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Nov 19. 2024

한국 독자 수준이 낮다는 바보 같은 말

올해가 가기 전, 모여요, 우리.

 무슨 얘기 끝마다 한국 독자 수준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책이 팔리거나 팔리지 않거나부터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베스트셀러 목록.

도서정가제 얘기에 닿으면 불을 뿜는 사람이다. 물론, 옹호하는 쪽으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해 11월 개정 시행되는 도서정가제를 두고 참 많은 얘기가 오갔다. 

옹호하는 사람들, 비판하는 사람들,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방식을 지적하는 사람들. 

그중 나는 방식을 지적하는 사람이었다. 

"좋다, 좋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한국 독자 수준을 너무 깔보고 있다."

실제로 그때하고 다니던 말이다.


11년이 지난 올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서점 풍경을 보면서 또 새삼 같은 생각을 한다. 

"좋다, 좋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2014년에도 2024년에도 한국 독자들의 수준은 낮지 않았다. 

제도의 목적도 알겠으나, 이후 일어난 변화에 유리한 해석을 가미해 자화자찬하던 무슨 연구소 소장, 무슨 연구소 대표들의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세상의 말로 들려서 공감하기 어렵다.


엉뚱하게도 문득, 요즘 독자들은 무슨 소설을 읽나 가 궁금해졌다. 

한강을 읽을까? 

물론 그럴 테지.

그럼, 다른 소설은?

생각 끝에 3대 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를 찾아봤다.


 그리고 느꼈다.

"우리나라 독자들, 왜 이렇게 수준이 높아!?"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가늠자 역할에 쓰는 세 권 정도의 책이 있다.

조지 오웰 『1984』,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984』는 첫 완독이 몹시 어렵고 오래 걸린 책이다. 

처음은 고 2 때다. 무슨 필독서 목록에 있길래 읽기 시작했다가 반도 못 읽고 덮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대학 1학년 땐데, 1학기 때는 다시 중도포기했고, 2학기 겨울에야 간신히 다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여러 출판사 판본을 매년 한 두 권씩 읽었는데 결론은 민음사 『1984』는 읽기가 유독 힘들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 책이 얼마나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 줄 아는지?

교보문고 소설 전체 순위 43번째에 『1984』가 자리 잡고 있다. 

예스 24는 주간집계인데도 46위, 알라딘은 189,312권 중 92위에 있다.


 『인간 실격』은 '일본에서는 어려워서 좀처럼 읽지 않는 작품'이라며 한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작품이라는 말에 놀라던 손님과의 대화 이후 가늠자로 삼게 됐다. 실제로 분량에 비해 해석, 이해하기 몹시 힘든 인물의 내면, 비극적 결말들이 왜 그토록 많은 한국 독자가 읽고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무슨 목록에 있어서 읽게 됐는데 왠지 좋아서 종종 다시 읽고 있네" 정도의 모호한 게 나올 뿐이라서 더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까?

교보문고는 32위, 예스는 27위, 알라딘은 54위에 『인간 실격』이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가늠자에 올라 있는 이유는 단순하게도 '읽기 시작한 지 오래됐으나 아직 완독 하지 못한 책' 중 한 권이라서다. 읽기를 밀고 나가면 다 못 읽을 건 없겠으나 어쩐지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인 거다. 그래서 가장 놀라웠다. 

 교보문고 197위, 예스 140위, 알라딘 188위에 심지어!! 세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세 권!! 


 단순히 세 작품의 판매 순위를 놓고 독자 수준이 어떻다 얘기하는 게 섣부르다거나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자처할 수 있을 거란 걸 안다. 그저 읽어볼까 하는 마음, 나처럼 읽다가 마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 하지만 그조차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 실패나 중도포기의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보다야 수준 높지 않은가.


 지금 얘기하는 '수준'은 단지 '어려운 책을 읽는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택의 과정, 방법, 추세를 얘기하려는 거다. 수준이란 다양한 의미를 갖겠지만 여기서는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 높은 방법을 택함'으로 봤다. 왜 그토록 많은 세계의 작가, 고전 소설 중에서 유독 사랑받고, 관심을 끌며, 많이 사는 걸까.

 이 역시 개인적 경험이지만 앞서 얘기한 세 권은 독서모임에서 활발하게 읽고 이야기 나누는 책들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의 이야기, 어느 시대의 권력에 가져다 빗대어도 어떤 상징적인 비판을 떠올릴 수 있는 시대 소설, 혼자서는 엄두조차 나지 않지만 함께 읽기에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되는 작품. 


 혼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을 함께 이야기 나누며 이해를 높이고, 단순히 재밌었다에서 그치지 않고 메시지, 현재의 우리로 시선을 돌리는 마음의 방향이 건전하며, 함께라서 더 즐거운 읽기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 이 독자들의 수준이 어떻게 낮을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기계발서 투성이라, 그걸 두고 수준이 어떠니 저러니 하며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본질은 거기에 없다. 지역 서점의 증가나 신간 종수의 확대가 도서정가제의 최대 효과라는 주장이 흔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오히려 때마침 도서정가제 개정 시행에 즈음해서 어떤 특색 있는 책방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에 호응하거나 응원하거나 사랑하는 수준 높은 독자들이 움직인 거라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을 살렸다고 하는데 정작 지자체나 교육청 소속 도서관들은 정가제보다 10% 할인 혹은 그 이상의 할인을 요구하는 관행을 이어가는 지금, 정책 당사자보다 할인과 무관하게 책을 사는 독자가 더 수준 높다고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11월도 후반으로 접어드는 오늘.

새삼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건 2, 3년 소홀했던 고전모임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에서다.

흔히 만나기 어려운 소도시의 독자,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다시 누려야겠다는 욕심.

12월이 가기 전에, 올해가 지나기 전에, 모여요,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해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