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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0. 2020

국내편) 1-1. 선택받은 중국어

1장. 거지조차 부러웠다.

책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대학 졸업 당시의 나는 취업을 위한 준비는 정말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4년이라는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공부, 학점 이런 것들은 완벽히 뒷 전이었고(1학년 1학기 학점이 에이스 투수 방어율에 버금가는 2.94였다.) 대학생의 특권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동아리를 세 개씩이나 드나들며 수업도 자주 빠지는 완벽한 ‘먹고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낸 내게 돌아온 것은 망막함이었다. 대학 동기들이 토익 점수를 올리고 4점대 학점을 받기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는 것을 보며 ‘대학에 왔으면 즐겨야지! 고3도 아니고 왜들 저래?’라고 생각했던 내가 졸업이 다가오며 절벽으로 점점 내몰리는 듯한 심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토익 공부를 할까? 자격증은 뭘 따는 게 좋지? 지금 준비하면 너무 늦었나?’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며 두려움은 점점 날 코너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상하게 토익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서류 전형에서 토익 점수를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었지만 난 토익이 너무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가 요구를 하고 입사에 필수 조건이라면 내가 좋든 싫든 준비를 해야 하지만 죽어라 점수를 올려도 회화 능력은 올라가지 않는 토익은 결국 단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많은 학문과 자격증이 실 생활이나 업무에 쓰임이 있는 것이 아닌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토익 점수가 높아도 영어 회화가 되지 않으면 결국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난 중학교 때부터 줄기차게 봐 온 영어 시험공부에 반감이 있었고 뭔가 새롭고 다수가 하지 않는 언어를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그게 바로 중국어였다.
 
예비역이 되어 복학생이 된 첫 여름방학. 집에 내려와 있으니 괜히 눈치가 보였다. 용돈은 벌어 밥값은 하겠다고 아르바이트는 했지만 공부는 여전히 하지 않았다. 군대도 갔다 왔고 3학년이나 됐으니 이제 정신 좀 차렸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기대치에 작은 액션이라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국가에서 수업료를 지원해주는 중국어 학원이 있었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 학원비로 쓰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단비 같은 정보였다. 난 곧바로 등록했고 학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아주 열심히 놀았다.

한자만 보면 눈이 침침해지고 잠이 쏟아지는 체질이라(대한민국에 이런 체질이 상당히 많다.) 배웠던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고 ‘아참, 내가 중국어 학원을 다녔었지.’라는 기억이 대학 졸업반의 내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3학년 여름 방학 1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학원에서 겉핥기로 배웠었고 게다가 한자 알레르기 체질로 태어나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던 중국어인데 끌리기 시작했다. 뭔가 새롭고 다수가 하지 않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저 그런 생각만 두리뭉실하게 들뿐 결심을 하기엔 정보가 부족했고 대학 동기들 중 아무도 중국어를 공부했거나 배울 계획이 없었기에 망설여졌다. 다수가 하지 않는 언어를 하고 싶지만 또 막상 ‘다수가 하지 않는데 내가 해도 될까?’라는 역공을 맞은 것이다.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내게 확신을 심어준 것은 아버지였다.
 
“중국어는 앞으로 점점 쓰임이 많아질 거다.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중국은 더 빠르게 성장할 것 같으니까 중국어는 배워라.”
 
아무 기술도 지식도 없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돈벌이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 중 하나가 외항선의 선원이었다. 외항선을 꽤 오래 타시며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셨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고 생각이 항상 깨어 있으셨다. 이런 아버지의 조언이라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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