 안에 정자가 있었다. 밤이 되면 민물 게가 초소 담벼락을 타고 올라와 행정보급관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그런 외진 곳에 있던 초소였다. 그곳에서 폴더폰에 소리바다로 MP3 음악을 담아와서는 자주 듣던 노래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이다. 삶의 극한까지 몰아가는 상도역을 맡은 류승범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 사생결단의 영화 음악이었다.


"내도 사람답게 살고 싶거든 / 저 울타리 밖에 사랑하나 만들어가 / 아주 가깝게 지내고 싶거든 / 근데 / 내 천성이 어둠과 손을 맞잡았다 / 막장에 갇힌 거 마냥 해가 떠도 이 세상은 어둡고 / 내가 갈 곳이 어딨겠노"


 노래 가사는 그 시작부터 '막장에 갇힌 거 마냥' 어둡고, 우울하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를 위한 삶인가'를 소리쳐 부르는 노랫말, 그 상황이 임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내 삶과 같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훈련하던 중 해가 저물 무렵 부대 뒤편 야산에 파인 참호에 서 있었다. 모처럼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아내는 "나 아파"하면서 짜증을 냈다. 군부대 훈련 중인 이곳은 아내와 멀리 떨어진 곳이고, 한걸음에 달려가기 어려웠다. 아직은 아내의 아픔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어렸고, 소대원들과 상급 간부들 사이에 끼여 마음대로 못하는 내 처지가 한심스러웠으며, 아내가 아프다는 데 좋은 말도 못 해주는 내 좁은 마음이 싫었다. 그 싫은 마음을 담아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는 금방 또 후회하는 내가 싫었다.


 옛 동요처럼 임진강 초소 앞에 보이는 강변의 모래알은 반짝였고 햇볕은 쨍쨍거렸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임진강 물은 투명에 가까워 반짝이는 모래알을 살짝살짝 덮어가며 놀고 있었다. 소대원들이 근무교대하는 소음에 밤새 설친 잠을 달래며 초소 안 정자에서 하염없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누구를 위한 삶인가" 노래를 듣고 흥얼거렸다. 그 노래는, 이후에도 내 삶이 바닥같이 느껴졌을 때,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앞날이 불투명할 때 문득 떠올랐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내 삶이 한편으로는 답답하면서도 무언가 위로가 되면서 막힌 마음이 살짝 뚫리는 느낌을 주었다. 노래를 듣는 것은 나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되물으며 내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군 전역 후 갈 곳이 없어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잠시 서울대공원 곰 사육장에서 곰에게 먹이를 주었다. 오전 출근해서 곰에게 먹이를 주고 잠시 나무 그늘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며 예전 그 노래를 들었다. 난 비록 노래 가사처럼 '어둠과 손을 맞잡지'는 않았지만, 정규직을 잡지 못한 내 삶은 어둠처럼 여전히 불투명했고, 사생결단 영화 속에서 마약에 찌들어 어둡기만 했던 배우의 모습처럼 우울하게만 느껴졌다. 아이는 커가고 있었고 아직 번듯한 직장은 잡지 못했다. 오래전 아픔을 호소하던 아내는 밤새 학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삶의 고단함을 담아 나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다. 말 없는 곰이 서성거리는 철장 옆 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듣는 것이 그때 반짝이던 모래알을 보던 초소의 정자와 같이 잠시 쉼을 주는 장소였다. 그리고 예전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뱉어내고 달래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다. 이제는 소리바다의 MP3보다는 유튜브에서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가끔, 내 삶에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불혹의 나이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아프게 할 때 떠오르는 오래전 노래가 있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를 '소리쳐 불러보는' 그 노래가 여름 하늘에 문득 뭉게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반짝, 스치며 삶의 의미를 묻고는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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