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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oodlib

이정도는 먹어줘야... 탕수육의 맛

by 잡식세끼

“저녁 뭐 먹었어?”

“짬뽕.”

“근데 9900원이나 나와?”

“짬뽕 탕수육 세트 시켰어.”

“왜 탕수육은 맨날 시켜. 재벌집 딸도 아니고.”

10년전 쯤이다. 딸아이가 중학생이던 시절, 잔소리끝에 오버를 했다.

지금 물가에 비하면 한참 싸지만

그래도 6000~7000원 선에서 저녁 먹으라고 일주일치 저녁값을 맞춰 줬는데

돈 없다고 더 달라는 딸아이에게 지청구를 했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도 아니다. 돈까스며 피자 따위가 국내에 전파되던 시절을 청소년기로 보냈던지라 다양한 음식문화도 접할 수 있었다. 도시락 반찬으로 햄이며 소시지, 장조림, 계란말이도 제법 흔했다. 마의 장벽처럼 여겨지던 바나나 역시 대학 1학년 때 수입 자율화가 되면서 내 용돈을 아껴서도 맘 편히 사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시절을 지냈는데도 여전히 탕수육은 심정적으로 격이 다른 음식이다. 최고의 외식이다. 졸업식날은 탕수육을 먹는 날이었고 가족 외식도 탕수육의 새콤달콤한 맛을 떠올리며 설렘이 앞섰다. 또 있다. 어른들 계모임이 있는 날이면 으레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켰기 때문에 누구네 집이 계모임 날인지 드르륵 꿰고 있었다.


20세기 유년기 기억의 원형 속에 남아 있는 줄 알았던 탕수육은 21세기 현재 내 일상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나 먹자고 선뜻 시키기엔 너무 과도한가 싶고, 누군가와 먹을 땐 탕수육 한 접시는 시켜야 사람으로서 도리는 한 것 같은, 반대로 대접받을 때 탕수육은 먹어야 서운치 않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탕수육 좀 연달아 시켜먹은 걸 가지고 재벌집 딸이니 뭐니 하며 오버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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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내 모습에서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에 나오는 심술궂고 구두쇠인 주인공 윤직원이 떠올랐다. 윤직원은 열다섯살인 기녀 춘심이를 애첩으로 두고 있는 탐욕스러운 ‘늙은이’다. 그들의 대화에 탕수육이 등장한다. 당연히 그 시절에 비싸고 좋은 요리였을 탕수육을 어린 애첩이 시켜달라고 하자 구두쇠 주인공은 이죽거린다.


“너 배 안 고푸냐?”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두릿두릿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그릇 사줄라고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 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그릇 탕수육 한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우동 한 그릇 사주는 것으로 퉁 치려던 심산이었으나 탕수육을 먹겠다고 하자 ‘생 부랑당’이라고 욕하는 영감의 심보. 몇천원 더 먹었다고 “네가 재벌집 딸이냐”하는 내 심보가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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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이 들어온 것은 구한말이다. 인천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들어와 자리잡으면서 그들의 음식도 함께 전해졌다. 여러 자료와 책에는 탕수육이 중국 굴욕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19세기 아편전쟁이 낳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아편전쟁 후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중국에 많은 영국인이 이주해 왔다. 영국인들이 현지에서 느꼈던 가장 큰 불편함은 식생활문화였다. 특히 포크 대신 젓가락을 쓰는 것부터가 불편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서투른 젓가락질로도 잘 집을 수 있는, 게다가 고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로 개발한 것이 탕수육이라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많았던 광동 현지에서 이를 부르는 이름은 구라오러우로 이것이 광동식 탕수육이다. 동북지역의 탕수육은 꿔바로우라고 한다. 이는 같은 돼지고기 튀김인데 모양을 돈까스처럼 넓적하게 해서 튀겨냈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낸 것으로, 하얼빈을 많이 찾았던 러시아인들의 입맛에 맞춰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탕수육의 중국식 발음은 탕추러우다. 탕은 설탕을, 추는 식초를 의미한다. 돼지고기로 새콤달콤한 맛이 나게 하는 이 요리가 지역에 따라 고기모양, 튀김옷 재료, 소스와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보니 자연히 이름도 다른 것이다.


탕수육은 기억 깊은 곳에선 고급 요리임에 틀림 없지만 최근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한때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뷔페가서 절대 먼저 먹지 말아야 할 음식’ 따위의 리스트 기사에 탕수육은 김밥과 함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고급 호텔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웬만한 결혼식장 뷔페 식당에 나오는 탕수육은 가느다란 고기에 두껍고 딱딱한 튀김옷이 입혀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저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스 맛 정도로 먹는다고나 할까. 게다가 요즘은 분식점 메뉴에도 탕수육이 갖춰져 있다. 현장에서 튀기는 것이 아니라 본사에서 나오는 냉동식품을 가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문과 동시에 포장을 해서 가져갈 수 있다. 역시 딱딱하고 두꺼운 튀김옷에 가느다란 고기가 애처롭게 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저 밀가루 튀김 덩어리일 뿐인,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딸아이가 종종 시켜먹었던 짬뽕 탕수육 세트에 나오는 탕수육도 추억의 고급 요리가 아닌 그저 민망한 먹거리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짬뽕과 탕수육 등을 섞은 분식점 세트메뉴는 비교적 싼 값에 판다. 한번 시켜먹어봤는데 한 입 먹고 딱히 두번 손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이 값에 얼마나 대단한 퀄리티를 요구하고 있는거냐. 이 때문인지 웬만한 곳에서 만나는 요즘 탕수육은 하향 평준화됐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탕수육이 원래 이런 수준의 요리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오지랍섞인 걱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간간이 만나는 진짜 탕수육 맛에 미친듯 감동할 때도 간간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탕수육'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 자리를 파티나 잔치처럼 만들어주는, 푸근하고 화려하고 충만한 그런 느낌을 주는 존재이긴 하다. 퀄리티를 떠나 탕수육이 차려져 있는 자리라면 식탁이든 신문지를 깔아놓은 흙바닥이든간에 얻어먹었다는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같은 옛날 사람은 물론이고,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도 탕수육은 여전히 사랑받는것 아닐까. 무언가를 탕수육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이 푸짐한 메뉴를 이런 값에 누릴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외면하기란 좀체 쉽지 않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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