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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삶 Jul 08. 2021

옛 영화를 다시 만나다

영화<청춘>을보고

            

옛 영화를 다시 만나다

영화 <청춘>, - 곽지균 감독, 김정현 배두나 김래원 주연, 2000.10. 작 - 을 보고, 


예스 24의 다운로드 서비스에서 예전에 받았던 "청춘"이란 영화를 다시 찾았는데 없었다. 담당자한테 1:1 문의를 하니 다행히 다시 올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내 컴에 간직하게 된 이 영화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처음 도입부에 벚꽃이 지는 풍경과 어울리던 그 묘한 분위기의 음악과 "괜찮다"를 연달아 주문같이 외던 미당 서정주의 시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 청춘을 보냈을 법한 그 마을 풍경 모습도 인상적이다.

군 시절, 숙소에서 내일 일과를 생각하며 답답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케이블 TV 심야방송에서 우연히 보았던 영화였다. 케이블 TV에서 심야에 하던 영화였으니 그만큼 야하다는 말도 되겠지만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어쩐지 슬프고 안타까웠다.




-처음이라는 말은, 약간의 설렘을 안겨준다. 그런데 무엇이 처음이었을까?-

   
사랑을 만나다


  처음 자전거 타는 장면처럼 자효(김래원)는 어느 시골 마을로(여기에서는 경남 하동이다) 전학 오고 그와 첫날 짝이 된 수인(김정현)과 금방 친해지고 단짝으로 어울린다. 잘 생긴 자효에게 - 김래원이란 배우는 참 잘 생겼다- 하라(윤지혜)가 거의 일방적으로 접근해 오고 아직 어린 자효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고 그 아픔을 자효는 계속 간직하면서 대학시절을 겉돌듯이 보낸다. 

그 과정에서 새로 만난 것이 남옥(배두나)이다. 비뇨기과에서 우연히 만난 간호사 남옥은 마치 우렁각시처럼 자효 곁에 머문다. 이런 남옥을 귀찮은 듯, 무심한 듯 대하는 자효이지만,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치 어린 시절 엄마 품을 찾듯, 예전 고향을 찾아가듯 남옥이를 부른다.



-하라(윤지혜)가 자효(김래원) 뒤에 안겨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자효가 힘겨워하는 이유는 오르막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뒤에 있는 하라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다. 힘겨워하는 자효의 표정과 뒤에서 살짝 웃고 있는 하라의 표정이 대조를 이루면서 배경이 되는 시골 풍경과 잘 어울린다. -  


            

잊지 못할 시를 만나다



국어 선생님(진희경)이 새로 학교에 와서 수업시간에 가르쳐 준 시가 있다. "괜찮다"가 또박또박 발음되는 그 시는 나중에 찾아보니 미당 서정주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이란 시였다. 자효(김래원)와 수인(김정현)은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어릴 적 찌찌뽕 하듯이 서로 마주 보며 음을 맞추며 그 시를 되뇐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고 예전 추억으로 현재를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다. 그 시의 그 "괜찮다"하며 되뇌게 되는 그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한옥의 한지 창살에 사모하는 선생님의 실루엣이 비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짝사랑하는 선생님의 실루엣을 눈을 맞으면서 쳐다보는 어느 학생(수인/김정현)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마치 그 옛날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한 사람만 그리던 장군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이런 풍경에 잘 어울리는 그 詩도 눈 내리는 풍경에 어울려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


괜찮다......
괜찮다......
수북이 내려오는 눈 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라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포근히 내려오는 눈 발 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 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중략-
서정주 - 내리는 눈 발 속에는 



각자의 사랑으로 청춘의 끝을 만나다.




- 좁은 논길 한가운데 사모하는 선생님(진희경)과 마주친 수인(김정현)이 좁은 길에서 엇갈리는 모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큼이나 좁은 논길 위의 그 모습이 상징적이다.-

    

결국 수인(김정현)은 선생님에 대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친구를 떠나보내고 온 자효(김래원)는 친구를 잃은 외로움을 절실히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공중전화를 부여잡고(오래전 영화라 영화 배경은 휴대폰이 보편화된 시기가 아니다) 남옥(배두나)의 이름을 부른다.


울듯 말 듯 "남옥아~, 남옥아"를 부르는 그 모습이 수인과 함께 "괜찮다"시를 되뇌던 것처럼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도 같고 이제 청춘이 끝났음을 알리는 새로운 신호인 것도 같다.


- 배두나는 2000년 영화 ‘청춘’을 통해 곽지균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저를 데뷔시켜주신 감독이라면 곽지균 감독님은 저를 만들어주신 분이다”며 운을 뗀 배두나는 “남들은 한창 N세대 스타로 잘 나가던 때 ‘청춘’에서 노출 연기를 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청춘’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런 감수성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배두나, 故곽지균 감독을 회상하며 뜨거운 눈물 흘려-한국경제, 기사입력 2010.09.30-


이 영화는 故 곽지균 감독이 만들었다. 남옥 역의 배두나 배우는 예전 무릎팍 도사에 나와 곽지균 감독에 대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분"(한국경제 연예, 2010.9.30 기사 인용)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때 "청춘"배우는 이제는 세계무대에도 종종 얼굴을 내미는 큰 배우가 되었다. 그런 배우가 추모하는 감독의 영화가 케이블 TV 심야 시간대에 다른 야한 영화들과 같이 비슷한 격으로 나온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좀 더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케이블 TV에서도 보기 어렵고 내 컴퓨터 한 구석 폴더에 저장되어 있지만 가끔 그 시구절과 그때의 청춘 배우들을 생각하며 종종 떠올리게 되는 영화이다.

한편으로 남옥과 자효가 함께할 때, 자효가 콘돔 포장을 입으로 뜯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수많은 장면 중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그런 모습을 집어넣은 것은 그 당시에는 이 영화가 처음이자 요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편이 아닐까 싶다.


눈 내리는 날이면 "괜찮다" 되뇌는 그 시와 함께, 어딘가 마음이 헛헛하고 외로울 때면 내가 의지하고 결국 돌아갈 사람을 찾으며 "남옥아!" 외치던 자효의 모습과 함께 떠오르는 옛날 영화이다. 청춘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친구와, 그때 짝사랑을 비롯한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문득 나이 든 허전함을 달래고자 할 때 찾게 되는 영화이다.


- 영화 사진은 네이버 영화, 청춘, 포토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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