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pein Jun 17. 2020

해외편) 1-7. 스몰 딜(Small Deal)

1장. 다시는 주재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임차료 시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처음 진행하는 큰 계약에 법적 오류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스몰 딜은 부동산 에이전시의 자문을 구해 진행했다. 난 이 계약을 진행하면서 싱가포르 상업 부동산 시세를 면밀히 파악하고 계약 진행 절차를 상세히 기억했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다음부터 계약부터는 부동산 에이전시를 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수수료를 절감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나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기 위함이었다.

알고 보니 싱가포르에 있는 대부분의 리테일 회사에는 한국처럼 점포 개발팀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매장을 찾고 계약하는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난 이 분야에 대해 ‘꾼’이 되어 쇼핑몰에서 내 이름을 들으면 협상에 부담을 갖게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난 먼저 위즈마 쇼핑몰에 가 계약서와 임차료 제안을 요청했다. 그들이 제안하는 금액을 보고 내 상한선을 만들어 볼 심산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내게 임차료 란은 공란으로 비워진 가 계약서 파일을 보내오며 메일에 간단한 메시지를 담아 보내왔다.


‘귀사가 생각하시는 임차료와 계약기간, 수수료 등을 채워서 10일 이내에 보내주시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 역시 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먼저 간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말 눈치 게임처럼 피곤한 심리전으로 접어들었다. 더 받으려는 자와 덜 내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들이 요구한 백지 수표 같은 종이에 난 대체 얼마로 써서 보내야 할까? 이 정도 위치의 몰에 이런 자리면 대체 얼마가 적당한 것일까? 그리고 임차료와 별개로 내야 하는 수수료는 정말 다른 브랜드들도 내는 것인가? 그럼 수수료는 몇 프로 정도가 적정선일까? 계약은 3년이 나을까 5년이 나을까? 등등 생각해야 할 자잘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았다. 사무실 계약을 통해 변두리 동네 빌딩이나 공장 지역 빌딩 임차료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지만 오처드 로드와 같은 쇼핑 중심 상권 안에 있는 매장의 계약 내용은 겪어볼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더 예측하기 어려운 협상이었다.


그러자 부동산 에이전시 에이린이 자기가 다시 쇼핑몰에 먼저 조건을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에이린의 요청으로 그들은 그들의 요구 사항을 보내왔는데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임차료였다. 지금 기억으로 더듬어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월세는 SGD(싱가포르 달러) 70/sqft(스퀘어피트) 정도였는데 약 4천 스퀘어피트 크기의 매장이면 월세만 2억이 훨씬 넘는 것이었다. 에이린 역시 좀 과장된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난 에이린에게 그럼 얼마 정도로 생각하냐고 물었고 그녀는 보통 10~15% 정도 낮춰서 역 제안한다고 얘기했다. 팀장도 싱가포르에서 강남 같은 곳인데 에이린 말대로 해서 빨리 계약부터 성사시키고 본사에 보고하자고 조급해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70불에서 15%로 낮춰서 계약한다고 해도 2억을 넘는 금액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빵을 팔아서 한 달 매출 10억 이상을 해내야 이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말까였기 때문에 도저히 이 금액을 주고 계약할 수 없었다. 아무리 손익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아도 이 임차료는 영업이 무조건 적자였다.


난 경쟁사의 임차료 수준을 대충이나마 파악해보기로 결심했다. 그 방법은 아주 1차원적이고 재래식이었으며 손발이 고생하는 무식한 방법이었다. 난 싱가포르 내에 있는 40여 개의 브래드 토크 매장을 모두 돌기로 했다. 예전에도 중요 매장 대부분은 다 돌았지만 이번엔 매장 별 매출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하루에 8개 이상 매장을 돌아 5일 내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잡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어 돌았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가 빵 하나를 사고 영수증을 받는다. 그럼 그 영수증에는 일련번호가 찍혀 나오는데 그 번호가 당일의 영수 건수인지를 확인한다. 만약 영수 건수가 맞으면 그 매장 앞에서 손님들이 담는 빵의 종류와 개수를 대충 보고 인당 구매 단가를 산정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관찰하면 인당 구매 단가와 1시간 동안의 객수가 대충 나온다. 그리고 이 단가와 객수를 영업시간에 대입하고 손님이 비교적 없는 오전 시간과 많이 몰리는 피크 타임은 그 비중을 적용한다. 그리고 평일과 주말의 비중도 차별을 두고 계산하면 이 매장의 평균 매출이 대략적으로 나오게 된다.(나만의 계산법일 뿐 정확한 계산법은 아니다.) 그리고 이 매장의 평균 월 매출을 봤을 때 적자를 내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임차료의 비율을 따지고 매장 사이즈도 감안해보면 임차료가 얼추 뽑아져 나왔다.

