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거들뿐, 언제나 주연은 사람과 삶이다

가가책방 북클럽을 시작하며

by 가가책방
KakaoTalk_20190805_232441440.jpg 동물농장들

책방을 열면 꼭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고전 읽기 북클럽을,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첫 책은 조지 오웰 <동물농장>.

영국 어느 농장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켜 주인과 인간을 쫓아내고 동물주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과 그 후 이야기를 담고 있죠. 구체제 전복과 새롭게 구축된 체제 변질 과정과 권력을 향한 욕망과 과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추악함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데, 1937년쯤부터 기획해 1943년쯤 집필한 작품이기에 낡았다고, 현재와 동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철저히 뒤집어버리죠.


<동물농장>을 첫 책으로 한 건 고전과 현대 사이를 잇고 있는 메시지의 연속성을 잘 드러내면서,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고, 어느 방식으로 읽어도 흥미로우면서,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작품 중 하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책방을 열기 전에도 시도했고 두 달쯤 계속하기도 했지만 그때와는 멤버를 모으는 방식도, 경로도 달라졌고 진행 방식이나 프로그램도 변화가 있었기에 처음 하는 모임처럼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고 그랬어요.

독서 모임, 북클럽, 책모임.

결국 모임의 성패는 모인 사람들의 태도와 견해, 수용과 이해 능력에 달려 있었기에.

참가자를 검열하거나 면접 등 과정을 거쳐 선발하는 게 아닌 이상 모임이 시작되기까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요.

고전을 텍스트로 삼은 이유 중 하나는 고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읽어온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시대와 세대, 세계가 다른 이야기를 읽고 접했던 경험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를 더해주었을 거라는 실체도 근거도 없지만 믿고 싶은 마음에서요.

첫 모임을 마친 지금 생각하기에 그 믿음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풀리는 것.

감정으로 상대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 것.

누군가의 견해를 비난하거나 가치 심판하려는 태도.

북클럽에서 절대 필요한 부분과 꼭 피해야 하는 부분의 최소한은 충족했으니까요.

KakaoTalk_20190805_232440416.jpg 다양한 동물농장 판본으로 만나다

진행하면서, 진행을 마치고 혼자 남아 생각을 정리하면서,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기면서 생각하는 한 가지는 지금까지 어떤 북클럽에서도 지금처럼 확실히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 깨달음에 관한 겁니다.

무엇이냐 하면, "고전을 주제로 이야기 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던질 수 있는 한 가지 대답이요.


오늘 느낀 건 고전을 통해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삶이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가 보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 저런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경험을 토대로 무슨 이유로 지금의 생각에 닿을 수 있었나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원했던 거라는 걸요.


삶은 결국 태도로 드러날 텐데, 그 태도는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서 책임지고 있는 부분이기에 어떤 가치판단이나 교정, 가르치려 들 필요가 없음을 새삼 깨달았어요. 과거,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타인에게, 타인의 삶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던 태도가 얼마나 무례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요.


인간의 한계를, 권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읽었으면서 마치 나 자신은 그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군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됐을까요.

KakaoTalk_20190805_232440752.jpg 다음 시간부터 함께 읽어나갈 책들을 함께 정했다

고전은 나와 먼 데서 온 이야기, 지금과는 동떨어진 과거의 이야기로 여겨지기에 오히려 조금은 냉정히, 때로는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태연히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음 시간에 함께 이야기 나눌 새로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무슨 얘기를 하게 만들지 궁금해지는 밤.


결국 책, 고전은 거들뿐 언제나 주연은 사람과 그들의 삶임을 실감하며.

가가책방 북클럽, 고전 읽기 첫 시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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