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저마다의 레일 위를 달린다

인생의 베일_서머싯 몸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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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서머싯 몸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후 중국을 여행하고 나서 쓴 것이라고 한다. 배경은 1920년대 영국의 식민지 홍콩이다. 야심 많고 인색하며 엄격하고 냉혹하기까지 한 엄마, 가스틴 부인의 기대 속에 자란 키티와 그의 남편이자 세균학자인 월터, 총독부 간부로 총독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찰스 사이의 불륜과 죽음, 깨달음이 담긴 이야기다.

자식에 대한 일그러진 기대가 그의 미래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사랑의 형태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사실, 결국 인생이란 각양각색의 베일이 드리워진 것처럼 알듯 하면서 알 수 없고, 하나같으면서도 여럿이라는 사실 따위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주인공인 키티는 여동생보다 일찍 결혼해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터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실은 월터를 사랑하지도, 매력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 선택부터 그의 불행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월터는 세균학자로 그다지 유망하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연구에 충실하며, 키티를 처음 만날 때도, 고백할 때도, 결혼한 후에도 예의 바르게 거리와 예의를 지키며 조심스럽게 키티를 대한다. 마치, 위험한 세균을 다루는 세균학자와 같이 조심스럽게 말이다.

찰스는 월터와 명백한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좋은 체격, 유능함, 식민지 홍콩의 차기 총독이라 일컬어지는 인재이기도 하다. 출세욕이 강하며 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하기에 결코 헤어질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출세지향형 인물이다.


이들에게 씌워진 베일이 뭘까 생각해보면 키티는 '사랑', 월터는 '세균', 찰스는 '출세'정도가 될 것 같다.

키티는 사랑을 몰랐지만 사랑을 알게 된 순간 맹목적으로 변한다. 월터는 사랑을 할 때조차 조심스럽기가 세균을 다루는 것만 같다. 찰스는 출세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외도만을 즐기는 어디까지나 출세가 전부인 속물이다.

작품을 읽는 동안 유난히 시선을 사로 잡은 단어는 '도(道)'다. 서머싯 몸이 중국을 여행하고 난 후 적었다더니 어디선가 노자의 도덕경을 읽게 된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에는 도덕경을 풀어놓은 구절까지 보인다.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無)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그것을 따르며, 마침내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 갑니다. 각이 없는 네모이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형태 없는 상(像)이랍니다. 그것은 거대한 그물이고, 그물코는 바다처럼 넓지만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합니다._267쪽」

노자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道) 가도(可道) 비상도(非常道)

명(名) 가명(可名) 비상명(非常名)

간단히,

도를 도라 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으면 이름이 아니다.

정도로 해석된다.


73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부실(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지만 새지 않는다.


서머싯 몸에게 도덕경이 어지간히 와 닿은 모양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신곡」의 '피아'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의 어디가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건지 결국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뭐, 큰 의미는 없으니 연연해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앞서 적었던 것처럼 노자의 도덕경 속의 '도'에 큰 감명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에 비슷한 부분만을 찾고는 했다.


인생의 베일, 사람은 저마다 우선하는 가치가 다르다. 그 가치는 다른 것이 자연스럽고 하나의 가치가 타인에 의해 강요당할 때 다른 하나의 가치는 부서지고 망가지게 된다. 그것이 저마다 다른 길로 가게 되는 '도'이자, 저마다 다른 삶을 사는 '베일'이 아닐까?

베일을 생각하다 '레일'을 떠올린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저마다의 베일에 눈이 가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달라지는 것처럼, 저마다의 레일 위를 달리는 강철의 열차, 철마와 같이 굳고 단단한 의지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고 자신의 앞으로만 나아가게 된다. 결국 삶은 누구와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길을 가는 동안 끊임없이 '교차'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신이 배려라 믿는 것, 예의라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 생각하지 않는 사랑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스스로도 파멸시킨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삶이 교차점에서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그 교차점 이후의 길이 영원히 멀어지는 방향으로 향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서머싯 몸이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콜레라로 죽어가던 월터가 유언처럼 남긴 이 말이었다.

"죽은 건 개였어."


이 말은 이런 이야기를 배경으로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이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리고 만다. 사람들은 개에게 물린 사람이 곧 죽을 거라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결국 죽은 것은 개였고, 개에게 물린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보면 월터는 자신이 광견병에 걸린 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 광견병은 뭘까?

애초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불륜을 저지른 키티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이었고, 콜레라가 창궐한 지역으로 옮겨온 이유도 처음에는 키티가 죽기를 바라서였다. 하지만 결국 죽은 것은 나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키티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이라면 광견병에 걸린 개는 월터가 아니라 키티의 불륜의 대상자인 찰스여야 한다. 하지만 찰스는 홍콩에 멀쩡히 살아 있고, 그 이후로도 잘 살았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손해 같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월터는 키티가 자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자신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진 건 키티였다. 그 대상이 월터가 아니라 찰스라는 것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했던 건 키티를 사랑한 자신이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죽은 건 개였다'는 말이 저주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겐 그렇게 생각 되지를 않는다.

다르게 적으면 "정말 사랑했다"가 아닐까?


월터가 키티를 대할 때 마치 '위험한 세균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고 거듭 적었었다. 키티를 사랑하게 된 순간 월터는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위험한 세균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독이 되어 키티는 다른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게 되고 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키티를 데리고 콜레라가 극심한 지역으로 간 월터는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고 말았다. 홀로 죽음에 이르는 월터의 결말은 월터의 사랑이 키티의 사랑과 같은 곳을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월터의 죽음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돌이키지만 결국 한번 더 키티가 흔들리는 이유 역시 키티의 사랑이 월터와는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찰스의 사랑은 애초에 월터의 사랑과도 맹목적인 키티의 사랑과도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기에 더 말할 것도 없다.


월터의 죽음과 대비되는 동시에 공통적인 죽음이 키티의 엄마인 가스틴 부인의 죽음이다.

월터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키티를 괴롭게 하고, 가스틴 부인은 딸과 남편을 괴롭게 한다. 두 사람의 죽음은 그 괴로움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월터의 죽음이 타인을 향한 사랑 속에서 맞이 하는 것이라면 가스틴 부인의 죽음은 자신의 욕망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도'라면 동시에 전부인 동시에 전무일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닌 필연적일 수 없는 사랑의 성질이 저마다의 추구하는 바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과 저마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레일을 따라가는 열차와 닮아 있다.

우스운 건 설사 같은 레일을 따라 간다고 해도 정차하는 역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초에 도는 무척 오묘한 것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운명이 무엇을 따라 흘러가든 인생에 드리워지는 베일은 그 색깔과 모양을 끊임없이 달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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