이 방법으로 약 40개 매장을 적용해보니 정확한 임차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심지 쇼핑몰과 외곽 쇼핑몰의 대략적인 임차료 격차가 감이 잡히기 시작했고 적절한 임차료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예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현실적인 임차료의 결론에 다다랐다. 그들이 제시한 수준의 절반 수준의 임차료였다. 팀장을 비롯한 팀 사람들 역시 그러다 계약 날아가면 어쩔 거냐는 걱정을 가장한 만약 진짜 잘못되면 자기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뉘앙스의 회피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책임에 대한 회피 속도는 자동차 에어백 반응 속도보다 빨라서 실제 사고가 나기도 전에 회피백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난 쇼핑몰에 답변해줘야 하는 기한이 지나기 전에 계약 조건에 내가 원하는 임차료를 채워 메일을 보냈다. 일말의 망설임 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난 내가 직접 발로 뛴 결과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고 이 임차료 수준이 아니면 그 누가 매장을 열어도 이 자리에서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한 내가 1호점을 이렇게 쉽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계약해버리면 업계에 소문이 쫙 퍼지면서 2호점도 3호점도 분명 이 수준에서 계약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싱가포르 상업 부동산 시장에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세상 물정 모르는 외국인 호구로 유명해질 것인데 난 그렇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싫었다. 내가 메일을 보낸 지 10분이 채 되지도 않아 쇼핑몰 담당자인 제시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보낸 계약 조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써서 보내신 건가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 누구보다 생각 많이 해서 보낸 거예요.”


“이거 봐요. 여기 오처드 로드예요. 그리고 그 자리 우리 쇼핑몰에서 가장 좋은 자리라는 거 잘 알잖아요?”


“네, 맞아요. 거기가 오처드 로드고 가장 좋은 자리라서 그렇게 드린다고 한 거예요. 그쪽은 가장 좋은 자리를 줬고 우리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브랜드의 1호점을 주기로 했어요. 그럼 서로 잘 맞춰가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잖아요.”


“그건 그쪽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생각해서 그런 거겠죠.”


제시는 전화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회로 와달라고 얘기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호출 명령 같은 것이었다. 난 갑의 호출에 기꺼이 응해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녀는 막 담배를 피우고 올라왔는지 진한 담배 냄새를 풍기며 내 말했다.


“우리 몰에 들어오기 싫어요? 지금 딘타이펑까지 4층으로 올리고 내주는 자리인데 이 정도 임차료면 적당한 거죠.”


“딘타이펑 4층으로 올리라는 의견 제가 준거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제가 그쪽에 리뉴얼 아이디어를 제공한 거죠. 그리고 그쪽에서 얘기하는 적당한 임차료가 쇼핑몰한테만 적당한 거 아니에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그쪽에서 제시한 임차료를 내고 매장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10억을 매월 팔아야 해요.”


“그래서 딘타이펑 같은 브랜드가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거 봐요. 제시. 당신들이 딘타이펑을 4층으로 올려도 그들은 같은 매출이 나올 거예요. 그렇게 되면 딘타이펑은 임차료가 1층에 비해 훨씬 더 싸질 테니 큰 불만이 없겠죠. 당신들이 그렇게 해 줄 거고요. 그리고 1층의 이 노른자 같은 자리이지만 허가 상 F&B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인데 이 자리에서 딘타이펑이랑 비슷한 매출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이익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식음료 브랜드가 얼마나 있을까요? 이 넓은 자리를 커버할 수 있는 F&B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들의 조건에도 가장 완벽한 거잖아요.”


