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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May 20. 2020

국내편) 2-1. 결과가 선택을 판단한다.

2장. '더 큰' 회사

북경에서 공부한 지 1년이 반 가까이가 되어갈 때 즈음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 온 외사촌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 너 이제 중국어 꽤 하는 수준이지?”


형이 국제 전화까지 걸어와 내게 물었다.
 
“응. 어느 정도는 하지. 왜?”


스스로 내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 민망해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우리 회사 해외 영업팀에서 중국어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너 추천했으니까 이제 한국 들어와. 너도 이제 취업해야지.”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는 형의 제안은 아주 솔깃했다. 사실 내 중국어 공부 계획은 아직 반년이 남아있었다. 나머지 반년은 성어와 속담 같은 고어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형, 근데 나 아직 6개월 정도 남았어. 나 성어 좀 더하고 들어가면 안 될까?”


형의 제안은 너무나 반가웠지만 내가 계획한 것을 다 못하고 가는 것에 대한 미련이 있어 나는 형에게 물었다.
 
“뭐? 성어? 그 고사성어? 야, 누가 일할 때 그런 말이 필요해. 그냥 다 알아듣고 말할 줄 알면 그냥 들어와. 비즈니스 할 때 그 정도까지 필요 없어.”
 
형과 통화 후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형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남은 6개월을 더 있겠다는 건 나의 욕심인 것인가?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 돈을 벌어야 하는 내가 성어를 한답시고 6개월 동안 부모님 돈을 더 까먹는 것은 너무 마음 편한 생각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형의 회사가 근무 여건이 좋은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날 귀국을 선택하도록 찔끔찔끔 부추기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한 선택과 짧은 시간 내에 한 선택 중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당신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을 낳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결과가 그 선택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 선택은 탁월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내 선택이 언제나 옳을 수 없었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걸 방증이라도 하 듯 급 귀국을 선택한 나의 대가는 고약할 정도로 썼다. 어쩌면 타인의 도움으로 쉽게 가려는 나에게 내려진 당연한 결과였다.


귀국을 준비하는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내 목표를 완수하고 금의환향하여 번듯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나중에는 주재원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장밋빛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상상은 그저 상상에 그쳤다. 귀국한 후 만난 형은 갑자기 채용 계획이 미뤄졌으니 오랜만에 쉬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도 만나고 잠시 동안 게으른 백수 생활도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약 없이 길어졌고 결국 형은 미안해하며 채용이 언제 시작될지 보장할 수 없으니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는 연락을 해왔다.


형의 한마디에 기대감을 안고 귀국한 나는 다시 형의 한마디에 혼란에 빠졌다. 졸지에 완벽한 백수가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력서를 써 본 적도 없고 면접을 본 적도 없는 내가 뭐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깊은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고 더 캄캄한 현실은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중국어 하나는 잘해보자.’라는 일관된 목표와 ‘한 번은 꼭 주재원이라는 걸 해보자.’라는 두리뭉실한 생각으로 달려오던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타인의 도와주겠다는 말 한마디만 의지하고 신뢰해 플랜 B를 준비하지 않은 100% 나 불찰이었다.

부랴부랴 채용 사이트를 검색하고 이력서를 썼다. 회사의 채용 조건을 알아 갈수록 내 자신은 점점 더 초라해졌다. 처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내 전공이 회사 지원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확 줄여준다는 것이었다. 내 전공은 관광경영학인데 인문계열을 클릭해도 상경계열을 클릭해도 관광경영학과는 선택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전공 계열인 호텔이나 여행업계가 아니라면 전공이 지원 자격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쑤였고 그나마 ‘전공 무관’으로 공고된 영업팀 사원 모집이 내 전공으로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다행히 토익을 대체할 수 있는 중국어 HSK 7급(구 HSK는 11급이 최상급이었다.)이 있었지만 그 마저도 8급 이상이 지원 자격이면 이력서조차 낼 수 없었다. 여기서 ‘왜 HSK 7급만 땄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건 내 자만이 내 목을 조른 것이었다. 그때 난 외국어는 자격증보다 말을 잘하는 게 우선이라는 고집으로 회화에 집중했고 회화가 자연스럽게 되고 나니 굳이 자격증의 급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안일한 착각을 했다. 면접에서 회화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내 착각의 결과는 회화력을 보여줄 면접 기회의 폭까지 함께 좁혀주었다. 세상 물정은 살피지도 않고 고용자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있던 내게 돌아온 부메랑이었다.


