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친구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삶
싯다르타의 삶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사문(선을 행하고 악을 없애는 사람 돌아다니며 도를 닦는 탁발승)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억지로 동의를 얻어내고 친구 고빈다와 함께 사문 생활을 시작합니다. 사문 생활을 3년쯤 했을 때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고타마를 만나고 고빈다는 고타마의 가르침에 귀의하기로 합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깨달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지만 고타마의 가르침을 통해서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깨달음에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친구인 고빈다의 만류에도 떠나가죠.
떠나온 싯다르타는 도시로 돌아가 아름답고 지혜로운 창부에게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 여자는 고타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많은 돈을 벌게 해줬을 뿐 아니라 쾌락이 가져다주는 즐거움도 가르쳐줍니다. 싯다르타는 처음의 결심, 목표를 잊고 세속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되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떠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어떤 말이나 예고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립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된 싯다르타는 강에 이르렀을 때 순간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결국 싯다르타가 향한 곳은 강을 건너는 걸 도와주는 뱃사공의 집이었습니다.
뱃사공은 싯다르타를 환영하고, 이후로 오랜 시간 서로 본 것과 느낀 것과 깨달은 것을 공유하며 서로의 삶을 이어가죠. 어느 날 싯다르타는 깨닫게 됩니다. 뱃사공의 깨달음의 경지가 예전에 만났던 고타마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요. 동시에 자신 역시 비슷한 경지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친구인 고빈다와 재회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고빈다는 평생 수행을 쌓고, 기도를 하고, 고행을 해왔음에도 좀처럼 깨달음에 이르지 못함을 답답해합니다. 다시 만난 싯다르타의 면모에 놀란 이유도 바로 그것이죠. 싯다르타는 수행을 하지도 않았고 세속에서 온갖 쾌락을 누렸음에도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었으니까요.
결국 이야기의 교훈은 진정한 깨달음이란 가르침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명의 깨달음이 모두 다르다는 거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았다고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몇 번이나 깨달았으며 그 깨달음조차 흔들리거나 뒤바뀐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27 목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부패하여 있다는 것을 시인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은 쓴맛이 났다. 인생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자아를 벗어나면, 모든 것을 비우면 깨달음에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죠.
86 사랑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선물로 받을 수도 있고, 거리에서 주워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강탈할 수는 없는 거예요. - 카말라
206 지혜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예감했으며, 이 때문에 내가 그 스승들 곁을 떠났던 거야.
내가 깨달은 최고의 생각이란 이런 거야.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날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212 방해
자네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 가르침이라는 것, 바로 그 무수한 말들이 아닐까 싶어.
진정한 자아란 독립된 '나'로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순환하는 '세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완성, 깨달음, 지혜는 모두 세상이 일면적인 것이 아니며 그 이면 역시 절대적인 악이라거나 틀린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