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차별은 공기다

달라지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by 가가책방
KakaoTalk_20190823_001036723.jpg
KakaoTalk_20190823_001036391.jpg
매미, 여름의 끝

무서울 수 있습니다.

사진이.

아.

위구나.


툭, 뭔가가 나무 위에서 떨어집니다.

뭐지? 하고 보니, 커다란 매미.

매년 이맘 때면 흔한 추락.

하지만, 혹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지 싶어 하늘로 던져봅니다.

투툭.

다시 떨어진 매미.

날개를 펼 힘까지 짜낸 마지막 노래를 부른 후.


가까운 나무에 구멍이 있기에 붙여봅니다.

붙이고 보니, 아래에는 미래가.


여름의 끝, 매미.


KakaoTalk_20190823_001037008.jpg 그냥 넣어본 사진 - 문래

책을 읽고 쓰다.

조금 모자라는 1 시간.

고속버스 안.

퇴고, 교정 없음.



무엇으로 어떻게 쓸까


쉽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부담 없이 쓰게 되는 글이 있다.

하지만, 글이 이토록 쉽게 써지는 건.

때로 슬픈 일이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1시간, 내내 골몰한 건 내가 잘못했을지 모를 순간, 잘못을 알면서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못한 생각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다. 떠올리면 떠올리려고 할수록 그럴 필요 없던, 하지 않았으면 좋을, 그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늘었다.


반성은 그만두기로 한다.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반성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얕은 잘못에도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고, 마음에 걸리는 일을 무시하고 지나치기를 거듭하다 보면 마침내 무감각해지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거기에 있다. 끝 모를 반성에 빠지게 되는 거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줄 아는 자기에 빠지거나 ‘나는 왜 늘 잘못을 반복하는 걸까’라는 자책에 빠지거나, 둘 다이거나 하게 되니까.

나는 민감한 사람이다. 적어도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스스로의 과오에도 민감하고 타인의 잘못에도 민감하다. 민감하기만 한 데서 그치지 않고 엄격해지기도 한다. 나에게도 엄격하지만 사람이라서 자꾸 변명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안다고, 의도를 안다고 생각하기에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해를 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결국 스스로에게 덜 엄격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거다. 나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아니다.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별로’는 분명 다르다. 작은 차이는 종종 무시되곤 하지만 작은 차이가 만드는 변화는 예측 불가능할 만큼 커지기도 한다. 아니다. 작은 차이가 거의 전부다. 인간과 인간은 그 배움이나 생각에서 결정적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격차를 보이기 어렵다. 천재를 포함해도 결국 평균에 무한히 수렴하기 마련이다. 양 극단을 비교하면 격차가 커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해지자. 우리가 비교하는 건 보통 비교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과 거리에 있는 존재다.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은 수준의 세계는 종종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법이니까.


다시 시작하자. 반성은 그만두기로 한다. 결국 나도 똑같다거나 다르지 않다며 중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차별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모였다. 멋진 제목이었고 함의가 풍기는 뉘앙스는 정곡을 찌를 듯 날카로워 보였다. 그에 비해 표지 일러스트는 몹시 귀여웠는데, 표지가 한몫을 거들었음을 밝혀두는 게 낫겠다.



소개한다.

저자는 교수다. 다문화를 가르친다. 서울대와 미국 로스쿨을 거쳤다. 여자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한 사람의 질문이 책을 쓰게 했다고 한다. 핵심 단어는 “결정장애”. 왜 그 상황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는가를 물었는데, 그제야 그 말이 품고 있을지 모를 편견과 비하와 모욕과 멸시의 뉘앙스를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았으며, 미안해졌다고 한다.