회사가 한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검증을 거치고 이로 인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가 된다. 난 ‘내가 중국어 이 만큼 하니까 당신들이 보고 판단하겠지.’라고 채용을 쉽게 생각했고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은데 그 사람들보다 다른 경쟁력을 더 갖춰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없었다. 그 벌로 난 혹독한 채용 시장에서 줄줄이 미끄러졌고 내 백수 생활은 지겹고 불안할 정도로 길어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언어가 높은 거산 같은 존재였다면 한국에서의 현실은 정상조 보이지 않는 태산이었다.
난 채용과 면접에 상상 이상으로 무지했다. 한 번은 대형 게임회사 중국 라이선스 영업에 지원해서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게임 회사 면접을 가는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까지 하고 갔다.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 정장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때의 느낌은 마치 외계인이 된 느낌이었다.


“정장을 입고 오셨네요?”


외계인이 등장하자 면접관이 물었다.
 
“네... 면접이라서요…”


한 없이 작아진 외계인은 말끝을 흐렸다.
 
“저희 회사 게임 좋아하세요?”


면접관은 정장만 봐도 어떤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네, 좋아합니다.”


사실 이 회사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저희 회사 게임 좋아하시면 자동차 경주 게임은 당연히 해보셨겠네요. 등급이 뭐예요?”


면접관은 ‘뻥치지 마세요.’라는 말을 이 질문으로 대신한 것 같은 눈 빛이었다.
 
“제가 그 게임을 안 한 지 오래돼서 기억이…”

내가 게임을 해봤다 해도 이 사람들이 외계인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장부터 틀려 먹은 아무 준비도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을 뽑는 회사는 없다. HSK는 고급 시험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안 하고 뭐했냐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았고 중국어 잘한다고 큰소리치며 돌아온 내가 한국에 돌아와 다시 중국어 시험을 본다고 하면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않고 빨리 들어오고 싶어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부모님께 심어드릴까 걱정도 됐다.


수 없이 많은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반복해가며 전공 무관에 중국어 능통자 우대라고 된 곳은 다 넣었다. 그렇게 취업 전쟁에서 연이은 패배로 지쳐가고 있었고 내가 중국어를 선택한 것이 틀린 판단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취업 전선에서 계속 밀려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토익 점수가 없어서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역시나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지, 자기소개서가 스킬이 부족한 건지. 이렇게 스펙에 대한 의심부터 면접 때 입고 간 정장이 인상을 안 좋게 줬나? 내 얼굴이 면접관들에게 비 호감인가? 키가 작아서?라는 외모 자존감도 한 겨울 고드름 녹듯 조금씩 허물어진다.  그래서 나와 회사가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유라도 알면 그나마 덜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러면 적어도 뭐가 부족한 지 알고 채울 수는 있을 테니까.


난 이런 취업 완패를 결국 내 선택의 착오로 단정 지었다. 남들 다 하는 영어 공부를 하고 토익 시험을 봤어야 했다며 중국어를 공부한 것에 자책했다. 보람차고 즐거웠고 열심히 노력했던 북경에서의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후회로 바뀌며 빛이 바래져 갔다. 그리고 때마침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친구와 유학원을 찾았고 그나마 저렴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 중국어, 좌 영어만 장착하면 완벽한 무기가 되어 이 치열한 취업 전쟁터에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뭘 해도 안되니까 튀어나오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이었다. 이런 내 짧은 생각은 또 부모님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고 중국에서 뿌린 돈도 모자라 필리핀에도 뿌리고 올 모양새였다.


6개월 안에 끝내고 오겠다고 부모님을 간신히 설득하고 인천 공항 출발이어서 친구와 나는 출국 전 날 부산에서 서울로 왔다.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다음 날 일찍 인천 공항으로 갈 예정이어서 친구 집에서 조촐하게 삼겹살 파티를 가졌다. 한참 삼겹살이 노릿하게 익어갈 때 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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