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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Oct 14. 2024

떠밀려 떠난 여행도 사람을 변하게 한다

다시, 교토

그다지 여행에 미련이 없다.

새로운 장소, 낯선 도시, 생소한 나라가 주는 설렘을 좋아하지만 그보다 떠나가기 전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며 긴장하는 게 싫은 탓이다. 오래전 어딘가에 적었듯 긴장감을 싫어하는 성향이 새로운 장소를 반기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를 싫어하는 것치곤 이사는 적지 않게 다녔다. 어림잡아 스무 번쯤. 중학교 이후로 1년에 한 번은 이사를 다닌 셈이라 최근 4, 5년의 정착 생활은 오히려 낯선 것이었다.


 여행에 미련이 없고 새로운 세계를 '희구'(김화진 작가 장편 소설 『동경』에서) 하지도 않는 내가 5년 전 교토까지 가게 된 건 지금은 아내가 된 사람의 영향이 컸다. 3년쯤 다닌 회사를 나와 책방을 열겠다고 기웃거리며 서울과 공주를 오가던 때. 아내는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며 어디든 다른 나라를 다녀오라고 등 떠밀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능한 회화가 일본어였으므로, 그전에 다녀온 오키나와의 풍경이 좋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지로 정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준비라고 해봐야 항공편을 예약하고 숙소를 잡는 것뿐이라 금세 끝났다. 어디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시내 중심을 오가겠다는 계획도 없었으므로 교토에 가서도 동네를 다니듯 한가롭게 지내면 되겠지 했을 뿐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일본은 한국인이 즐겨 떠나는 여행지였고 어디나 있을 한국 사람과 덜 마주칠 방법을 잠깐 떠올렸을 뿐 별로 긴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엉뚱한 데서 몹시 긴장했는데 처음 홀로 나가는 외국행에 비행기 시간은 맞출 수 있을지, 엉뚱한 곳으로 가서 공항에서 길을 잃는 건 아닌지,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은 맞출 수 있을지 같은 부분이었다. 잘 준비할 자신이 없는, 해본 적 없는, 별로 자주 경험하고 싶지 않은 촉박함을 느끼는 게 싫었던 것이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시간까지가 가장 행복하다고도 하던데, 그런 긴장감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라던데 그게 마음대로 됐으면 내가 여행에 미련 없는 사람이 됐겠는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비행기를 타서 일본에 도착했고, 그야말로 돈가스나 카레 혹은 라멘을 먹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는 주민처럼 5일을 보냈다. 시장에 있는 붕어빵집 젊은 사장 부부와 친해졌고, 20년이나 책방을 했다는 할아버지와 30분 넘게 떠듬떠듬 대화를 나눴다.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장소 서너 군데도 다녀왔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붕어빵과 책방이라는 게 나답다고 하면 나답달까.


 일본에 다녀온 직후, 노재팬과 코로나가 연이어지면서 여행, 일본, 해외는 관심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하지만 그게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책방을 열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여행보다 더 낯선 일들이 매일 벌어졌으니까.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번 여행의 등을 떠밀어 준 사람도 아내다. 공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이웃 중 한 분과 일본어 스터디를 하다가 '일본에 같이 다녀오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 이웃의 지인과 나까지 셋이 떠나는 일정을 세우게 된 거다. 사실 조금은 떨떠름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기대도 있어서 그렇게 하자고 한 후 한참을 여러 의미로 후회했다. 바보 같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무르거나 그만 둘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뭔가를 해보고 난 후 달라지는 풍경을 경험해서다. 분명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게 될 거라는,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확신 어린 기대가 있다. 물론 지금은 미적거리고 어쩌나 저쩌나 하지만 막상 떠나가면 잘할 거라고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의외로 할 때는 제대로 잘 해내는 사람이었으니까.

하마다 상에게 주고 온 드로잉

 혼자 떠났던 교토에서는 허름한 집들, 외곽의 숙소들에서 묵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할아버지의 집을 받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도쿄대 졸업생 하마다 상이다. 흔히 호텔에서 기대하는 편리함이라곤 없는, 불편하고 작은 숙소가 기억에 남는 건 호스트의 일상과 경험이 담긴 공간들을 함께 소개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다녔다는 공중목욕탕을 소개해서 끌고 가주고, 단골집이라며 스무 살 남짓되는 직원과 서른이 안 된 매니저가 운영하는 오코노미야키집으로 이끌었다. 물론 야키소바집에서 교토 할아버지와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문제로 말다툼도 했지만 그조차 마지막에는 유쾌했다. 낯선 여행자로 와서 동네 사람처럼 느끼는 아주 잠깐의 시간. 그 시간이 앞으로 어디를 가든 바라보고 추구해야 하는 방향처럼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다른 의미에서 긴장감이 크다. 혼자가 아니라서,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어떤 걸 먹을지 도무지 감도 확신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가서 몹시 다툰 후 절교하기도 한다던데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면 어쩌나. 

 혼자 다니던 때가 좋았다며 한탄하게 될지 같이 가서 좋았다며 추억하게 될지 아무래도 가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긴장되는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므로 예산이 모자라지 않게 환전이나 충분히 해가자고 마음먹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오코노미야키, 치로리

 혼자는 아니라서 긴장이 커지지만 혼자가 아닌 삶을 살기 시작했으므로 함께에 적응하는 기념비적인 발걸음으로 삼아야지. 괜히 이것저것 뒤늦게 준비하며 너무 커져버린 긴장감을 내려놓을 겸 추억에 젖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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