용서를 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신처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은 전혀 차별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을 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듦으로써 더 나은 세상,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한 팔 거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료를 찾고, 사례를 조사하고, 토론도 벌이고, 조언도 들었으리라. 그 결과 중 하나로 자신이 상정한 가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존재를 명백히 증명해냈으며 그 해결 방법 중 하나 혹은 여러 가지를 제시했다고 만족하며 책을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자, 지금까지 소개한 책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정확히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나’는 어떤 태도로 이 책을 대하고 있는 듯 보이나?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은 상황에서 무언가를 두고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작동되는 건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이다. 삶 전체를 지배하는 인식, 삶 어느 순간에 더 강한 지배력을 갖는 인식, 삶 어느 순간에 맞닥뜨린 어떤 문제에 유난히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인식이 습관처럼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해버리는 거다. 이 인식에 흔들림이 없을 때, 유연하지 못할 때, 그리고 치우쳐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 ‘편견’이다.


지금까지 적은 글, 책 소개에는 편견이 들어가 있다. 물론, 나의 편견이다. 제일 큰 편견은 ‘작가는 그리 차별당하지 않고 살아왔을 듯하다’는 거다. 장애나 이상, 논란이나 물의를 일으킬만한 정체성, 문제 발언, 사고나 사건. 그중 무엇과도 직접 얽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게 근거다. 근거라는 게 고작 추측이므로 편견임이 더 명백해진 셈이다.

작가가 차별이라는 주제로 고민하고, 배우고,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논의되고 다뤄져서 이미 공통된 인식이 성립됐을 주제가 마치 처음 정리되어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처럼 깜짝 놀라는 마음 한 구석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진 거다.

인용과 발췌 사이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당위를 포함하는 결론에 진이 빠지는 걸 느껴야 했다. 어디까지나 ‘논의’ 수준에서 다뤄지는 ‘결론’은 있어도 어딘가 비현실적이어서 도무지 현실이 될 수 없을 듯한 막연함. 마지막으로 기대고 있는 수단이 법이어야 할 만큼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떠올리는 것조차 부정하고 싶은 의문.


어디까지나 감상적 편견에 기반한 리뷰임을 뒤늦게라도 밝혀두자.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새롭고, 몹시도 충격을 주는 새로운 인식을 주제로 삼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 선입견을 심어준 채로 끝낼 필요는 없겠지.



대신이라고 할까, 책 제목 하나를 꺼내두기로 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유사하다면 유사할 수 있을 주제를 다루는데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 물론 취향 문제겠는데 이론과 논리로 무장하고 인용과 발췌가 지원하는 책보다는 경험을 통해 오래 고민하고, 느낀 이야기를 쓴 글이 좋다. 그러니까, 꺼내놓은 책 쪽이 더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다.


두 책이 어떻게 다른지. 왜 그렇게 생각했고, 어째서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둘 모두를 읽어보면 되겠다. 다른 한 권 제목이 뭔지 궁금한가? 일단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될 테니까.


이 감상을 고치거나 다시 쓰게 될까. 그럴 리가. 늘 그렇지만 읽기를 마치고 처음 남기는 글은 그 순간의 생각과 견해를 기록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고쳐버리고 바꿔놓는다면 취지에 어긋나겠지. 그래서 후회하는 일도 많다.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됐는데 라거나, 생각이 짧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 모든 게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시행착오가 없으면 그도 좋겠지만 어떤 시행착오는 나를 더 성실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차별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많은 순간 나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차별하는 일이 있음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는 모두가 더 민감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세상이 뚝딱하고 만들어지면 좋겠다. 복잡한 개인이 모여 만든 세상이 복잡한 건 당연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인간이 모여 만든 세상이니 시행착오의 연속인 것도 자연스러운 일.

스스로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며 반성 끝에 포기하지 않으면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앞당기는 정도는 가능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말기를.

주문처럼 되뇌어 본다.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고통에 반대하며.

끝.

KakaoTalk_20190823_001035571.jpg 저녁, 낮의 끝, 별 의미 없이 넣은 사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전은 거들뿐, 언제나 주연은 사람과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