“아뇨. 이 자리를 노리는 브랜드는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럼 왜 사장에 임원들까지 모여서 우리 브랜드를 선택한 거죠? 게다가 서울까지 출장은 왜 가서 매장을 보고 온 거예요?”


“그건 당신들이 입점하면 좋겠다는 의미지만 우리가 제안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입점을 시키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당신이 제안한 임차료는 당신의 생각이에요? 아니면 당신 사장님의 생각이에요? 만약 이게 순전히 당신과 실무진의 생각이라면 내가 직접 사장님이랑 얘기해 볼 수도 있어요.”


“사장님은 이런 작은 일에 관여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이건 내 일이에요.”


“제시, 우리 쉽게 가죠. 당신이 정말 우리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제안한 임차료가 터무니없다면 당신은 메일로 거절 통보를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왜 날 사무실까지 오라고 한 거예요? 당신이 제안한 임차료에 맞춰야 한다고 확인시키고 나무라고 싶은 거였어요? 난 적어도 당신이 소통을 원하는 줄 알았어요.”


난 제시의 호출에 사무실로 가면서 짐작했다. 이미 윗 선으로부터 내 브랜드를 입점시키라는 오더가 이들에게 떨어졌고 이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그렇지 않고선 이들이 임차료 협상을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들 리가 없다. 그들 생각에서 내가 그들의 임차료 수준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면 그냥 단칼에 잘라내면 그만이다. 제시 말대로 쇼핑몰의 노른자 자리를 들어오겠다는 브랜드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사장이 입점시키라고 꽂은 브랜드는 노른자처럼 단 하나뿐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노른자 브랜드가 되어있는 것이다.


“제시, 당신들은 지금 고가의 임차료가 더 절실한가요? 아니면 아이온 쇼핑몰에 맞설 수 있는 혁신적인 리뉴얼과 브랜드가 더 절실한가요?”


“물론 우리가 리뉴얼을 대대적으로 단행하고 성공적으로 몰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임차료 역시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죠. 나도 매년 목표를 부여받는 직원이라고요.”


“고가의 임차료를 내겠다고 해서 입점시킨 브랜드가 막상 오픈 후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면 그 성과가 과연 당신에게 좋을까요? 당신이 요구한 임차료 수준이면 솔직한 말로 당신들의 경쟁사인 아이온 쇼핑몰이랑 이미 계약하고 2호점을 찾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지금 거의 다 왔잖아요. 임차료만 맞춰주면 1호점이자 오처드 로드 유일 매장을 위즈마에 준다니까요.”


난 이제 은근히 갑으로 둔갑하여 ‘내가 당신들에게 이 브랜드를 주겠다.’로 외치기 시작했다. 제시는 점점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내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어렵다.’는 여지가 있는 말을 남긴 채 미팅을 마쳤다. 하지만 처음 금이 가게 하는 것이 어렵지 금이 생기면 금세 구멍이 나버리는 것처럼 난 그들의 요구 금액을 허물어뜨리고 그들이 제시한 금액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까지 임차료를 낮춰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냈다.

본사의 그 누구도 내가 계약한 임차료가 얼마나 어려운 협상의 과정을 거쳐서 산출된 금액인지 시세에 비해 얼마나 낮은 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한국에 비하면’ 임차료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라는 핀잔만 들었지만 뭐든지 한국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본사 사람들의 잔소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거대한 쇼핑몰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낮춘 금액을 역 제안하여 수용하게 만들었고 내가 원하는 몰에, 내가 원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타인에게 나의 수고와 성과를 인정받는 것보다 내가 찾은 해답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내 협상 전략이 그들에게 먹혔다는 것에 더 큰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제 2호점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우리의 주거지도 조만간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


여러분의 사랑을 많이 받아 이 글이 <무스펙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책으로 엮이게 되어 부득하게 나머지 편들을 브런치에서 내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책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50077



작가의 이전글 해외편) 1-6. 빅 딜(Big Dea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